알뜰살뜰 살아보기
덴마크에는 동네마다 큰 마트가 한두 개는 꼭 있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들보다는 작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나 이마트 에브리데이보다는 조금 더 큰 정도인데, 웬만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트를 구경하며 장을 보는 일이 재미가 꽤 쏠쏠했다.
대부분 덴마크어로 되어 있어서 장을 볼 때 구글렌즈를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가져가는 것은 필수이다. 모양만 보고는 이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면 번역기 돌려서 우리말로 확인을 해야 하니까. 덴마크어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일 년 정도 지나니 자주 사는 식재료의 덴마크어 이름은 거의 알게 되었을 정도로 이곳 마트에서 보낸 시간이 참 길다.
그리고 유럽 여행을 이곳저곳 다니면서 그 나라 마트들 구경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였는데 덴마크 마트에 익숙해지니, 다른 나라에서도 짧은 시간에 장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유럽 살이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덴마크가 속한 북유럽은 유럽 내에서도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최저 시급 평균이 우리나라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아서 인건비가 들어가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그래서 외식 물가도 우리나라의 두 배에서 심하면 세 배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트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저렴할 때도 많다. 물론 아시아 식재료 코너는 물 건너온 것들이라 더 비싸지만, 유럽 내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들은 고민 안 하고 살 만한 수준이다. 여기 와서 제일 많이 먹은 과일이 납작 복숭아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유럽 납작 복숭아가 이미 유명해진 걸로 알고 있다. 한국의 물가가 일 년 새 엄청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들어, 돌아가면 가장 아쉬울 것 중 하나가 과일이 아닐까 싶다. 사과 한 봉지에 6~8개 들어있는데 환율 가장 높을 때로 해도 6천 원 정도이고, 복숭아는 4~5개에 4천 원 미만이었다.
한국에서는 장 볼 때 전단지를 본 기억이 없다. 그냥 카트 밀고 한 바퀴 돌면서 필요한 것 사면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형 마트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동네 야채 가게나 과일 가게, 정육점을 따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실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새벽배송을 시키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온라인 장보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집에서 5분 거리에 마트가 세 개나 있는 곳에 살다 보니 걸어가서 사 오는 게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물론 틈새 시간을 이용한 온라인 장보기가 필요할 정도로 내가 바쁜 것도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여기서, 스마트폰이 한 번 더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전단지 앱이다. 덴마크 전체 마트의 온라인 전단지를 모아놓아서, 그 앱을 통해 직접 가지 않고도 각 마트의 물건 중에 세일 품목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 마트의 세일 수준이 사실 어마어마해서 세일하지 않을 때 같은 물건을 사는 것은 호갱이 되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달걀 1줄 (10개)이 평소에는 6~7천 원 수준인데 세일을 하면 심할 때는 3천 원까지 떨어진다.
처음 덴마크에 와서 집을 구하기 전, 에어비앤비에서 잠시 머물 때 바로 옆 마트에서 폭립 500g짜리를 만 이천 원 정도에 샀다.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친구에게 오븐에 폭립 맛있게 구워 먹은 얘기를 했더니 얼마에 샀냐고 묻는 것이다. 알고 보니 세일할 때는 8천 원 수준까지 떨어지는 게 폭립이었는데 그걸 알리 없던 시절이니 제 값 주고 사 먹은 것이었다. 그때 친구가 전단지 앱을 알려주었으니, 나는 초기부터 꽤나 알뜰하게 마트 장보기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생활비도 꽤나 줄었을 것이다.
이제는 식재료의 평소 가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달인 수준으로 빠르게 장보기를 끝낼 수 있는데 3주 뒤면 이 장기를 살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만든 요리의 대부분이 한식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밀키트도 잘 나오고, 반찬가게도 지척에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생각이나 날까 모르겠다.
스마트 컨슈머인지, 그냥 짠순이인지... 그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다. 여하튼, 나는 소시민으로서 대기업에 의해 손해 보는 호갱이 되는 느낌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 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덴마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앱이 아마도 전단지 앱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