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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12. 2022

망한 인생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요즘 아이들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큰 아이가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spelling bee 대회가 있었습니다. '스펠링 비'는 예문을 들려주면 단어를 맞추는 대회로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인들에게는 꽤나 인기 있는 대회입니다. 미국의 스트립트사가 매년 5월에 주최하고 있는 대회로 영어철자를 정확하게 맞추면 우승을 하게 됩니다. 영어 철자와 어휘력 향상, 또 올바른 영어사용 능력을 기르기 위해 실시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진행되었던 대회영상을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는데 쟁쟁한 학생들이 우열을 가르며 긴장감 있게 진행되고 그 안에서 탈락의 쓴 고비를 맛보며 고개를 떨구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제한시간 안에 주어진 예문의 스펠링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고 기회는 단 한번 뿐입니다. 틀리는 순간 바로 대회장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5만 달러라는 시상금과 함께 미 대통령의 집무실인 백악관에 초청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 스펠링비 대회를 큰 아이가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서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한달 전에 약 1600개의 영어단어가 있는 페이퍼를 받아왔습니다. 영어학원에서 진행되는 방식은 동일하고 상금은 30만원이라고 합니다. 상금에도 놀랐지만 아이가 암기해야 할 그 방대한 양에 엄마인 저도 너무 놀랐습니다. 아이는 처음엔 부담감을 느끼는 듯 하더니 조금씩 페이퍼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대회일이 다가올 수록 더 꼼꼼하게 함께 살피며 문제를 내주고 체크하며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큰 아이는 암기력이 좋은 편이고 하려고 마음 먹으면 늘 좋은 성적을 냈던 아이이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내심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죠. 모든 부모가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로 격려해주었습니다. 1등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후회 없게 최선을 다 하자고, 1등 하지 못해도 이번 대회를 통해서 평소에 알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영어단어를 외우고 공부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물로 남지 않겠느냐고 격려해주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하며 학습지를 하며 학원에 다니느라 하루 일과가 빽빽한 초등하교 5학년인 아이는 공부할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틈틈히 페이퍼를 들여다보며, 다 외웠다면서 테스트를 요구했고 저 또한 아이의 요구에 맞춰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다른 얘들은 공부 안한대. 공부 안할걸래. 그냥 하나 맞추고 틀릴거래. " 이 말을 잊을 만 하면 했던 거 보니 학원에서  변함 없는 모습으로 대회에 참가할 의지가 없는 의중을 친구들이 계속 내비친 모양입니다. 놀라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그 와중에도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지' 싶었죠. 한편 그게 사실이라면 도전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성취감을 맛보고 매사 본인이 열심으로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큰 아들이 대견스럽고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단어보다 긴 단어 위주로 암기했습니다. 큰 아이는 레벨이 가장 높은 반이여서 쉽고 짧은 단어는 문제에 출제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들어도 들어도  헷갈리는 10글자가 넘어가는 영어스펠링을 척척 암기해내는 큰아이를 보면서 제 아들이지만 참 신기했고, 정학하게 철자를 맞추는 아이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아이는 잠시 딴짓을 하며 만화책을 보면서도 불러주는 단어를 술술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본인도 놀라며 "엄마. 나도 모르게 술술 나왔는데 다 맞췄어." 라고 말하는 아이가 내심 영특하게 느꼈습니다. 열심히 암기했고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1600개의 영어단어 중 80%는 암기를 마친  듯 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참가했습니다. 대회는 레벨별로 진행되었고 레벨별로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참가했습니다. 한 명씩 호명되면 앞에 나와 스펠링을 맞추고 틀리면 자리로 돌아가 앉게 되고 맞추면 계속해서 돌아가며 맞출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지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토록 힘들게 외우고 외웠던 단어를 맞추고 뽐낼 기회도 없었습니다. 큰 아이에게는 겨우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세번째 문제에서 아쉽게 탈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는 단어인데 틀렸다며 아이도 너무나 아쉬워합니다. 패배의 아픔은 다 그런 것이지요. 우리 아이는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던 우승후보였습니다. 학원에서 인정하는 라이벌 관계인 친구도 만약 큰 아이가 떨어지면 자기가 1등할 수 있을 거라며 우스개소리를 하며 긴장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작 본인은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노력은 늘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노력이 큰 아이를 배신 한 듯 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우승을 하게 된 친구는 평소에 그렇게 잘 하는 친구는 아니라고 하니 또 아이러니합니다. 알고 있는 단어가 나오냐 안 나오냐, 자신에게 걸리냐 안 걸리냐에 따른 운이 필요한 대회인 듯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모든 시험과 테스트가 그렇긴 합니다만 떨어진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눈물을 흘리며 얼굴이 시뻘개져 당황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붙는 잔혹한 경기를 어려서부터 꼭 해야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발전이 있고 우리 나라는 절대로 배제할 수 없는 '승자만이 살아남는 경쟁하는 문화' 이기에 아이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늘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쓴 맛을 보기도 하고 좌절을 겪기도 하며 아이들은 성장할 것입니다. 평소에 썩 잘 하는 친구는 아니였지만 운 좋게 1등을 하게 된 그 친구는 정말 열심히 해서 우승하게 된 쾌거를 이룬걸 수도 있습니다. 운 좋기 모두 알고 있는 단어가 나와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번 일을 통해 1등의 기쁨을 맛 보았으니 뭐든지 의욕이 생겨 열심히 학업에 집중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 입니다. 우리 큰 아이가 겪었던 것 처럼요. 승자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패배를 인정하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 대회를 통해서 아이들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성취하게 되고 다시 도전하며 성장하게 됩니다. 다만 그 열심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 큰 아이 또래인 친구에게 대회를 잘 준비했는지 우스개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또한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 친구의 대답이 놀라웠습니다.



"아! 어차피 전 그냥 망한 인생이에요.'


이 말을 듣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아직 5학년인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망한 인생이라고 표현하다니요. 아직 갈길이 한참 멀었는데 말이죠. 대회에 참가한 친구들 중 정말로 몇몇은 대회를 아예 준비하지 않은 친구들이 정말 있었습니다. 하루 전에 페이퍼를 보고 나왔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큰 아이 말이 이미 미리 포기해버린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니 막상 직접 보고 내 귀로 들으니 아이들이 노력 한번 해보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태도가 더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누가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이런 아이들을 누가 어떻게 잡아주어야 할까요? 부모는 알고 있을까요? 오지랍 넓게 이것 저것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회를 마치고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건 대회 시작 전 외고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인 학생이 아이들 앞에서 시범적으로 스피치를 했는데 그 내용이 구구절절 가슴 깊이 남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얘들아. 우리 모두는 인생의 주인공이야.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서 만들어갈 수 있지. 하지만 가끔 우리 인생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내 인생인데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때로는 조연으로 살아갈 때도 있더라구.


하지만 애들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우린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 돼. 그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거야.


그러니 얘들아. 꿈을 꾸고 꿈을 잃지마.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서 너희들의 인생에 멋진 주인공이 되어야 해. 너희들은 할 수 있어."



기억나는대로 적어보았는데 거의 80%는 정확합니다. 동영상을 촬영해놓고 큰 아이에게 두고두고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제 가슴에도 깊이 남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멋진 인생의 선배가 , 꽃다운 고등학생이 들려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큰 아이는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 되진 못했습니다. 노력한만큼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본인의 노력을 보상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번 대회의 행운의 여신은 우리 큰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큰 아이의 인생의 주인공은 큰 아이입니다. 주인공이 되어 주목을 받는 순간도 있고 지금처럼 조연이 되어 뒤에 숨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로 인해 계속 조연으로 숨어있게 된다면 인생의 주인공으로 인생을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깨닫고 또 무대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 미래를 그려나가고 계속 계획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큰 아이가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회를 쉽게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망한 인생' 이라고 표현하던 그 아이가 잊지 않고 깨닫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이 귀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아들아.

네 인생의 멋진 주인공은 바로 너야

넘어지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찰나가 모여 만들어진 모든 순간이 바로 인생이야.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의 주인공은 늘 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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