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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Feb 25. 2023

다자녀 엄마의 유익과 성장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날 없다하신 할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나는 아들 셋 엄마이다.

아들 셋 엄마인 나는 다자녀엄마이다. 다자녀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참 유복해진다. 아들 셋 엄마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다자녀 엄마가 될 거라는 상상은 늘 해본 것 같다. 결혼하면서부터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 라는 생각이 있었고 다행히 남편도 뜻을 함께 해주었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성경말씀을 읽던 중 창세기 말씀을 보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입체감 있게 눈에 띄는 그 구절을 읽고 있자니 괜시리 마음이 설레였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

창세기 1:28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왠지 설레였다.

‘나도 기왕 태어났으니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 가운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우리 자녀들이 땅에 충만하고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과 권세를 더 아름답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비전과 함께 절로 기도가 되었다. 첫째를 낳고 첫째가 돌이 될 무렵, 나는 둘째를 낳을 준비와 계획을 했다. 무조건 둘은 낳을거라고 생각했고 그 때가 적기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을 줄줄이 낳아 케어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큰 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세살 터울의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둘째를 계획하고 정신없이 기르던 현실육아에 지쳐갈무렵, 셋째의 임신사실은 모든 다자녀 엄마들에게 그렇겠지만 기쁜 소식보다는 당황스러움으로 찾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셋째 아이를 임신했고 출산했다. 그렇게 다자녀 엄마가 되었고 세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셋째를 자연분만하고 조리원에 가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박 3일의 입원실에서 짧은 회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큰 아이와 작은 아이, 그리고 남편이 셋째를 지긋이 바라보던 그 눈빛과 따뜻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직 어린 형아들이 어린 동생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사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셋째가 태어나고 돌무렵까지였다. 고단한 육아와 살림하는 시간들과는 별개로 어린 막내를 데리고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나는 그렇게 힘들수가 없었다. 첫째와 둘째아이는 그때 6살, 3살로 한참 예쁠 때였고 그런 아이들과 더 많이 다니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어린 막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아이들의 한번 뿐인 그 시기를 온전히 채워줄 수 없는 현실이 나는 늘 안타까웠고 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일 뿐, 어린 동생과 자연스럽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큰 아이들에게도 정서적인 안정과 기쁨을 채워주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서인지 늘 특별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해주었다.






셋째는 거저 키운다더니 여기저기서 준 장난감들이 쌓여갔고 장난감을 빌려오면 형아들이 더 신이 나서 동생이랑 놀아준다며 어느새 동생 장난감을 가지고 동생보다 더 신이 나서 놀기도 하고, 어린 동생은 또 형아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관찰하며 심심할 틈이 없었다. 막내가 어느정도 크면서 외출이 갈급했던 시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여전히 세 아이와 함께 하는 나들이는 쉽지 않았다. 줄줄이 매달고 다니는 내 모습이 가끔 처량해보이기도 하고, 혼자 유모차 하나만 밀고 고고하고 자유롭게 다니는 외동맘들이 한 없이 부러운 순간들도 있었다.





‘나도 하나만 낳아서 우아하고 예브게 잘 키울걸 그랬나. 어쩌다 이렇게 줄줄이 낳아서 고생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었지만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셋이 어우러져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더 많아졌고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세 아이의 북적이는 모습에 ‘다복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집안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행복했다. 아이들이 유년 시절을 더 안정되고 건강한 정서로 채워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막내동생과 복닥거리며 함께 지낸 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강아지 한 마리만 키워도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정서적으로 그렇게 좋다는데 하물며 내 피를 나눈 형제애를 느끼며 귀여운 강아지보다 더 꼬물거리고 귀여운 어린 막내와 보내는 일상이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안정적이고 건강한 정서를 지니고 자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셋 낳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형아들은 어린 동생을 배려하며 힘이 없는 동생을 도와주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동생은 형아들이 놀이하는 모습, 하늘 말, 대화들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익히며 모든 일상이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다투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해결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의 유익을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크게 깨닫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고 나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삼형제가 진가를 발휘했던 시간은 코로나가 모든 나라와 마을의 빗장을 걸어잠그며 공포로 얼어붙게 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셋 낳길 정말 잘했다.’ 라고 생각했다면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아들만 셋이여서 정말 좋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사실 남매보단 동성인 형제지간이 아이들에게도 더 좋다. 놀이코드도 잘 맞고 장난감도 같이 쓸수 있고 관심사도 비슷하니 말이다. 잘 노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모든 일상은 정말 평화롭고 잔잔했다. 아이들이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도 잘 노니까 아이들에게 가는 내 손길이 점차 줄어들었고 ‘삼형제 키우면서도 이렇게 편해도 되나? 집이 이렇게 화평할 수가 있나?’ 늘 신기했다.





“아니ㅡ 어떻게 아들 키우면서

그렇게 우아하고 차분하고 고상해?

아들 키우는 엄마 안 같아.“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지인들이,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나는 워낙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인데 그런 엄마들도 아들 키우면서 다 변한다고 하는데 나는 예외였다. 우리 아이들도 차분한 편이었고 선비같이 점잖은 아들들이었다. 아들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할 때는 어려움이 있어 여리고 여린 나도 언성을 높여야만 통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도 다루기 수월한 아이들이었고 아이들 표현으로 ‘착하고 예쁜’엄마가 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품어주고 사랑해주니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났다. 내가 엄마로써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그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감성이었다. 듬뿍 사랑해주었다.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라났는데도 내 안에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샘은 날마다 넘쳐 흘렀고 그 사랑은 아이들이 자랄수록 깊어져갔다.






그래서일까.

아들 셋을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 또한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모습과 성격이 조화롭게 어울려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내며 버무려지는 먹음직스러운 요리같이 각자의 맛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적인 큰 아들이 역동적인 둘째와 함께 놀며 밝아졌고 역동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던 둘째아이는 차분하고 정적인 형아의 모습을 모방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무엇보다 삼형제 키우기가 수월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형제간의 질서와 서열이 잘 잡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것 또한 기도하고 구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키우며 크고 작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지만 형제끼리 싸우고 다투는 것이 부모된 입장에서 가장 힘들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형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큰 아이의 권위를 늘 찾아주고 세워주는 일에 초점을 맞춰 아이들을 양육했다. 일테면 사소한 트러블로 싸움이 나면 일단 동생 먼저 혼낸 후, 형을 혼내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 아이는 동생들을 아주 잘 다뤘다. 당근과 채찍을 지혜롭게 잘 주었다. 잘해줄 땐 한 없이 다정하고 착한 형아지만 동생들이 잘못했을 땐 아주 엄격하고 무서운 형아로 알아서 조율을 하며 동생들을 쥐락펴락하는데 나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지켜줄 뿐이었다. 동생들은 그런 형아를 잘 따랐고 좋아했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큰 아이가 6학년이 된 지금도 셋이 사이가 참 좋다. 그렇게 질서와 서열이 잘 잡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일상이 참 감사했고 행복했다. 모든 것이 수월했고 평화로웠다. 가장 큰 축복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을 밖으로, 학원으로, 방과후 과정으로 돌리는 일 하지 않는 엄마들도 주변에 꽤 많다. 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다면 그건 정말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너무 싸워서 지긋지긋하다면 그것도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간의 서열과 질서가 무너지진 않았는지 잘 체크해봐야 한다.이런 것들을 잘 챙기며 삼형제를 키우다보니 ‘셋 낳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에서 진화하여 ‘아들 셋이여서 너무 좋다.’로 바뀌었고 뒤이어 깨달은 것이 ‘다자녀는 친구가 필요없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그 말이 크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확실해지는 말이 그거였다. 다자녀는 친구가 필요없다는 말. 아이들은 정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정말 잘 놀았다. 놀이감을 던져주며 함께 놀아주려고 엄마가 주도권을 쥐고 시작했다가도 아이들은 각자 개성에 맞게 놀이를 변형시키며 둘이서, 셋이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나갔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셋이서도잘 노니 심심할 틈이 어디있겠는가. 서로 각자 함께, 다른 공간, 같은 공간 이곳저곳을 누비며 저기서는 형아가 놀고 있고 여기서는 동생이 놀고 있고, 곳곳에서 놀 거리가 가득한 아이들은 친구가 필요없이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코로나시기, 외출과 만남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 때, 나는 생각보다 즐겁게 행복하게 지냈는데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가장 큰 비명을 지르는 곳은 바로 외동아이를 키우는 가정이었다. 혼자인데 놀 친구도 없고, 만남도, 외출도 제한되던 그 때 얼마나 심심하고 힘들었겠나. 부모가 놀아주는 것도, 장난감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 기간동안 셋이나 데리고 힘들지 않았어?”

“하나도 힘든데 셋이여서 얼마나 힘들까?”





오히려 하나보다 셋이여서 훨씬 더 수월하고 즐거웠다. 아이들은 친구 없이도 잘 놀았고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교적으로 잘 지내고 사회생활도 문제없이 잘 해내고 있다. 문제없이 잘 하는게 아니라 생각지 못하게 늘 인정받고 칭찬받는 건강한 아이로 잘 성장하고 있으니 나는 늘 기도드린 기도제목에 응답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감동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기간 뿐만 아니라 아이들 방학도 나에겐 생각지 못한 쉼과 여유를 주었다. 많은 부모들에게 공포의 순간인 아이들의 방학이 다자녀 엄마인 나에게는 여유로운 쉼과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게 바로 다자녀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함께 다양한 갈등과 변화를 맛보며 성장하는 아이들. 거기에 건강한 정서까지 채워진다며 더 빛날 아이들. 아이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부모의 기대와 집중과 욕심이 분산되는 것도 다자녀의 유익이다. 한 아이에게 온전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들이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잘 하고 잘 챙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아이들은 더 잘 자라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건 방임이나 방관하고는 다르다. 무엇보다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내는 부모의 모습이 건강한 자양분으로 깔리는 것이다. 엄마들에게도, 자녀들에게도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둘 보다는 셋이 좋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 하신 할아버지 말씀도 옳지만은  가지 많은 나무가 든든히 뿌리 내려 가지에 무성한 잎사귀와 열매가 맺힐 것을 생각해자니 무성한 잎사귀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가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왕 자녀를 낳았으면 둘씩, 셋씩 낳아서 잘 길러보자. 어쩌면 다자녀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부어주기만 해도 스스로 잘 자라는 건지도 모른다. 부모는 그저 나무가 흔들리고 뽑히지 않도록 지탱하고 단단하게 버티며 땅 속의 뿌리를 더 깊숙이 내면 된다. 그 방법은 바로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성장하고 노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아이들은 다 담고 자란다. 어찌보면 무거운 책임감이지만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도 유익이 되는 시간이다. 우애 좋은 삼형제를 키우며 아이들이 잘 노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찾은 것이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다. 늘 성장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욕구와 비전은 “책을 읽는 엄마”로 연결시켜 주었고 독서를 놓치지 않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와도 연결되어 이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이 모든 시간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헤이고 때에 맞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삼형제를 주시고 아이들에게 형제애를 주시고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글쓰기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까? 나는 늘 생각한다.





글쓰는게 참 좋다.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가끔은 용기가 없어서, 가끔은 육아와 살림에 밀려 시간이 없어서 쓰지 못할 때 참 아쉽고 힘이 들다. 쓰기의 아름다운 미학은 나에게 큰 유익이 되어주었다. 이런 변화는 순식간에,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다자녀 엄마로써 육아에 집중해야 할 시기엔 육아에 집중하면서 살림살이를 빈틈없이 해나가면서도 스스로 성장하고자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의 나무에 깃든 아이들의 가지에 무성열매와 잎사귀가 깃들긴 바란다. 복있는 자가 되어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놀라운 비전이,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엄마의 기도를 통해 아이들의 삶에 충만하게 열매맺길 기도해본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이 그 형통한 길이 아이들의 삶에, 남편의 삶에 아름답게 역사해주시길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기도한다.




나는 기도하며 아들 셋을 키우며

글쓰며 성장하는 행복한 엄마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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