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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an 04. 2023

소소한 감성일기

주부에세이)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사한 것 투성이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이제 아픈 것 다 끝났다고,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신다. 따뜻하고 감사한 말 솜씨를 지니셨다. 좋다.









막내를 지인이 봐줘서 혼자서 수월하게 진료를 보고 왔다. 그것도 참 감사했다. 생각보다 진료가 빨리 끝나서 잠깐 투썸플레이스에 들려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려본다. 아주 잠깐이다. 아주 조금 늦었다고 핀잔주지 않을 지인이기에 배짱을 부려봤다.


막내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도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온다. 조용했던 집이 북적거린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달콤한 핫케이크를 구워 내어주는 손길과 풍경이 새삼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큰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 삼형제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아들이다. 너무 나가고 싶어하는 막내를 그동안은 못 나가게 했는데 처음으로 형아들 손에 보내본다. 막내를 흔쾌히 데리고 집을 나서는 큰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 든든하다. 아이들 셋이 나가버렸다. 어제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이제 놀이터 죽순이도 졸업이다. 신난다.


약속이 있어 오이도역에 데려달라고 가끔 부탁하는 남편이 오늘도 부탁한다. 흔쾌히 기분좋게 그 부탁을 지켜줄 수 있음이 감사하다. 전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원에서 돌아와 간식을 챙겨주느라 바쁜 딱 그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이냐 남편이냐를 선택해야 할 판이었다. 역으로 데려다주며 회사 분위기기 안 좋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래동안 힘들어했던 남편에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잘하고 있고 잘 될거야.’ 라는 단순한 위로 뿐 이다.


남편을 역에 내려주고 유유히 도서관으로 향한다. 빌린 도서를 반납했다. 몇일 동안 품으며 읽고 씹어먹었던 책은 반납할 때는 꼭 자식을 장가보내는 것 처럼 헛헛하다. 그 헛헛함이 덜 하도록 찾은 방법이 한글파일로 인상깊은 구절을 타이핑하고 5줄 서평을 남기는 것 이다. [엄마의 서재] 폴더에 착착 담아놓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편안히 돌려준다. 나에게 잠시 들렸던 책은 다시 무수히 많은 책의 바다 속에 잠긴다. 누군가가 원석을 캐듯이 끄집어 낼 때까지...



그리고 새로운 책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살펴본다. 이건 마치 누구와 결혼할지 선을 보는 마음과도 같다. 니체의 책과 고전문학과 시집을 골라왔다. 인문학의 완성이다.


집에 돌아와 조용한 집에서 빌린 책을 읽어본다. 음악도 빼 먹지 않는다. 야마하 블루투스 오디오에서 기분 좋은 재즈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나는 이제 이런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 아직은 짧은 이 고독의 시간이 즐겁지만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빈자리가 그리울 것 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과 글쓰기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그 빈자리를 지혜롭게 채워줄 것 이다.


막 즐기려던 찰나 전화가 온다. 교회 교구 담당 전ㄷ사님이시다.  코 다친 것을 몰랐다며 미안해했고 왜 알리지 않았느냐며 원망하셨다. 다친 사실을 들킨 딸 처럼 미안해졌고 친정엄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전화기를 대고 기도해주신다. 두 가지 기도제목이 가슴에 남는다.


‘하나님이 태초에 지으신 예쁜 코가,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딸을 기억하사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진정한 아멘이 흘러나왔다.


전화를 끊고 앞치마를 메고 저녁준비를 시작한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고루고루 자기그릇에 예쁘게 담아낸다. 아이들이 돌아와 샤워를 하기 시작한다. 내심 걱정되었는데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오게 하심도 감사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와 모든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다시 빌려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잘 논다. 아이들이 잘 노는 시간을 나는 늘 이렇게 활용했다. 감사한 일 이다. 엄마는 거실에서 꿈을 찾았다.


니체가 선택한 문장 하나하나가 참 아름답게 가슴에 스며든다. 감사한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는 또 다른 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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