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맛 일상 에세이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다 읽었다. 가슴이 벅차서 그대로 읽을 수 없었다. 이 벅찬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뜬구름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잡아 내어 정리 해 줄 필요를 느꼈다.
모자를 눌러쓰고 가벼운 윗옷을 걸치고 좋아하는 런닝화를 신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가본다.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르른 나뭇잎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춤을 추니 보기만 해도 오감이 살아난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보고 있자니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모습과 그가 다니는 길이 한 눈에 다 보이는 것 같다. 공원 중앙에 가득 들어찬 잔잔한 호수는 바람에 조금 더 거세게 일렁이며 정오의 햇살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밋밋한 물 줄기를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로 옷바꿈해 입었으니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좋다. 답답했던 가슴도, 지금껏 나를 옥죄었던 무거운 생각의 짐들도 별거 아닌 것 처럼 느껴져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넉넉한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발걸음을 돌려 오름언덕을 한 계단 한 계단 내딛는다. 너무 높지 않은 언덕이라 부담없이 오르기 좋고 오르고 나면 제법 높은 곳에서 마을의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하늘과 조금 더 맞닿을 수 있는 그곳으로 성큼성큼 올라선다. 그것 좀 올랐다고 숨이 턱 까지 차오르고 이내 땀이 난다. 잠시 그네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려니 이내 흘린 땀 방울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에 등 떠밀려 일어선다. 푹신푹신 초록 들판을 조심조심 걸으며 시선을 돌려 하늘을 잠시 바라본다.
'어! 저 새는 왜 저러고 있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바로 내 머리 위에서 공중에 멈춰있다. 작은 새는 날개짓 하는 것을 멈추고 공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왜 날지 않고 저렇게 멈추어 있는거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만 보니 거센 바람에 대항하는 모양이였다. 가고 싶은 곳이 있나본데 거센 바람에 정면 돌파중인 작은 새의 보잘 것 없는 날개짓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꽤 오래동안 고집을 부리며 공중에서 바람과 한참을 맞서며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에고, 이 녀석아. 돌아가렴. 너는 그 바람을 이기지 못해!'
어느새 웃음을 짓고 애처롭게 바라보다 가던 길을 가려던 찰나 이 녀석이 포기하고 우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잘 했어. 돌아가면 되지. 다른 길이 있어.'
그런데 다시 이 녀석이 거센 바람 앞에 멈추어서고 이내 방향을 틀어 낮게 날다가 다시 그 자리에 서기를 여러차례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무조건 그 방향으로만 가고 싶었나 보다. 놓친 무리를 따라가기라도 하는 걸까. 다른 길은 없는 것 처럼 거센 바람이 길을 막고 있는 그 길로만 가야 하는 것 처럼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작은 새의 날개짓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래. 작은 새야.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쉽게 포기하려고 했어. 그냥 쉬운 길로 가고 싶었지. 방향을 틀면 다른 바람을 타며 자유롭게 다른 길로 갈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어쩐지 오늘 나에게 큰 도전이 되는구나. 고맙다 작은새야.'
작은 새에게 한 수 배웠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작은 날개짓으로 이길 수 없더라도 잠시 우회하고 돌아가더라도 올 곧게 그 길을 가자고 작은 새가 오늘 나에게 속삭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