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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01. 2022

뭐든지 타이밍이 중요해

주부에세이 (책 읽고 성장하고픈 허당엄마)



“우진아. 일루 와봐. 엄마가 방금 [공부의 배신]이라는 책을 다 읽었거든. 읽고 난 후 엄마가 느낀 생각을 너에게 얘기해주고 싶어. 엄마는 지금 너를 통해 메타인지를 하려고 하는 거야. 들어줄거야?”


“오~ 그래? 한번 얘기해봐!”


신나게 내 앞에 앉은 큰 아이. 엄마가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정리하며 메타인지를 하고, 엄마의 생각과 느낀 점을 내 아이에게도 알려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나는 오전에 스케줄이 있어서 분주했고 바빴고,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몇일 전 부터 미루고 미루던 일을 끝낸 참이었다. 다 읽은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컴퓨터에 있는 [엄마의 서재] 폴더에 타이핑으로 다시 남기며 정리하고 작업하는 일을 마치자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막내가 하원하기 전까지 30분의 시간이 있다. 30분이면 달콤한 낮잠을 자기 충분하다.




“우진아. 엄마 30분만 잘게.”

하고 쇼파에 이불까지 챙겨와 드러누웠는데 갑자기 내 머리속에 복잡한 이 생각을 좀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 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을 박차고 반짝이는 아들 눈을 바라보고,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불을 끌어 당겨 덮은 체로, 눈을 감은 체로 아이에게 주절주절 인상깊었던 부분을 말하기 시작했다. 착한 아들은 내 옆에서 묵묵히 들어준다. 그냥 자는 게 나았으려 싶다.


중간에 벌떡 일어나 책을 집어와 펼쳐서 아이에게 인상 깊었던 구절을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이 무거웠고 다시 쇼파에 드러누워 이야기를 이어갔다.


눈을 반쯤 감고 내 머리속에 생각을 주절주절 떠들다가 “그래서 우진아. 엄마는 네가 대학을 가게 되고 준비하게 될 때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고 공부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을 마치자 아이가 감동한 듯 콧끝을 만지작 거리며 훌쩍 거리는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취한다.



“왜 우진아? 엄마 말이 감동적이었어?


머뭇거리던 아들


“아니.. . 꼭 엄마 모습이... 죽기 전 모습 같이 느껴져서...“



푸핫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그도 그럴 것 같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체 졸음과 맞서 싸우며 주절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모습과도 흡사했으리라.. 생각도 든다.




”어우~! 야~ 그래도 엄마 열심히 얘기 했는데 잘 듣기는 한거야? 너무 했다~~“






“그리고 엄마. 엄마 지금 모습이 책에서 어떤 사람이 아픈데 얘기하는 모습이랑 똑같아. 어떤 사람도 책에서 엄마처럼 이불 덮고 누워서 얘기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책을 가지고 와서 또 얘기하다가

(내가 그랬다. 눈을 감고 주절 주절 말하다가 아이에게 멋진 문장을 들려주고 싶어서 벌떡 일어나 책을 집어 와 그 내용을 읽어준 후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다시 또 이불 덮고 누워. 방금 엄마 똑같았어. “




“어디 봐봐!”






아 참나. 진짜 똑같다. 아이랑 빵 터져서 둘이 붙들고 깔깔깔 한 바탕 웃어댔다.




엄마가 읽은 책 내용을 아이에게 들려주려는 나의 선한 의도는 아름다웠고,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리속을 정리하기 위한 메타인지 학습법도 기발했으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난 너무 졸렸다.




평소에 낮잠을 잘 자지도 않는 편인데, 아이랑 얘기하다 보면 잠이 깰 줄 알았는데 잠은 달아나지 않았다. 졸려서 이불 덮고 누워 그래도 말은 해야 겠다고 주절주절 말하는 내 모습이 마지막 죽기 전 그 모습과 똑같았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슬프기도 하다.

한 바탕 아이를 끌어안고 연신 웃어대다가 난 결국 남은 15분 동안 꿀잠을 자고 막내를 데릴러 나갔다.





다음부턴 졸릴 땐 그냥 깔끔하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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