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겨울
기다리던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25년 치의 겨울을 살아도 항상 새로운 겨울바람을 맞고 있자니 기분 좋은 차가움에 몸을 맡기고 싶어졌다.
그렇게 집을 나오고 5분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씨, 추워 죽겠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겨울의 차가움은 나의 체온을 빠른 속도로 앗아가고 있었다. 그런 열 손실을 막기 위해 패딩을 입고, 핫팩을 손에 쥐며 덜덜 떨고 있었다.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겨울이라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추운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겨울을 좋아한다 해도, 추운 건 추운 거다.
2022년 1월쯤 파주에서 군생활을 하던 도중 온도계에 찍힌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25’
‘...?’
우리나라에서 영하 25도가 말이 되는 온도인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난 후, 전역하고 나면 일반 겨울은 그냥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코트를 입고, 심지어 가을옷도 입어가며 당장 추운 것보다 예쁜 옷을 입었다. 솔직히 그렇게 춥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앞서 언급한 영하 25도의 온도에는 가져다 대지도 못할 초겨울임에도 핫팩과 패딩으로 중무장한 나를 거울로 보고 있자니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늙어서 그런 것일까?
사실 스물다섯이란 나이는 학교에서나 늙은 사람이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너무 어린 나이이다. 부모님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엄마, 나 늙었나 봐.”
“미쳤냐?”
등짝 한 대 맞았다.
아무튼, 이제는 나에게 너무 차가워진 겨울이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겨울이 주는 길거리의 분위기, 가끔씩 오는 새하얀 눈꽃, 집을 나서자마자 자연스럽게 나오는 입김까지도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함, 쓸쓸함을 가지고 있다.
외로운 것은 싫지만, 겨울이 주는 그런 감정만은 가져가고 싶었다.
겨울은 오래된 사진첩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낡았고, 낡은 만큼 쓸쓸하지만, 지나온 나의 겨울에는 따뜻했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추운 겨울임에도 딱 우리의 체온만큼 온기를 느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겨울이 우리의 체온과 가장 다른 계절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개개인의 따뜻함을 훨씬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차가운 한겨울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창밖의 온도와 비슷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내리는 눈을 바라볼 때면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복잡했던 하루, 이어폰 줄처럼 엉켜 있던 생각들, 나아가 이미 꼬여 버린 관계까지도, 지나간 아쉬움과 후회마저도 모두 잠시 멀어진다.
겨울은 그런 계절인 것 같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쓸쓸하지만 위로를 준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겨울을 사랑하려 한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차가움이 세상을 뒤덮어도, 누군가에겐 사형 선고와도 같은 폭설이 쏟아져도, 그런 차가움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낄 테니까.
올 겨울, 나는 올해의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짓게 될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어떤 감정을 담아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 또한 존재한다.
겨울은 온기를 가진 이들에게 존재함을 깨닫게 해 준다는 것.
한 해가 끝나기 전, 겨울의 초입 앞에서.
2024. 11. 28.
ps.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사고 날 뻔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