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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Oct 22. 2022

자식 같던 책 들을 장가보냈습니다

주부에세이 4


다니는 교회에서 바자회가 있었다.

지역행사로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는 큰 규모의 바자회를 해마다 진행하며 수익금을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는 뜻깊은 행사에 늘 동참하며 봉사하고 섬겨왔다.



나는 해마다 봉사를 해왔는데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신발코너, 옷 코너, 주방코너에서 뜨거운 열기 앞에 불티나게 팔리는 부침개를 판매하기도 하며 해마다 다양한 품목을 팔아보았는데 올해 내 담당코너는 [책코너]로 지명되었다.








 책과 더불어 사는 풍성함을 늘 인스타에 올린다. 내 인스타를 보시던 총괄부장님께서 책 판매 담당에 내 이름 석자를 올려놓으신 것을 보고 풋웃음이 났다. '책 좋아하니까  한번 팔아보라.'고 기회를 주신 것 같기도 하고 테스트를 당하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묘했다.






한 편으로는 ' 좋아하는 아줌마' '  읽는 엄마'로 인정받는 듯도 하고, 뭔가 캐릭터가 확고해진 듯 해서 기쁘기도 했다. 떫떠름한 마음보다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바자회를 준비해보기로 결심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바자회는 수익을 많이 내야 하는 만큼, 책 판매와 좋아하는 것은 막상 별개처럼 느껴졌다.  자녀들에게 읽힐 책을 열심히 고르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도, 책을 펼쳐들고 잠시 멈춰 서서 한줄 한글 읽어나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따뜻함을 느끼며, '함께 읽고 있다.' 는 희망에 벅차 거저 가져다 읽으시라고 바리바리 싸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마음 약한 여자이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보지만

어쨌든 물러날 길이 없다.





기증 받은, 두서 없이 수북히 쌓여 있는 책들을 진열대에 정리해야 했는데, 누구라도 펼쳐져 있는 책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 책을 보고 고를 수 있는 편안함과 근사함을 선사하고 싶어졌다. 함께 해준  여러 손길들로 제법 근사하게 바자회의 책코너가 완성이 되었다.





그런데 정리하며 보니 어른들이 읽을 만한 책이 너무 턱 없이 부족했다. 낡디 낡은, 오래 되어 케케 묵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 들만 가득했고 , 그 흔한 (우리집에 흔한) 육아서적 하나 없고 철 지난 베스트셀러 하나없이 밋밋한 성인책 코너가 너무 아쉬웠다.






그런 마음을 주신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가 아끼며 소장하던 책을 바자회에 아낌 없이 기증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사서 읽으며 책장에 꽂으며 소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맛 보게 해준 나의 소중한 책 들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를, '함께 읽을 수 있는 누군가' 가 또 생기기를, 내가 느끼고 경험한 독서의 유익함을 조금씩 맛볼 수 있기를, 그렇게 독서의 열매가 새롭게 주렁 주렁 열리길 바라는 희망이 생기자 책장을 빛내주고 나를 빛내주던 책 들을 바자회에 기증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과감하게 책을 정리해서 바자회에 기증했다. 내가 보던 책들은 완판되었다. 나는 내가 본 책이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권할 수 있었다. [재테크] 서적을 먼저 들춰 보는 분에게 다가가 재테크 서적 이것저것을 더 권해줄 수 있었고, 또래 엄마들에게는 내가 읽던 육아서적들을 자신 있게 권해줄 수 있었고, 베스트 셀러나 자기계발 책을 찾는 분들에게 내가 읽었던 책을 자신있게 권하고 판매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책' 이라고 하니 손님들은 더 신뢰를 했고 딱 봐도 구닥다리 옛날 책이 아니라 현재 서점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최신 서적들이 많기에 인기 없을 것 같은 책 코너는 북적였고 덩달아 아이들 책도 신나게 팔려나갔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엄마들에게 "하루 딱 3장씩만 읽으며 조금씩 늘려나가보라."고 자신있게 권면하며 품에 책을 안겨주었다.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아직도, 내 손때를 입고 책 곳곳에 채워진 선명한 여러 밑줄 자국으로 도배된 내 책들이 그립고 텅빈 책장을 보니 왠지 가슴이 휑하고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곳곳에 밑줄 친 흔적들을 보며 함께 공감하며 독서에 더 열심을 내고 내가 권해 준 그 한 권의 책이 시작이 되어 독서바람을 몰고 오기를, 그렇게 될 거라 믿으면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든다.






그리고 책장에 아직은 남아있는 책들도 많다.

인문고전에 관련된 책 들과 자녀독서교육 등에 관한 서적들만 남겨놓았다.

빈 책장을 나는 이제 인문고전으로만 채워나갈 작정이다. 안 그래도 인문고전 책장을 하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에 잘 됐다.





나는 이제 베스트셀러와 자기계발서적, 자녀교육서, 재테크 서적을 모두 정리했다. 그렇게 독서의 발판이 되어준 소중한 책들을 장가 보내고 든든하게 등에 업은 체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나는 이제 인문학의 울창한 숲길을 제대로 걸어볼 계획이다. 무수한 시행 착오를 통해서 그 가치를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점 들이 연결되어 나의 인생에 또 작은 선이 그려진다. 하나의 점이 다른 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운 바자회다.









#바자회 #책 #독서 #인문학

#주부에세이 #일상에세이 #육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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