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 얼떨떨함
내 핸드폰은 멈춰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여전히 바쁘고 분주했다. 세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거기에 남편 눈치 봐가면서 함께 보낸 길고 긴 연휴. 시간은 멈출 일이 없지만 내 핸드폰은 째깍째깍 흐르는 고요하고도 깊게 묻혀있었다. 그러는동안 조용했던 내 브런치는 모처럼(아니 사실은 아주 오랜만에!) 생동감 있게 반짝이고 있었다니!
우리가족은 경주여행을 다녀왔다.
전부터 부쩍 큰 아이들과 역사공부를 하러 경주여행을 다녀오려고 벼르고 있었다. 경주여행 첫 날, 기분좋게 첨성대 주변 탐방을 나섰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순간! 사진앨범에 찍힌 우리 큰 아들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포즈와 표정에 웃음이 빵 터졌다. 그래도 중학교2학년 치고 착하고 순수하고 (아직까지 어디든 함께 잘 따라다니고 카메라 앞에서 동생들과 함께 포즈도 취해준다) 해맑은 중학교 2학년 큰 아들에게 해서는 안 될말을 해버렸다. 평소에 그런 말 잘 안하는 나인데도, 하필 그 날따라 안타까운 마음까지까지 숨기지 않고 돌직구를 날려버렸으니...
“야~~ 00아~ 이 어색한 포즈와 자세 어쩔거야? 넌 어쩜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어색한거뉘~~~”
그 순간이었다.
당연히 기분 나빴을 아이가 내 손에서 독수리같이 핸드폰을 낚아채갔다. 내 손에서 아이 손으로 내 핸드폰이 납치되는 순간! 누구의 손이 가해자인지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도록 두 손은 모두 방심하고 있었고 핸드폰은 그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죄 밖에 없는 핸드폰은 그대로 차가운 돌바닥에 코를 박고 비참하게 나가떨어져버렸다.
헙!!!
얼른 일으켜세워보았지만 핸드폰은 이미 큰 찰과상을 입고 ‘나 진짜 많이 다쳤다’는 표시로 ‘아야아야’ 하고 있었다. 엄살이 아니었다. 이미 화면액정에 큰 줄이 쩍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액정이 깨졌다는 것이 아니라 디스플레이가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
살살 시동을 걸고 ‘화’라는 감정이 엑셀을 붕붕 밟아가며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가의 내 핸드폰이 깨졌다는 사실에 나보다도 더 미안해했고 당황했고 우리 큰 애기. 중학생 큰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모성애가 여기서도 발휘하게 될 줄이야. 그런 아이를 보면서 화가 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내 안에서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해서는. 굳이 안 해도 될 기분나쁜 말을 해서는... 우행시를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이를 달래주고 있었다.
“에이. 핸드폰 고치면 되지. 엄마 보험처리 되어 있어. 보험처리 해서 액정수리 받으면 되지!~ 괜찮아괜찮아!”
그렇게 일주일동안 내 핸드폰은 고요한 침묵속에 잠겨 있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어쩐지 더 자유롭고 편안했다. 핸드폰에 매여서 집중하지 못했을 시간까지도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함께 보고 느끼고 나누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불편함을 느낀 순간도 물론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화질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폰사양! 큭큭
애플워치로 카카오톡이나 메세지, 전화 등은 수신이 되어서 크게 불편함 없이 오히려 여유 넘치는 경주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와서 오늘 핸드폰을 수리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브런치 앱을 열었다.
그동안 내 브런치 글이 오랜만에 상위노출되었던 모양이다. 많은 분들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고요하게 잠겨있었던 내 핸드폰은 결코 잠겨있지 않았다. 핸드폰은 사망한 듯 침묵하고 있었지만 여행가기 전 남긴 한 편의 내 짧은 글은 날개를 타고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 맹활약을 펼친 곳이 바로 여기 브런치라니...앞으로 브런치에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간사하면서도 설레이는 마음이 기분좋게 솟아나는 이 순간 잠시 초심으로 돌아가본다.
이 곳은 나를 처음으로 ‘작가님’이라고 불러준 소중한 곳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나는 처음으로 낯설고도 기분 좋은 ‘작가님’이라는 존칭을 얻게 되었고 이 곳에서 ‘작가’를 꿈꾸며 밤낮으로 열심히 글을 썼던 시간들.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이전보다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어떤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고 무엇 하나도 놓칠 것이 없는 일상이 되었다.
밥하고 살림하고 아들 셋 키우면서도, 남편 눈치보는 전업주부이면서도 내가 결코 우울할 수 없는, 나를 살게 하는 행복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