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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03. 2022

엄마! 방금 아주 논리적이었어!!

주부에세이 (책 읽는 허당엄마가 논리적인 아들에게 들은 칭찬)









대한민국의 감동적인 16강 진출.

아직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사실 나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룰도 잘 몰랐고 해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보고 있노라면 지루해서 10분 만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축구의 재미와 매력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던 철옹성 같은 내 마인드를 깬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둘째아들의 축구대회날이었다.




아들은 축구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축구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골을 넣거나 볼을 휘두르고 주무를 실력은 안 되었지만 열심히 뛰었고, 몸싸움도 제법 해대며 수비를 했고 같은 팀이었던 친구들이 실력이 좋았고 모두가 열심히 뛰어주어 아이가 속한 팀이 1등을 하게 되었다. 경기를 지켜보며 큰 아이랑 남편과, 엄마들과 함께 응원을 하면서 어찌나 재미나던지... 그 뒤로 아이도 자신감과 재미가 붙어서 축구학원에서 거의 에이스급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너머로 대표팀들이 뛰는 경기는 나에게 그저 불난 집에 난 불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토록 무심하게 보이더니 내 아들이 넓고 푸른 잔디밭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을 응원하고 골을 넣으며 환호하고 기뻐하고 났더니 축구가 참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이다.





우리집은 밤문화가 없다.

아이들도 10시면 잠이 든다. 전에도 늦은 시간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아이들을 재우다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퍼지는 함성소리를 들으며 설잠을 잤었다.



그랬던 내가 이번 대표팀 경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늦은 시간에 하는 경기지만 축구에 부쩍 관심이 많은 둘째아이와 함께 관람하고 싶었고, 큰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남편과 보기 시작한 [카타르월드컵] 대표팀 축구경기.

기대되었고 설레였다. 어쩜 해설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요즘 책 좀 읽었다고 해설도 귀에 쏙쏙 잘 들어오나보다 혼자 기뻐했다. 전에는 해설 따위는 들리지 않았고 듣고 있어도 딴 나라 말이었는데,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보니 해설도 귀에 잘 들어왔고, 해설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들으며 경기를 관람하니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책 좀 읽었다고 이제 축구 경기도 다르게 보이고 들리네..’



책 읽는 허당엄마는 남편도 모르게, 아이들도 모르게 혼자서 뿌듯해했다.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무승부로 끝내고, 가나경기를 아쉽게 3대 2로 마친 상황에서 몇일 후에 있을 포루투칼가의 경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고, 우리 나라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싸워봐야알겠지만.




가나와의 경기가 있었던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큰 아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알고 있었던 내용과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접목시켜 나에게 축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엄마. 우리 나라 16강 진출 못 할 것 같아. 포루투칼이 피파랭킹 9위래. 우리나라는 28위고.

근데 어떻게 이겨? ”


“그래? 근데 가나는 피파랭킹 골찌래.“


“응 맞아. 가나는 피파랭킹 61위래.“


“근데 피파랭킹 꼴찌인 가나가 피파랭킹 28위인 우리 나라 이겼잖아. 그러니까 우리 나라도 포루투칼이 피파랭킹 9위여도 이길 수도 있지.“


“어. 맞아. 그렇네!”




그렇게 얘기를 끝내고 돌아서는 듯 하다가 큰 아이가 기분 좋게 다시 말을 붙인다.




“엄마. 지금 방금 굉장히 논리적이었어.”




하.

이것은 논리적인 큰 아들에게서 듣는 칭찬이다. 비논리적인 나는 논리적인 큰 아이가 하는 이야기들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가끔 얼마나 많이 주눅 들고, 얼마나 많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사고보다 감정이 앞서는 여자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이야기하는 아이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런 큰 아이에게서 듣는 칭찬이라니...어쩐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린 아이처럼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 기분이 좋아져 감출 수가 없고 아이에게도 감추지 않기로 했다.




“어머.. 우진아. 방금 엄마가 논리적이었어? 논리적인 우진이가 칭찬해주니 엄마 기분이 좋은데? ”



승리의 브이를 턱 밑으로 그려보이는 큰 아들.. 이 녀석 진짜 귀엽다. 그런 아들에게서 칭찬받고 기분이 좋아지는 나도 귀엽다.




책 좀 읽었다고 허세 부리는 허당 엄마는 이제 나도 좀 더 논리적이게 말하고 생각하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 의도하지 않았지만 피파랭킹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을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 축구여. 고맙다.




엄마의 논리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정말 포루투칼을 꺽고 대역전승을 펼쳤다. 가나가 우리나라를 꺽은 것 처럼 우리나라도 막강한 포루투칼을 꺽었다. 오늘을 위해 피땀흘려 노력하고 준비한 선수들의 땀방울과 눈물이 아름답다.




화요일 경기에도 우리 태극전사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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