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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Apr 15. 2022

부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자

고난주간을 보내며


이번주는 고난주간였다.

오늘은 고난주간 중 가장 경건하게, 절제하며 보내야 할 성금요일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며 경건하게 보낸다.



미디어 금식이란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하고 거룩과 경건한 삶에 방해가 되는 인터넷, sns, 방송, 휴대전화, 온라인 게임 등 각종 영상물과의 접촉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 금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 회복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써 세속의 흐름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거룩한 특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미디어금식을 하기도 한다.

핸드폰의 편리함을 누리며 핸드폰이 없이는 살아가기 불편한 이 시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며 많은 시간을 미디어 안에서 보내는 시대적인 모습을 반영해 미디어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참아내고 절제하는 미디어금식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미디어 금식을 찾고 미디어금식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미디어의 넘쳐나는 재미와 편리함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어쨌든 시대의 풍조에 맞춰가는 미디어 금식도 좋고 음식을 금하며 진짜 금식하는 (?)? 금식도 좋다. 배고픔을 느끼고 먹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며 핸드폰을 보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며 고통을 견디는 것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고 그 사랑을 기억하고 묵상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철 없던 시절, 금식을 한다고 나름 경건하게 보내며 정해놓은 금식 시간이 지나자마자 "땡! 끝났어!!!" 라고 아무도 보이지 않게 환호를 보내며 짧은 기도를 하며 먹고 싶었던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댔던 기억이 있다. 몇 번 더 있었던 금식의 기억도 비슷하다. 금식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며 온통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생각 뿐이다. 먹고 싶은 음식의 유혹을 잘 이겨내며 금식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을 느끼면 금식이  끝난 시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철없을 적 이야기라고 앞에서 이야기 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였다. 하지만 철 없을 그 때에도 부끄러움은 느꼈다. 이런 식의 금식은 큰 의미가 없었고 그런 식의 금식을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연약함에 실망스럽고 부끄럽기 그지 없긴 했었다. 그러고 나니 금식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음식을 금하고 절제하고 참으며 간절한 기도제목을 올려드리며 더 간절한 마음임을 하나님 아버지께 어필하며 금식을 하면서도 땡! 함과 동시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끼는 금식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고난주간에는 금식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형식적인 금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성경필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막상 성금요일이 되자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금식모드가 되어버렸다. 깨끗하게 청소를 마치고  몸도 깨끗하게 단장한 후에 책상을 정리하고 앉아 상경필사를 시작했다. 금식기도도 함께 하며 성경필사를 하니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잦아들었다.


배고픈 배를 주려잡고 성경필사를 하고 있자니 꼬륵거리는 소리가 정말 천둥치는 소리같이  배속 밖으로 요동을 쳤다.  작은 배고픔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난에 비교할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금식만한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배고픔과는 비교할  없는   고난과 수치와 아픔을 홀로 외롭게 견디셨다.



성경필사를 쓰며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울컥울컥  지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고 잡히시고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시는,   하면서도 짧은 성경필사를 해나가면서 손과 팔이 굳어지는 듯한 통증에도 오히려 감사해졌다.  보다   아픔과 수치를 겪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집중할  있었다. 그리고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감사할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인정하지 않아 민란을 동요시켜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민심을 요동시켰다는 신성모독의 죄였고 죄패에는 "자칭 유대인의 왕" 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후, 성소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벌떡 벌떡 일어나게 되는 기이한 일이 펼쳐진다. 이 일을 지켜보던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함게 일어난 그 일은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했다는 말씀이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을 굳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서는 백성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말하면 크게 곤란해지기 때문에 경비병들을 무덤 밖에 세워 예수님의 시체를 굳게 지키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부활하셨고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금식을 하며 성경필사를 하며 기도를 하며 고난주간을 보낸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기쁨의 감격이 있을 것이다. 고난주간을 더 의미있게 보낼 수록 부활절의 감격도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시간 온전히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길,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성금요일과 부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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