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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28. 2022

내 코는 백만불짜리 코

주부에세이 )나이 마흔 넘어 계단에서 넘어진 엄마??

“하이고. 여보야...

나이 마흔 넘어서 넘어져서 다쳤다고 어디가서 어떻게 얘기하니 창피해서....

애들한테 그렇게 뛰지 말라고 하면서 엄마가 뛰다가 넘어졌다고 창피해서 어떻게 얘기하니...“




괌에 여행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날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나를 보며 남편이 건넨 말 이다. 너무 아프기도 했지만 계단에서 뛰다가 넘어져 다친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고 창피한 것도 사실이었다.









파란 하늘 두둥실 높이 큰 뭉게구름과 기분좋게 불어오는 남쪽바다의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수영장에서 마지막 날의 괌을 만끽하고 있었다. 수영장을 더 활기차게 연출해주는 레게풍의 음악은 과하지 않은 기분좋은 리듬감을 몸에 가볍게 실어주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분위기에 취해 내 몸도 물 속에 두둥실 떠 있었다.








이 사진을 찍고 나는 급하게 게단을 뛰어가다가 넘어지게 된다. 이 사진을 볼때마다 마음이 참 아프구나.





수영장에서 나와 아이들과 숙소로 돌아가면서 괌에서의 마지막 날 수영장 땅을 밟는 그 순간이 내심 아쉬웠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나는 그 순간을 또 놓칠 수 없었다 .원하는 곳에서 서서 사진 찍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강압적으로 핸드폰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 사이 아이들은 멀어져 가고 멀어진 아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몸이 마치 깃털같이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각을 느꼈다. 뛰고 있지만 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 날개를 펴서 날아가기 직전인 것 처럼 내 몸이 한 없이 가벼웠다. 나는 원래 뛰는 걸 싫어하고 가끔 뛰어야 하는 순간에도 내 몸이 너무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잘 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몸은 내가 늘상 느꼈던 그 무거운 몸덩어리가 아니었다. 나는 마치 겨울왕국 2에 나오는 엘사처럼 사뿐사뿐 가볍게 날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건 마치 환각상태와도 비슷했던 것 같다.

물 속에 둥둥 떠 있던 내 몸이 아직도 물 속에 떠 있는 것 처럼 착각했던 모양이다. 분위기와 기분과 물에 내 몸은 취해있었던 것 같다.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 일보직전에 내 몸은 곧 현실로 돌아왔고, 무거운 몸을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움직였던 부작용이 곧바로 몸을 자극했다. 발이 계단 끝을 부정확하게 디디면서 나는 달리던 그 속도 그대로 계단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정확히 얼굴로 넘어진 것이다.

이마를 먼저 강타당했고 연달아 코를 강타당하며 얼굴이 뒤로 젖혀져 목 뒤로도 강한 통증을 느꼈다.




“여보!! 내코!! 내 코 괜찮아??”

곁에 남편이 있었다. 코가 베어 사라진 것 같이 극심한 통증이 나를 두렵게 했다.  거울을 보니 이마에 왕방울만한 혹과 함께 코 언저리가 많이 쓸려 피가 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가여워했다. 넘어져서 다쳤다는 사실을, 계단에서 뛰다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다친 상처도 아팠지만 왜 계단에서 뛰었는지, 평생 잘 안하던 짓을 괌에 여행지에서 했는지,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심했으면 다치지 않았을 일이라고 자책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함께 여행 온 형님에게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부끄러워서 차마 어떻게 얘기하나..





나는 다쳤다는 사실보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쳤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무엇보다 괌 여행중인 나를 부러워했을 사람들에게 다친 소식을 전할 때 그 부끄러움을 생각하니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쌤통이다.’ 라고 생각하려나?

계단에서 넘어진 아줌마를 보며 얼마나 한심해할까?










결국 나는 ‘비골골절’ 진단을 받았다.

넘어진 후 고통이 그리 크지는 않기에 괜찮나 보다 싶었는데 코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들었다. 넘어졌을 때 강타당한 코의 통증과 충격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창피한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생기자 코뼈가 부러지지만 않았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역시나 코뼈가 부러져 있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본 후기와 내용 그대로 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최대한 빠른 시기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코가 휘어지거나 메부리코가 될 수도 있기에 여자인 나는 미용목적으로라도 꼭 수술을 받아야 했다.







창피할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생기자 그제야 내 코뼈가 부러지지 않았길 바랄 수 있었다. 바라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러진 코뼈를 수술해야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자 나는 그제서야 내 상처와 아픔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코뼈가 부러진 나를 온전히 안아주지 못하고 있었구나...

내 코뼈가 부러져 내가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으면서도 내 상처를 돌보아주지 않았다. 그저 나를 자책하고 부주의한 나를 미워하기에만 바빴다. 그것은 온전히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 코가 이렇게 아픈데, 코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괌 여행에서 코뼈가 부러져 돌아온 나를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만 신경쓰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랬다.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중요시했다. 나 자신을 돌보고 안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코 뼈가 부러진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나마 내 얼굴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코를 다쳤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내 코는 백만불짜리 코라고 생각했다. 코가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나 또한 내 얼굴에서 코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코를 다쳐으니 어쩌나 안타까웠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수술일정을 잡고 돌아왔다.

안해도 되는 코뼈 골절 수술을 받게 되면서 ‘좀 더 예뻐질 수 있다면 덜 억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나는 코 성형수술도 함께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높았고 처녀도 아닌 아들 셋 엄마인 내가 지불하고 시행할 시술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 코가 마음에 들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증이 좀 필요하다.






“선생님. 제 코 좀 봐주세요.

성형하면 더 예뻐질까요?”


“ 코 모양 예쁜데요.

굳이 손대지 않아도 되겠는데요.”



상담실장은 보통 수술을 권하기 마련이니 ‘좀 더 높이면 예뻐지긴 하죠.’ 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성형을 권유해야 마땅할 상담실장님이 ‘굳이 코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되겠다.’ 라고 말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내 코는 백만불짜리 코다.

그런 코를 다친 나를 먼저 보살펴줘야 했는데 말이다. 예쁜 코를 다쳐 이제야 속상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코를 다쳤고 너무 아팠던 나를 이제서야 토닥여준다. 예쁜 코 모양이 변형되지 않도록 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는 이번일로 나를 더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내가 가여워졌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나 말이다.  난 어떤 상황에서도 남 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을 더 배워야겠다.







#비골골절 #자아 #상처 #부끄러움 #수치 #주부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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