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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맞아버리면 그만이야

쫄지 말자

by 쓰는핑거

언제부터였을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달리는 동안에는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넘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쉬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고

내일이 더는 기대되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고,

불안한 내일만 흐릿하게 다가올 때,

나는 문득, 소나기를 기다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 내릴지 모를 그 소나기 앞에서

괜히 두려워서 움츠러들고,

괜히 조심하며 오늘을 놓치고 있었다.

갑자기 내리치는 소나기를 피해낼 재간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늘 우산을 들고 다닐수도 없으면서

그렇게 언제 닥칠지 모를 소나기를 두려워하며

불안해했다. 두려워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났다.

맨몸으로 비를 맞는 민달팽이.

단단한 등껍질도 없이,

보호해줄 장치 하나 없이

쉽게 으스러질 살을 내놓고 있는 민달팽이

하지만 그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속에는

오히려 자유와 해방이 있지 않았을까

무거운 껍질을 내던지고 훌훌 자유롭게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중은 아니였을까...


우리의 인생에도 소나기는 늘 찾아온다.

예고 없이, 피할 틈도 없이

그냥 툭 하고 내린다.

그럴 땐 억지로 피하려 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그대로 맞아보자.

흠뻑 젖어도 괜찮다.

그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래야만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다.



지금 지쳐 있다면

그건 당신이 그만큼 애쓰며 살아왔다는 증거야.

소나기 속에서 잠시 멈춘 오늘,

당신은 결코 실패한 게 아니야.

그저, 다음을 위한 숨 고르기 중이야.


그러니 오늘은 조금 느리게,

조금은 젖은 채로 있어도 괜찮아.

민달팽이처럼,

그 속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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