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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Aug 11. 2022

마늘과 주부 9단 사이

마늘은 맨날 썩어서 버리는 것이였다고?


시골에서 친정아버지가 마늘을 한접을 보내주셨다. 그 귀한 육쪽마늘이다. 이 시기에만 나오는 마늘이고 지역농산품이기에 친정아버지는 매해 이맘때쯤 마늘을 보내주셨다. 처음에 친정아버지에게 마늘을 한접 받아보고는 생각보다 많은 양에 깜짝 놀랐다. 귀한 식재료이니 버리지 말고  먹어야지  각하고 다짐하지만 정말 제대로 먹어본 적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처음에는 쟁겨놓고 먹으면 되지 싶어 쟁겨놓으며 그때 그때 까먹기 시작했다가 얼마 못가 다 말라서 껍데기만 남은 마늘들을 보며 아까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번째 받았을 때에는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혼자 쟁겨두지 않고 이웃과 나눠먹기 시작했다. 마침 딸 집을 방문했다가 내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늘을 까줄테니 다 가지고 오라고 해서 정말 구세주를 만난 마음으로 마늘을 품에 안고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헌 마늘을 드리고 뽀얀 속살을 드러낸 예쁜 새 마늘을 받아온 그때의 그 가뿐함은  뭔가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한 홀가분한 것이였다. 그때 나는 돌이 조금 지난 갓난쟁이 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한참 육아전쟁을 시작한 초보엄마인데다, 마늘의 소중함과 귀한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마늘을 풍성하게 넣고 각종 요리를 뚝딱 해내는 시간보다는 육아에 몰입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마음은 앞서지만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는 요린이였다. 그런 내가, 어린 돌쟁이 아가를 데리고 마늘을 까고 쟁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다음  받은 마늘은 모두 시어머님께 드렸다.  시어머님이야 말로, 귀한 마늘을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마늘을 받아주셨고, 손수 마늘을 까시고 곱게 다지셔서 냉동실에 두고 먹으라며 챙겨주시기까지 하니 처음엔 완벽하게 주인을 만난 듯 느껴졌다. 마늘 한접이 빛나도록 사용해줄 참주인을 만난 듯 했다. 하지만 몇번 드리고 나니, 드리는 손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마늘을 까고 다지는 일이 얼마나 고된일인지 알기에, 마치 다 까서 곱게 다져진 다진마늘을 품에 안기 위해 시어머님께 노동을 선물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자 그 뒤로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욕심을 버렸다. 가끔은 안 보내주셔도 된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늘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 죄송했기 때문이다. 마늘 한접 대신 먹을 수 있을 만큼 욕심을 버리고 반접만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한참 먹을 만 해지면 마늘이 똑 떨어져마트에서 마늘을 다시 부지런히 사야 하니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그렇게 매년 느꼈던 마늘과의 씨름 아닌 씨름을 하며 사투를 벌인지 벌써 10년정도 되어간다. 이제 주부 경력도 10년차, 육아경력도 10년차인 베테랑 주부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제 모든 요리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주부9단의 문턱에 이르렀고 모든 요리의 풍미와 완성도를 높여주는 마늘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부쩍 큰 아이들은 이제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며 틈틈히 마늘도 깔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몇해 동안, 받지 않던 마늘을 올해는 한접을 다 받겠다고 아빠에게 야심차게 주문을 했다. 택배 상자 안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작고 알찬 마늘이 마늘망에 쌓여 예쁘게도 누워있다.




좋았어. 올해는 이 마늘 한접을 내 손으로 일일이 다 까서 다지고 냉동실에 두고두고 먹어보겠어.






야심차게 계획하고 확실히 다짐하고는 마늘을 조금씩 까기 시작한다. 욕심내서 까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두 주먹씩 물에 담궈놓고 하루쯤 지났을 때 틈틈히 까기 시작했다. 두 주먹쯤 담궈놓은 마늘은 물을 흠뻑 먹어 까기 어렵지 않다. 30분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 방학이 한참이다. 나는 아이들과 박물관 투어와 견학을 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였다. 다행인 것은 부지런한 아이들과 아침 일찍 나서서 오전 관람을 마치고 오후에는 집에 돌아와 쉴수 있는 일정이였고, 놀라운 것은 그렇게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면서 저녁밥을 지어내고도 틈틈히 마늘을 미친듯이 까고 있는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외출을 하고 오면 힘들기 마련인데, 뻗어야 정상인데, 저녁밥은 안 하고 싶어지고 그럴땐 그냥 손을 뻗어 배달앱을 이용해서 배달메뉴를 클릭하고 손쉽게 저녁을 해결하면 그만인데 이상하게 나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고, 밑반찬을 만들며 저녁메뉴를 미리 만들어놓고도 마늘을 까고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변화는 아침형인간이 주는 활력과 생기라고 단연코 확신하고 있고, 아이들이 제법 커서 수월해진 육아와 이게 진정 내가 한 것이 맞는지 싶게 너무나도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주부9단으로 변신해나가는 길목에 서 있는 모든 것이 맞물려 떨어진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 시간의 변화는 육아를 하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마늘을 틈틈히 깔 수 있는 노련함이라는 것이다.








무슨 마늘 하나 깐것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마늘을 까고 갈고 쟁이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을 일인지 10년동안 무수히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서 4일, 5일동안 틈틈히 마늘을 까기 시작하자 어느덧, 뽀얀 속살을 드러낸 마늘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마늘을 갈아내는 순간 나는 어찌나 기쁘고 감격스럽던지.... 내 손으로 직접 깐 마늘을 갈아놓고 지퍼백에 담아놓자 지퍼백 두개를 가득 채운 갈은 마늘이 생겼다. 절로 속에서 외침이 일어났다.





나는 마늘부자다.








이제 반만 더 까면 된다. 신이 났다. 평소처럼 다시 두 어줌 마늘을 물에 담궈놓았다 까려고 남은 마늘을 찾았는데... 남은 마늘이 담긴 상자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남편이 어제 쓰레기를 한 묶음 갖다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마늘박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영락없다. 버린 것이 분명하다. 확인해보니 버렸다고 한다. 남편이 버린 재활용 쓰레기장에 가서 혹시라도 아직 마늘이 남아있는지 나도 모르게 슬리퍼를 신고 뛰쳐나갔다. 마치 보물을 찾듯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늘이 담긴 상자를 이러저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늘이 담겼던 상자는 찾았는데 마늘은 보이지 않는다. 정리하는 아저씨가 그냥 버렸을까? 마늘의 소중함을 아시는 아저씨가 '이게 왠 떡이야' 생각하며 주섬주섬 챙기셨을까... 마늘이 반접 정도 들어있으니 생각보다 많은 양이고, 그늘망에 그대로 담겨있기에 후루룩 버리진 않으셨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너무너무 아깝다.







마늘을 까는 재미에, 그 마늘을 갈아버리는 통쾌함에, 간 마늘이 두둑이 담긴 지퍼백을 냉동실에 쟁겨두는 풍족함에 이제 막 눈을 떴기 때문에 버려진 마늘이 너무나 아깝고 그 재미와 통쾌함과 풍족함을 더이상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나름 주부 9단으로써의 나의 첫 도전이였고 도전이 불가능하게 되자 더없이 아쉬웠다.






마늘에 얽힌 에피소드가 이렇게 하나 생겨났다. 이제 나는 해마다 자신있게 마늘을 한접 받을 것이다. 친정아빠가 보내주신 귀한 마늘을 틈틈히 까고, 쟁여 진정한 마늘 부자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마늘의 귀함을 몰랐던 내가. 잃어버린 마늘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아다니며 까고 싶어 미치겠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마늘을 온전히 먹은 적이 없던 내가 이제 마늘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 알도 허투루 버리지 않기 위해 마늘을 까고 다지고 쟁이면서 난 확신했다.



이것은 진정한 주부9단의 길이라고... 그 주부 9단의 길은 하루 아침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나에게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갈 수록 생기는 여유와 맞물려 찾아오는 시간이라고... 육아에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요리와 살림에 더 익숙해지고 완벽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주부9단의 길이라고...그러니 아직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마늘이 아까운 줄 알면서도 썩고 결국은 버리게 되는 그 과정을 마땅히 겪어야 한다고...그런 과정을 겪고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지나가면 마늘 한톨도 소중히 느끼고 대할 수 있는 주부 9단이 되는 것 임을....



나는 이제 조만간 김치도 담게 되겠지. 제법 큰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직접 김치를 담구었다고 말하며 그 분이 담근 김치를 먹으며 감탄하고 존경스러워하며 어린 아이를 둘러업고 그 김치를 먹으며 신기해하고 있었던 그 시절 내가 느낀 감정을 또 다른 초보엄마, 초보주부는 느끼겠지. 인생은 그래서 굴레라는 것이다.









#주부9단 #마늘 #초보엄마 #초보주부 #요린이 #마늘까기 #요리 #육아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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