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게 하는 소소한 행복을 만나러...
“우진아. 엄마는 철저히 노력형 아침형 인간이야.”
(고민도 없이)
“다시 돌아가고 있네.”
“응. 다시 돌아가고 있어. 엄마 너무 싫은데. 예전처럼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나겠어. 왜 이렇게 눈이 안 떠지지?”
“원래 새벽에 일어날 때 뭐했는데?”
“음. 먼저 성경읽고, 성경필사하고 글쓰기 했지.“
“그럼 재미있는 책을 하나 사봐. 읽고 싶은 책을 사서 ‘내일 새벽에 읽어야지.’ 하면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엄마는 동공확장 되는 중...
몇일 전 아들과 나눈 대화가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철저히 노력형 아침형 인간으로 노력과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이제 아침형 인간에 정착되었다고 생각했다.이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면서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무지 눈이 떠지질 않았다. 알람소리도 다 듣고 깨어있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서 눈이 떠지지 않고 참고 억누르고 있던 밀린 겨울잠을 자는 곰 같이 다시 아침잠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일어나 큰 아이를 끌어안고 잠결에 ‘엄마는 철저히 노력형 아침형 인간’임‘을 고백하자 아이는 고민도 없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있는 엄마‘를 지적했다. 현실적인 아이가 참 재미있기도 하고 가끔 이 녀석은 너무 정곡을 찔러서 두렵기도 하다.
그런 아이가 내놓은 해결책이 너무 좋았다. 한편으로는 요즘 나는 새벽에 꼭 일어나야만 하는 절박함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벽에 꼭 일어나야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라졌다. 감사하게도 모든 일상 가운데에서 틈틈히 조금씩 다 해나갈 수 있었다. 새벽의 힘과 에너지를 온전히 살려서 해야만 하는 간절함이 사라졌다. 새벽에 꼭 일어나야할 이유가 사라지자 나는 다시 포근한 아침잠을 선택한 것이구나.
그런 나에게 ‘기대되도록 읽고 싶은 책’ 한 권이 주는 설레임과 즐거움이 얼마나 소소하고 값진 것인지 새삼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 말대로 읽고 싶은 책 한권을 사오는 게 좋겠다. 도서관에서 계속 대여해서 독서는 하고 있다. 일주일에 2권은 거뜬히 읽는 것 같다. 하지만 대여해온 책은 뭔가 루즈해진다. 대하는 자세도 읽는 자세도. 처음엔 내 것이 아니라서 씹어 먹을 기세로 열정적 독서를 소비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가기 식상해지는 모양이다. 따뜻하고 기대되는 신간 서적 하나 모셔와야겠다. 너무 읽고 싶고 기대가 되는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와야겠다. 그리고 그 책은 꼭 새벽에 일어나서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봐야겠다. 그러면 아이 말대로 나는 ‘ 그 책이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새벽을 기쁘게 깨울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아이는 그런 기대하는 마음을 경험해본 모양인데 내 배에서 나왔지만 기특하고 멋진 녀석이다. 나와는 다른 이성과 현실적인 아이는 감성적인 나의 무지를 일깨워준다. 나는 오늘도 너에게서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