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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Aug 17. 2022

우리 아들 사춘기인가봐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너에게



글 제목을 시작하며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이라는 말에서부터 목구멍에 묵직한 것이 차고 올라오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사춘기가 두려워서일까. 사춘기가 시작됐나 싶게 부쩍 큰 아이가 기특해서일까...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들과 여름방학기간동안 박물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형님 포스 풍기는 큰 아이가 낯설게 보였다가도, 아직도 아기 때 얼굴 그대로, 앳된 얼굴로 동생들과 웃고 떠드는 큰 아이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170cm인 여자치고는 , 다른 엄마들보다 확연하게 큰 편인 나와 어깨를 겨루며 걸을 수 있을 만큼 키도 자라고 몸집도 커졌지만 아직은 엄마앞에서 팬티바람으로도 부끄럽지 않게 다니고 벗은 몸을 보고 있으면 남자 냄새도 물씬풍겨난다. 그래도 얼굴은 아기 때 얼굴 그대로 , 앳된 얼굴이 그대로 있으니 참 묘한 일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아서인지, 요즘 신생아 아가들 얼굴을 보면... 전에는 그저 마냥 귀엽고 예쁘고 작게만 느껴졌는데 그 얼굴그대로 자라나있을 미래의 모습이 훤하게 그려지곤 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난 것 처럼그 아이들도 그 작은 얼굴 그대로 몸집이 쑥쑥 자라게 되겠지.









아직 혼자 있기를 즐겨하거나, 혼자 굴 속으로 파고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단계는 아닌 듯 하다. 여전히 동생들과도 잘 지내고 동생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어린 동생들이 늘 함께 있어서 또래보다 많이 순수하기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게 된 큰 아이는 아직도 밖에서도 나와 손을 잡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즐겨하고 거부하지 않는 편이다.  내 손 만큼 커진 큰 아이가 엄마 손을 차지하고 있어서 막내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




그런 큰 아이가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느끼는 건, 부쩍 강해진 자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 줄 알았다. 나랑 말장난을 하고 싶은 건가 싶게 내 말을 사사건건 그냥 넘기지 않고 맞받아치는 녀석이 얄밉게 느껴졌다. 엄마인 내 생각과 내 소견이 아이에게 하나도 스며들 수 없었다. 침투되지 않았다.  엄마의 생각을 전해주면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전에 있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자신만의 생각을 아주 논리적으로 내세우며 철옹벽을 치고 내 의견이 자신의 사상에 엄마의 생각이 화살처럼 꽂히기를 거부하며 그  꼴을 볼 수 없다는 듯이 맞받아치고 쳐 내는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엄마에게 반항한다고  화를 냈는데 몇일 지나지 않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는 지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구나...



12년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세계와 가치관들이 하나씩 정립되고 차곡히 쌓여나간 것들을 내세우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엄마에게서 배우고 아빠에게서 듣고 배운 부모의 가치관들과 사상들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자신만의 세게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한번 꽂힌 생각은 꺽을 줄을 몰랐다. 무작정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내 생각들을 가지쳐내기 시작하는 아이랑 처음에는 죽자고 싸울 뻔 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싶은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아이가 세운 사상과 가치관들이 너무 비판적이고 회의적이여서 , 또 폐쇄적이게 느껴져서 그런 아이의 변화가 가볍지 않게,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었구나 생각하고 인정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건드리고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는 내려놓았더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제법 그럴듯한 증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어필하는 아이의 변화된 모습이 새삼 기특하게도 느껴진다. 그걸 바꾸려고 죽자고 달려드는 순간 그 어렵고 험난한 사춘기의 진흙탕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조용하고 무탈하게 아이들의 사춘기가 지나가길 늘 바랬었다. 비결은 '아이를 그냥 두는 것' 이라고 사춘기를 겪어온 육아 선배들이 하나 같이 말해주고 조언해주었다. 그렇게 할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이상한 길로, 비뚫어진 길로만 가는 것 같은 모습을 어느 부모가 모른 척 하고 아이를 그냥 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 밖에는 부모인 우리가,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건 아주 작은 시초에 불과하고 내 앞에 어떤 사춘기의 강이 아이와 만날 수 없도록 나와 아이 사이를 갈라놓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부족해보여도, 뭔가 잘못 되어 보여도, 그 길을 갔다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만의 세계와 가치관을 구축해나갈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춘기를 보내는 가장 유익한 방법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난 아이는 모든 것을 바르게 돌이킬 힘과 능력이 있을 것이다. 아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기르고 품에 품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게 쉬우면서도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땐 방관하지 않고 잘 하고 있을 땐 방목해주어야 한다. 방관과 방목 사이의 그 경계가 나에겐 가장 어렵고 모호한 경계이다.




사춘기를 겪으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철저히 혼자서 씨름을 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난 모습을 난 얼마나 모른 척 관심을 두지 않으며 난 과연 얼마나 참아줄 수 있을까. 얼마나 모른 척 해주고 기다려주고 눈 감아주고 그저 응원해주고 믿어줄 수 있을까.. 그게 불안하고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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