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순댓국물에 소주 한 잔이 땡겨서
6시가 되지 않은 불금, 퇴근객이 몰리기 전
듬성듬성한 자리 깊숙이 4번 테이블에 몸을 부렸다.
“몇 분이세요”
“혼자예요”
“뭐 드릴까”
“순댓국하고 처음 하나 주세요”
말의 끄트머리가 주방에 닿기도 전에 기본 반찬이 날아온다.
깍두기, 생채, 부추, 청양고추와 양파, 된장, 새우젓. 물과 1회용 컵.
들깨가루와 후추, 소금은 아시죠? 거기 있어야 할 곳에 이미.
양파 한 닢을 된장에 스윽 찍어 아삭 베어 씹노라니
허옇게 또아리를 튼 김을 날리며 뚝배기에 순댓국이 담겨 나온다.
들깨가루 두 스푼, 후추 툭툭, 부추 다 털어넣고, 새우젓 집어 올리고, 휘휘 서너 바퀴 돌린다.
한 숟가락...
이거지!
입구에 섰던 종업원과 눈이 마주친다.
아! 소주 시키셨죠? 깜빡했네요 ^^ 이슬? 처음?
괜찮아요. 천천히 주세요~ 처음 ^^
말 없이 눈빛 한 번으로 모든 정보와 감정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평소 까칠하기로 평판이 자자한 송씨의 표정과 마음이 스스로도 놀랄 만큼 온화하고 평온하고 부드럽다.
“죄송해요 ^^”
“감사합니다~”
까드득 소주를 따 꼴꼴꼴 잔에 따르고 쭈우웁 들이키니 크으~
그제야 식당 내부가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벌써 거나하게 취한 세 친구의 혀에서 꼬부라진 말들이 난무한다.
녹녹치 않은 삶의 무게가 친구 앞에서 친근한 욕으로 풀어헤쳐진다.
그래도 니가 있어 편히 욕지거리라도 하는 거지.
대각선에 앉아 밥 먹던 아저씨. 코풀기를 시전한다. 푸애앵~
두어 숟가락 더 퍼먹더니 다시 뿌애애앵~
시원했겠지.
“어허 오늘은 내가 산다니까. 반장이라 돈 마이 벌어”
나이 지긋한 할저씨 여럿이 회식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분리수거는 거시기 ...”
“거 동대표가 뭐시기 ...”
반장이 얼마나 더 버는지 알지 못하고, 빠듯한 차림새는 또 무슨 상관이겠냐만, 오늘은 늙은 하루를 새삼 내 것인양 흠흠한다.
“순댓국 둘 주세요”
혼자 들어온 여자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인다.
곧바로 순댓국이 나왔지만, 두 번째 사람은 올 기미가 없다.
잠시 기다리다가 먼저 숟가락을 든다.
몇 분쯤 지났을까.
여자 하나가 들어와 식은 국물을 떠먹는다.
“와 진짜 맛있다~”
왜 늦었는지 변명도, 왜 늦었냐고 추궁도 하지 않는다.
“이모 여기 참이슬 하나요~”
옆자리에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자리를 잡는다.
건너편에 반듯한 중년 남자가 주문을 한다.
구석에 노신사가 천천히 앉는다.
각자 순댓국을 먹는다.
서로 편안한 느낌의 여사님 여섯이 들어와 앉는다.
젊은 커플이 들어오다가 놀라며 인사를 한다.
둘이 그런 사이였냐는 흔한 호들갑 없이 여사님들이 조용히 미소 짓는다.
문득, 영화 ‘써니’의 친구들이 오버랩된다.
뜬금없이 울컥인 건 소주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인 건가.
오늘도 한 풍경 잘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