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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02. 2022

까맣게 까먹기 대장 엄마는 허당 챔피언

주부에세이 (까맣게 까먹기 대장 엄마의 허당삶)




“부장님~ 자꾸 이렇게 챙겨주시고... 지난 번에도 주셨잖아요~ 또 주시는 거에요?”




나는 교회 유년부 교육부서  교사이자 총무직을 맡고 있다. 부장님이 나를 포함한 임원진 3명에게 또 선물 꾸러미를 내민다. 부장님은 영양제, 비타민 등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야무지게도 잘 챙겨드시는데, 가끔씩 우리에게도 값비싼 영양제들을 종류별로 소분해서 작고 예쁜 쇼핑백에 정성껏 담아 건네주신다.




영양제 비싼거야 두말 하면 입 아프고, 당신 챙겨드시고 남편 것도 챙기고 함께 사는 시어머님 것도 챙기신다는데 우리에게까지 나눠줄 게 있나 싶은데도 매번 챙겨주신다. 명절이 되면 임원진 뿐 아니라 10명이 넘는 유년부 교사들에게 꿀이며 김이며 아낌 없이 나눠주시는데 그 섬김의 손길을 따라갈 자가 없다.



잘 섬기시고 늘 넉넉하게 나눠주시는 친정어머니 뻘 되시는 부장님의 손길에 ‘또 받아도 되나?’ 싶어 손이 부끄러워진다.




“우리 임원진 선생님들에게는 주는 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아.”




사람 좋은 넉넉한 미소를 잔잔하게 입에 머금고 수줍게 내미시는 작고 아담한 빨간 쇼핑백.

쇼핑백에는 유명 브랜드 치약과 젤리형 석류즙 작은 한 박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비타민젤리 한 봉이 담겨 있다.





‘나도 이렇게 잘 섬기는 손길이 되야지.

나도 이렇게 늘 나눠주고 베푸는 손길이 되면 참 좋겠다.’






추운 겨울, 주머니 속에 있는 핫팩보다 더 따뜻한 부장님의 마음이 담긴 선물꾸러미를 들고, 아이들이 하원하기 시작한 집으로 향한다. 선생님들과 수다 떨랴, 유치원에서 하원 한 막내 챙기랴, 고상하게 앉아서 임원진 회의를 하던 나는 다시 수다스럽고 억척스러운 현실전업주부로 돌아간다.




“아이들 데리고 추운데 차 타고 가요~ 데려다 줄게요.”


”그럴까? 성운아. 우리 차 타고 갈까?“



차가 있는 선생님이 데려다주신단다.

차에 타면서도 나랑 앞에 앉고 싶다는 막내랑 실랑이를 하며 막내는 뒤에 태우고 부산스럽게 짐꾸러기 가득 무릎에 짊어지고 앞자리에 앉아 벨트를 잡아 맸다. 운전하는 선생님의 가방을 놓을 자리가 없네.




“선생님, 내가 잘 들고 있을게요.“

(‘이따가 내릴 때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잘 두고 내려야지’)




차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줌마들의 수다 삼매경이 이루어진다.




“너무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잘 왔어. 성운아 내리자. 인사드리고.“

“안녕히 가세요.“

“어. 가세요~ ”



막내 손을 잡고 복닥복닥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 가방 부터 시작해 내 손에 늘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크고 작은 짐들을 부엌 싱크대 위에 턱 올려 놓으며 가뿐 숨을 내쉰다.



그때 내 눈에 보이는 빨간 쇼핑백.

두 개다.




선생님 것은 차에 두고 내렸어야 했는데, 내리기 전에 잘 두고 내려야지 그렇게 다짐했는데 내리는 직전에 또 까맣게 잊어버렸다. 또 까맣게 잊어버린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매번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리는가?






전화가 온다.


“선생님~~ 내 것도 가지고 싶었어? 하하하~ 가지고 싶어서 일부러 가져간거 아니지?”


“하하하 그랬나봐요.

아이 참, 선생님이 말 안해도 센스 있게 두고 내린다는게 또 가지고 왔네.“


“내일 어머니 기도회 때 줘요.”


“어, 내일 선생님 올 수 있어요? 알았어요. 그럼 내일 꼭 가져갈게요~”


“내일 봐요.‘





하.. 주일까지 미안해서 어떻게 가지고 있나 싶었는데 다행히 내일 줄 수 있다.



나는 내일 꼭 갖다주어야 오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타는 사명감이 솟아 올랐다.  나는 이런 허당짓에 신물이 난다. 나는 이런 허당엄마를 벗어나고 싶다.



‘내일 또 까맣게 잊어버리면 안되는데...

아. 그래. 현관문 앞에, 잘 보이는 곳에 두자.‘




현관문에 보이는 곳에 잘 두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육아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자기계발도 하며 또 하루가 분주하게 지나간다. 다음날도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키고 청소를 한 후, 어머니기도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교회로 향했다. 날씨가 춥다고 해서 차를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가장 추운 날씨에 나는 남편에게 남편이 빌린 도서를 도서관에 반납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반납할 책을 주섬주섬 챙기고 도서관 카드를 챙기며 머리 속에는 온통 ‘차를 타고 갈까? 걸어갈까?’만 되뇌이고 있다.




너무 추워서 걸어갔다가 감기가 옴팡 걸릴까봐 두려웠지만 그래도 걸을 만한 거리니 핫팩을 주머니에 쥐고 걸어갔다 오기로 결론을 내리고 교회로 향한다. 잘 생각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유유히 교회 앞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그제서야 두고 온 쇼핑백이 생각이 난다.




이럴 수가...



나는 이렇게 또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바로 현관문 앞에 두기까지 했는데, 현관문 앞에서 버티기엔 너무 작은 사이즈였다고 변명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나올 때 그 쇼핑백이 보이지 않았다. 내 머리속에는 ‘도서관에 차를 타고 가야 할지 말지’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

다시 집으로 달려간다.




그 작은 쇼핑백 하나를 집어오기 위해 나는 다시 집으로 달려간다.

어제 허당짓을 했으니 오늘 또 한 허당짓을 들킬 수 없다. 나는 허당짓을 감추고 쇼핑백을 찾으러 온 선생님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잘 챙겨왔다.‘ 는 당당함으로 쇼핑백을 건넨다.

나는 이렇게 평생 허당짓을 감추고 살아야 하나 보다.




남편이 이런 나를 가여워한다.

참 힘들겠다고 빈정거린다.

그래.

참 힘들다 여보.



책을 많이 들여다봐도 허당짓은 계속 되려나보다.



나는 부장님처럼 누군가를 섬기거나 베푸는 손길이 되기보다는 ‘오늘은 허당짓좀 안 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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