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핑거 Dec 15. 2022

우리 여행 못가??

주부에세이 (아픈 것 보다 여행 못 갈까봐 우는 아이)



막내가 유치원에서 만든 케이크를 보며 예쁘다, 잘 만들었다, 맛있겠다라는 뻔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그 순간,









한 번도 걸려온 적 없던 그 시간에, 그 분의 핸드폰에 내 핸드폰 번호가 눌려졌다. 발신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빨리 받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느껴졌고 엄마이면서 아직 죽지 않은 여자의 직감이 본능적으로 촉을 세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보통 일은 아닌가보구나...’




아이가 다니는 축구학원 감독님의 전화였다. 내 핸드폰에 새겨진 발신인은, 그 시간에 내 전화번호를 누를 일이 없는 [축구학원 감독님]의 전화였다. 아이가 축구학원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을 그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는 건 엄마로써 여자로써 가지고 있는 직감과는 상관없이도 이상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음을 감지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현준이가 운동을 하다가 다쳤어요. 쇄골뼈 부분을 다쳤는데 제가 보니까 골절이 온 것 같은데 확인하러 와주시겠어요?”


“네? 쇄골뼈를 다쳐요? 어쩌다가요?”





아이는 덤블링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어깨 부분이 다쳤다고 했다. 학원으로 정신없이 차를 몰고 가면서 아이가 어디에, 어떻게, 얼만큼의 충격으로 쇄골뼈를 무엇이 강타했는지 궁금해졌다.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감독님에게 어떻게 다친건지 좀 더 자세하게 경로를 물었더니 벌써 cctv 화면까지 다 확보해두시곤 보여주셨다. 이런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이신 줄 미처 몰랐지만, 감독님 입장에서도 아이가 운동을 하다가 다쳤으니 확인해야 할 증거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곧이어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친구와 부딪힌 것도 아니고, 어딘가 모서리에 부딪힌 것도 아니고 신이 난 아이가 혼자서 덤블링을 하다가 손을 짚지 않아 맨 바닥에 그대로 넘어진다. 어깨로 곤두박질 하는 장면이 보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어느 누구와 얼굴 붉힐 일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로 향했다. 아이의 어깨부분이 뭔가 뒤틀린 느낌, 내려앉은 느낌이 육안으로도 확인됐다. 아이는 쇄골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엑스레이 사진에서 쇄골뼈가 동강난 사진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쇄골뼈를 인위적으로 맞추는 시술을 가볍게 하고 보호대를 4주동안 해야 한다고 했다. 부러진 뼈를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맞추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아이도, 나도 잘 견디고 이겨냈다.





“그런데 선생님...

저희 여행계획이 있는데 아이 상태가 이런데 여행을 가도 될까요? 당장 몇일 안 남아서요...“





여행 일정과 목적지를 간단하게 설명드렸다.


“아. 가셔도 됩니다. 비행기를 타도 되고 일상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수영을 하거나 물놀이는 안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가셔도는 됩니다. 그래도 오래동안 준비하셨을 텐데...안 가면 억울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다정한 말과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터졌다. 눈물이 밀려나오는 그 순간 ‘여행에 못 갈까봐 아쉬워서 우는거니?‘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보실까봐 부끄러웠다.





아이도 아파서 울면서 “여행 못 가는 거야?” 라고 물었다. 자꾸 울길래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면 “여행 못 갈까봐!” 라고 말하며 다시 큰 소리를 울었다.






엄마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울음이 터진 건 ‘여행을 못 갈까봐.’ 가 아니다. 아이의 쇄골뼈 골절 부상이라는 믿지 못할 사실과, 아이가 견딘 통증과, 갑자기 이 모든 일을 감당한 엄마로써 긴장했던 시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였다. 또 감기에 안 걸리게 하려고 그렇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감기따위 코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뼈골절”이라는 상황을 만나게 된 허무함 때문이요, 긴장한 모든 시간이 헛된 것임을 깨달으며 느낀 복작스럽고 복합적인 눈물이었다.






우리는 3일 뒤면 괌으로 여행을 간다.

괌으로 여행을 가기 전, 무엇보다 신경썼던 것이 아이들의 건강이었다. 다치거나 아프면 갈 수 없으니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코로나에 걸릴까봐 노심초사 불안했다. 감기로부터, 각종 질병으로부터,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나는 한 순간도 지켜줄 수 없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최대한 감기라는 질병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뼈 골절이라니...

그 순간 내 힘으로 하려고 했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모든 맥이 풀린 것 이다.






고 이어령 선생님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러셨다. 코로나 앞에서 마스크 한장 사려고 줄을 서가며 마스크를 사수하려 지난날 우리의 모습은 주머니 속에 있는 깨지기 쉬운 “죽음이라는 유리그릇”을 지키려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유리 그릇을 넣고 그것이 깨질까봐 불안해했다. 그렇게 질병과 사고는 아주 깨지기 쉬운, 깨질 수 밖에 없는, 아직 안 깨졌다면 언제 깨질까봐 늘 두려운 그런 얇고 작은 유리그릇 같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유리그릇 말이다. 죽음보다는 훨씬 작고 가볍지만 엄마에게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아이들의 질병과 사고.





내 몸도, 아이들의 몸도, 나는 지켜줄 수 없구나.

관리하고 돌볼 수는 있지만 어떤 사고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둘째아이가 쇄골뼈가 골절된 날, 첫째 아이는 조심하고 조심했던 감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과연 괌에 도착할 수 있을까?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을까? 우리 주머니 속에 있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지키려는 노력은 비행기 속에서도, 꿈의 휴양지 괌에서도, 무사히 여행을 마치도 다시 돌아와 시작하는 일상 속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나는 좀 더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작은 얼굴에 입술을 비비고 문대며 아이 살 냄새를 맡고 심장 박동수를 느끼며 품에 꼭 안고 끌어안는 것 만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련다.




아프려고 아픈 거 아니고, 다치려고 다치는 거 아니지지만 우리 모두 건강조심, 건강유의 하자구요!!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신청곡은요 god의 길 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