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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20. 2022

책은 미니멀하면 안되는 이유

책육아와 미니멀 사이

비어있는 공간들을 바라보면서 머리 속으로 미리 가구를 배치해보며 나에게 없는 이것저것을 더 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비어있는 공간들을 비어있는 아름다움으로 두었어야 했는데 그땐 몰랐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을 그저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하나 하나 채워나갈수록 마치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여백의 미는 점점 사라지고 살림살이가 가득 들어차버립니다. 정리를 할래도 참 쉽지 않고 버려도 버려도 다시 쌓이는 마법같은 엉터리 살림은 계속 됩니다.



난생처음 내집장만에 성공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물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미니멀하고 싶어도 미니멀할 수 없는 것이 엄마 마음입니다. 생각지 못하게 선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누군가 잠시 사용했던 깨끗한 육아용품들을 안겨주면 마침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거라서 일단 집에 여기저기 쌓아두기 시작합니다. 이제 제법 아이들이 컸지만 막내에게 아직  필요한 장난감, 책 등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감내하고 살아야겠죠.




틈틈히 잘 버리고 정리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잘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입니다. 책육아를 한다고 집안을 가득 채웠던 무수히도 많은 전집과 다양한 책들은 아직도 집안 곳곳에 채워져 있습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동화책들을 아직도 막내가 읽고 있고 큰아이가 유독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고 자주 보았던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고 있으면 어느샌가 내 옆엔 옛추억을 소환하고 있는 듯한 큰 아이가 함께 책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볼일을 보고 있더라도 유독 자신이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보았던 책을 막내에게 읽어주고 있으면 어느새 슬쩍 옆에 와서 앉아있는 부쩍 많이 큰 아이 모습이 여전히 귀엽게 느껴집니다. 그때 그 시절 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엄마 감성세포도 살아납니다. 큰 아이가 재미있어했던 부분에서 영락없이 동생들도 빵 터집니다.



거실에 텔레비전도 놓지 않고 책장으로 가득 채워 주고 읽어주었던 책육아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자란 삼형제는 지금도 조용해서 뭐하나 보고 있으면 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니멀 열풍이 한참이던 그때, 저의 눈에 가장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의 책이였습니다. 책이 가득 있는 거실이 지저분하게 느껴졌고 책을 한 곳으로 몰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큰 작업을 하기 시작합니다. 거실을 가득 채우던 책을 다 빼서 방에 집어넣는 작업을 성공하자 깔끔해진 거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처음 이사왔던 새집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더라구요. 장난감도 다 밀어넣고 책도 다 밀어넣은 거실은 말 그대로 미니멀했습니다, 쇼파와 테이블만 있으니 그렇게 깨끗해보이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새집에 이사온 기분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들이 더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때가 한참 코로나로 오갈데도 없었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나봅니다. 그런데 몇일 지나지 않아 그 많던 책을 다 빼서 방에 밀어넣고 거실의 미니멀을 찾게 된 큰 작업의 기쁨은 금새 후회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아이들의 책 읽는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꽂혀있고 널려있고 손에 밟히고 발에 밟히던 무수히 많은 책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아이들에게서도 책을 보는 모습이 사라져버리는 사실을 알게 되자 힘들게 책을 치운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책을 다 버린 건 아닌데, 방 한쪽에 잘 정리해놓았는데, 책 보는 시간을 정해서  도서관을 이용하듯이 책을 보러 그 방에 들어가려고 계획했지만 아이들도, 저도 그게 잘 되지 않더라는 겁니다.




엄마가 원했던 미니멀은 책이 없는 깔끔한 거실이였습니다. 엄마가 원했던 미니멀은 새집같은 깨끗함을 선물해주었지만 아무래도 거실에 머무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거실에서 책이 사라지자 아이들의 손에서도 책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이였습니다. 다시 고민 없이 책을 방에서 조금씩 꺼내다가 거실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만 최대한 아이들이 자주 읽고, 많이 읽었던 책들을 위주로 꺼내서 다시 거실에 채우기 시작하자 다시 책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거실에 채워집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눈에 밟히고 손에 밟히고 발에 밟히는 책이 있어야, 많으면 많을수록 확실히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더라는 겁니다.



미니멀은 좋습니다.

결국은 버려질 예쁜 쓰레기로 집을 채우며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게 되어서 좋습니다. 비워진 공간의 아름다운 미학도 있습니다. 옷도 미니멀한게 좋습니다. 신발도 미니멀한게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옷 두세벌만 있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 옷도 장난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장난감이 너무 많은 것이 해가 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장난감이 넘쳐나는 것 보다는 부족한 것이 훨씬 좋다고 하는데 엄마 마음은 그렇진 못한다는 것이 늘 아쉽습니다. 뭐든지 과하지 않는 미니멀은 살림에도 육아도 참 좋은 듯 합니다.



하지만 책은 미니멀과는 친할 수 없는 듯 합니다. 책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더 효과적입니다. 부지런을 떨어서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을 보고 또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집안 가득 채워진 책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도록 만들어줍니다. 무엇보다 '책은 내 친구' 라는 말이 현실이 됩니다. 조용해서 뭐하나 보면 '책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실이 됩니다. 책은 미니멀하면 안됩니다. 책이 미니멀해지는 순간, 아이들의 손에서 책이 사라지더라구요. 엄마의 욕심을 잠깐 내려놓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온 집안은 미니멀해질 것 입니다. 그때까진 우리집 거실엔 미니멀대신 아이들로 가득 채우고 책으로 가득 채우려고 합니다. 언젠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이들이 사라진 미니멀한 깨끗한 거실에서 혼자 책을 읽게 될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허전하고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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