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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Feb 12. 2024

독자에 관하여

글쓰기 창고

글쓰기 슬럼프인지 쓰기가 영 자신이 없는 요즘, 슬럼프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았다.


운동경기 따위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길게 지속되는 경우를 슬럼프라고 말한다. 운동선수를 비롯하여 예술가, 작가 등이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적인 역량을 나태나는 일이 저조해지는 말하는 것인데, 잠깐만! 창조적인 역량을 나타내는 일이 저조해졌다?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나에게 저조해질 만한 창조적인 역량이란 것이 처음부터 존재는 했던가? ‘자기실력’ 발휘‘ ’창조적인 역량‘ ’저조‘ 등의 단어들이 어쩐지 낯설다. 쉽게 닿지 않는 저 너머에 있는 단어들을 억지로 끌어당겨온 느낌이랄까. 나에게 슬럼프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지, 창조적인 역량이 나에게 있기나 한 건지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은 여전히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며 여전히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다.



슬럼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글쓰기 슬럼프에 대해서 내가 감히 논할 자격이나 있는지에 대해서 사뭇 의심하게 되는 것은 짜릿한 글쓰기의 반전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지 못해서 답답한 심정을 하얀 백지에 쏟아놓으려고 시작했지만 내 마음을 빠르게 스캔하며 나도 모르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서 내 진심이 묻어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부분, 아니 자신이 없어서 마주보지 못한 문제와 언제나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치유되고 해방되는 것, 글쓰기를 하는 중요한 이유와 목적이 된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나를 살리는 글쓰기’를 했다면 이제는 ‘누군가를 살리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니, 작가라면 마땅히 그런 글을 써야 한다. 은유 작가의 말처럼 독자가 있으면 당연히 글을 쓰게 되고, 다른 사람의 존재는 다시 내가 쓰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처럼....








처음에 뭣 모르고 용감하게 시작했던 글쓰기는 참 쉽고 재미있었다. 그때는 독자가 없었다. 아니 그냥 나 자신이 독자였다. ‘나’라는 독자를 두고 이야기하려니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렸다. 글쓰기를 잘 한다고 생각했고 어쩐지 자신감도 넘쳤다. 망망한 바다라도 가로지를듯이 모든 것이 쉽게 느껴졌던 어쩐지 발칙하고도 담대했던 용기를 다시 찾고 싶은데 쉽지 않다. 못할 것 같다는 막막한 두려움 속에만 머물러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나라는 다루기 쉬운 독자에서 벗어나 ’타인‘이라는 다루기 어려운 독자를 그리면서 쓰려니 너무나 낯선 것이다. 낯선 타인을 대상으로 글을 쓰려니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에게 조금이나마 글쓰기 실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저조한 상태를 벗어나 다시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시기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고민과 주저함과 두려움과 망설임이 한 걸음 진보하는 발걸음으로 나를 옮겨두게 될 테니까. 서두르지 말고 긴 호흡으로 멀리 바라보자. 이제 글을 쓴지 겨우 3년이다. 혼자 쓰는 이 시간을 더 즐겨보자. 어떤 목적과 유익을 두지 말고 오직 쓰는 행위 하나에 목적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더 믿어주자. 아직은 ‘나’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그저 만족해보자. 언제나 나에게 관대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는, 내 글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에게 더집중해보자. 그러다보면 슬럼프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겠지. 나에게 그런 역량이 과연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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