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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10. 2023

흘리면 화내면서 흘리는 엄마!

(주부에세이) 이제 흘린다고 화내지 말자.


“진짜!! 조심하라고 했지!!

두 손으로 꽉 잡으면 안 흘리잖아.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



아이들이 음료수나 우유, 물 등을 먹다가 흘리면 이상하게 자꾸 화가 났다. 아이들은 먹다가 흘릴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데, 이해는 하면서도 뒷수습은 온전히 내 몫이 되어버리니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특히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어린 막내 아이는 우유를 자주 흘렸다. 우유는 지방기가 있어서 잘 닦이지도 않고 여러 번 닦아야 한다. 휴지를 쓰다 보면 그것마저도 아까워져서 걸래나 행주를 사용했는데 한 두 번 닦는 걸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빨아서 닦아내야 한다. 쏟아지면서 사방팔방 튀어버린 잔재들까지 처리하면 은근 열받는 노동이 되어버렸다. 안 해도 될 수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더 나는 것이다.  ‘조심했으면, 조금 더 신경 써서 먹으면 안 흘릴 것을’ 닦아내면서  활화산처럼 분노가 활활 타올랐고 의자 다리 사이사이까지 튀어있는 잔재들을 발견하면 꺼져가는 불길 위에 마른 장작 두어 개를 더 올려놓은 듯 날카롭고 뾰족한 신경질이 더  불을 지폈다.









아직 어리니까, 미숙하니까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자주 흘리는 아이들은 이제 무언가를 쏟고 나면 부리나케 내 표정을 살핀다. 엄마가 오늘은 어떤 강도를 화를 낼지 마치 가늠해 보는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엄마 손도 아이들 못지않게 미숙하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손에 있는 물건들을 놓친다. 내 손에서 미끄러져 쏟아지거나 깨지는 것들이 종종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자주 흘리는 내가 나처럼 흘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동병상련이니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흘리면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엄마!! 괜찮아~~~??”




하.

나는 정말 놀랐다. 나는 아이들이 흘릴 때마다 매번 혼냈는데 아이들은 내가 흘리면 ”괜찮아? ‘하고 묻는다. 정말 감동했고 반성했다. 실수한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아이들. 아이들의 마음은 역시나 하얀 도화지같이 깨끗하고 순수하다. 반면에 실수한 아이들에게 화내는 나. 나의 마음은 변질되고 퇴색되었구나. 어쩌면 자주 흘리는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 자주 흘리는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모습이 연약한 내 모습이라서 아이들에게 투영된 내 모습이 그렇게 싫어서 모진 소리가 나간 거구나.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을 땐 내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게 아이들이 정말 실수해서 화가 나는 건지, 내 모습이 투영돼서 화가 나는 건지를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자유시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베란다 홈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가려는 순간, 커피잔이 쏟아졌다. 일어나는 순간, 다른 것에 몰두하느라 내 밑에 있던 커피잔을 또 못 본 거지.

와르르. 촤르르.

무자비한 소리와 함께 대참사가 벌어졌다.










하. 또 쏟았구나.

아이들이 내 곁에 있었으면 달려와서 “엄마. 괜찮아?’ 하고 물었겠지. 그럼 난 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겠지.

나 라는 사람은 아이들이 흘렸을 때 화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확연하게 들었다.





흘리면 화내면서 여전히 흘리는 엄마야.

정신 좀 차리자.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그러겠지.



“엄마. 또 흘렸어? “




그런 말 듣기 전에 얼른 좀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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