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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Oct 20. 2022

엄마 정신차려!!!

주부에세이2 (사진관 에피소드 1)



몇일 전, 아이들과 여권사진을 찍으러 동네 사진관에 갔다. 분명 아는 곳이고 자주 가는 곳인데 나는 아이들셋을 주렁 주렁 달고 또 길을 헤맸다. 사진관은 복합쇼핑몰 그린동에 있는 건데 난 옆 건물인 블루동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씩씩하게 갔고 열심히도 헤매며 삥삥 돌아다녔다. 5층 여기저기를 헤매며 보이지 않는 사진관을 찾아다니던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블루동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는 분명 그린동과 블루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분명히 그린동 건물로 진입했다. 그리고 나는 현재 그린동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한바탕 헤매고 나서 현재 있는 곳이 그린동이 아닌 블루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사진관 5층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7살 막내 아이가 나에게 해맑게 말을 건넸던 것이 기억이 났다.







""엄마. 여기 조랑이 (집에서 키우던 도마뱀) 먹이   오는 곳이잖아?"

 조랑이 먹이 사러 오던 건물은 블루동이 맞다.


" . 같은 건물인데 여기는 그린동이야. 블루동은   건물이야. 비슷해서 그런지 기억하고 있네? 오구오구~~"



그렇게 얘기하고 5층에 가보니 사진관이 없다. 사장님과 통화하다가 그곳은 그린동이 아닌 블루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에게 여기가 블루동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호들갑을 떨며 물어보자 옆에서 큰 아이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엄마. 여기 엘레베이터 곳곳에 파랗게 되어있잖아. 나도 오면서 '여기 블루동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헉...

그 사소한 것을 놓치고 씩씩하게 세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잘못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니 순간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하던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는 블루 컬러의 포인트들이 엘레베이터에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다 보고 있었던 블루동의 기본이 되는 파란색을 나는 보지 못했다. 블루동에 있으면서 그린동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세 아이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헤맸던 발품팔았던 수고함이 더 고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인 블루동에서 왜 혼자 그린동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을까. 나의 부주의로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헤매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들이 보고 있는 기본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사진관이 5층 어디쯤일까?'

'아이들 셋을 데리고 여권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이들 배고프지 않게 이른 저녁을 먹고 오길 잘했어.'

아이 셋을 데리고 사진관을 방문해 여권 사진 찍기가 영 귀찮았는데 남편이 부탁한 것을 바로 처리하러 온 나를 칭찬하며 오늘 꼭 해야 할 일중에 하나인 여권사진찍기를 미루지 않았다는 사실들에 둥둥 떠서 온통 블루인 블루동에 있으면서 '이곳은 블루동이 아닌 그린동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놓치고 있었던 게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현재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나는 아이들을 잘 이끌고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있는 것인가...아이들처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먼 일 들과 허상에 둥둥 떠서 현재 집중해야 할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사는가...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잡념도 많고 실제로 그 안에서 계획하고 이루어나가야 할 일들도 많다고 여전히 핑계를 대고 싶다. 내 손을 빌려 척척 정리되고 해결되는 무수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고 이런 저런 신경쓸 일 들이 가득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나는 주부다. 현재에 집중할 수 없는 분주함 속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챙기고 나 자신도 챙겨야 하는 몸이 열개라도 바쁜 엄마라고 죄책감을 덜어내본다.




현재에 집중하고 블루동이라는 사실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너희들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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