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채석강의 노을, 내소사 꽃창살, 곰소만의 젓갈도 좋지만, 저에게 부안은 늦여름 새벽 달빛에 흔들리는 변산 월명암의 '꽃무릇'이 마음을 뺏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마음을 나눠 갖는 다른 존재가 있으니 바로 삽살개입니다.
불심 가득한 눈을 기다란 털로 가린 수놈과 암놈 한 쌍이 살고 있습니다.
삽살개는 '삽사리'라고도 부릅니다. 쫓아내다, 들어내다라는 뜻의 '삽'과 귀신이나 액운을 뜻하는 '살'이 합쳐진 우리말입니다.
선조들은 삽사리를 흉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을 지닌 개로 여겼습니다.
뭉실뭉실하고 긴 털이 주는 해학적인 느낌 덕에 예로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아 민화, 풍속화, 민담, 가사 등에 등장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를 거치며 개체 수가 크게 줄었는데, 1992년에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월명암의 삽사리처럼 황삽사리가 주로 보이지만 흑청색이나 흑회색을 띠는 청삽사리도 있다고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대담하고 용맹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람에게는 순둥하고 충직합니다.
월명암 삽사리 한 쌍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다음에는 적절한 시기에 내려가 꽃무릇을 배경으로 함께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가 보려 합니다.
녀석들의 몸집이 더는 커져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때는 통성명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