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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07. 2023

20만 원을 순삭 했습니다

(주부에세이) 짠내쇼핑

큰 아이 운동화를 사러 아웃렛에 왔다.

처음엔 잘 고르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숙련된 모습으로 유유히 매장을 돌아보며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골라온다.  늘 고 놈이 고놈인 것 같은 ,  비슷한 운동화를 고르는 아이의 컨택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고르지도 못해 쩔쩔매는 모습은 조금 벗어난 것 같아 그나마 만족이다. 결정장애가 심한 내 모습이 아이에게서 투영되면 몹시 불편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골라온 운동화마다 사이즈가 품절되어 다시 골라야 하는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고 나니 지금까지 골랐던 운동화 중 가장 근사한 운동화 하나를 건졌다. 그리고 발이 부쩍 커 사이즈가 작아진 듯한 크록스도 하나 사주었다.

“크록스는 블랙이지!” 자신 있게 말하며 마음에 드는 크록스도 손쉽게 구매한다.



문제는, 그 사이 이 운동화 저 운동화 다 신어 보면서 맨발로 매장을 헤집고 다니는 막내아이.

“아! 이 운동화 너무 멋있다.”

“엄마! 이 운동화 어때? 멋있지 않아?”

“엄마. 이거 나한테 맞는 사이즈야?”

“아 이거 멋진데 공룡그림이 있어”

“이거 나한테 진짜 잘 어울리는데??”








맨발로 매장을 헤집고 다니며 마음대로 신발을 골라대는 막내아이 덕분에 정신없는 쇼핑을 마쳤다. 늘 형아들 물건 물려받는 막내아이이기에(특히 운동화, 옷) 아이랑 쇼핑을 오면 마음이 어려워진다. 자꾸 사주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막내아이 크록스 샌들도 사주었는데 아이는 또 스파이더맨 운동화를 집어 들고 놓지를 못한다. 불이 나온다며 좋아한다.

‘너는 이제 초등학생이란 말이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 짠해서 마음이 약해진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상품권 20만 원 있으니 사줘야겠다 싶어  다 들고 계산대로 갔다.


“275,000원입니다!”



’헉! 너무 비싸다.’


“성운아. 엄마가 이 운동화 다음에 사줄게.”


“아~ 왜? 나 이거 마음에 드는데 ”

“응 오늘은 크록스 사러 온 거고 운동화는 필요 없으니 다음에 사줄게.”


“그럼 내일 사러 오자.”

“엄마. 그럼 내일 이거 사러 와야 대!”

“엄마. 내일 이거 꼭 사줘”

“내일 사러 오는 거야~”


하..

무뚝뚝하던 남자 직원이 살짝 웃음을 흘린다. 귀여워서 흘리는 웃음인 것 알면서도 그 순간 짠내 폴폴 풍기는 우리의 모습은 갖고 싶은 운동화를 사주지 못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쌍팔년도 드라마 같구나....







선물 받은 상품권 20만 원을 순삭 했다.

오면서 ‘내 운동화 하나 살까’ 했지.

결국 내 운동화도 못 사고, 계산대에서 짠내 풍기며 막내가 원하는 운동화도 못 사줬지만 난 오늘 20만 원이나 썼단 말이다. 아들이 셋이니 운동화 한 번씩 사줄래도 돈 20 우습구나. 아들 셋이어서가 아니라 월급 빼고 다 오른 세상이라 20만 원 쓰는 것 참 쉽게 느껴지는 것일 테지.


내건 하나 없지만 가벼운 상품권 두 개를 묵직한 쇼핑백으로 바꿔왔다. 묵직한 쇼핑백엔 당분간 아들들 발을 책임져줄 새 신이 들어있다.



열심히 쑥쑥 크자 아들들아.

열심히 돈 벌자 여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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