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사암자 순례길
설악산 봉정암과 오세암을 잇는 길은 순례길이라고도 합니다.
이 길은 설악산의 여타 산길과는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설악의 능선과 계곡길은 어디랄 곳 없이 빼어나고 웅장하고 장쾌하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유독 순례길은 경관이 잘 나오지 않는 숲길입니다.
산길이 꼭 멋져야만 의미를 갖는 건 아니지요.
대표적인 산속 암자를 연결하는 길인만큼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라는 가르침 같기도 합니다.
스님이 아닌 산객이어도 걸으면서 자신의 속으로 속으로 침잠할 수 있는 길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예전부터 봉정암과 오세암에서는 산객들을 위해 늘 점심 공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깊은 산중 외딴 암자들도 발우를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감염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적으로 공양 제공을 중단한 것입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산길을 넘을 때 한 그릇 공양 생각에 힘을 얻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그럴 수 없었지요.
순례길을 건너면서 유독 힘이 들었던 건 단지 허기짐 때문만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세속과 산문이, 세상과 삶이 점차 단절되어가는 것일까요.
역병의 시기가 참으로 무섭고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