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글쓰기)
“어머니는 망고가 싫다고 하셨어~”
그 노래가 문득 떠오르는 날이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망고. 아이들은 ‘엄마 최고!’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자르기는 어려운데 먹는 건 순식간인 망고는 한 조각 남기는 법이 없다.나는 늘 그렇듯 큼직하고 먹음직스럽게 망고를 썰어 예쁜 유리 접시에 담아준다. (이렇게 하면 조금 좋은 엄마가 된 것만 같은 이상한 우월감이...) 그렇게 잘라낸 망고에서 두툼한 ‘망고갈비’라 불리는 망고뼈를 보며 나는 또 입맛을 다신다.
아이들이 달콤한 망고과육을 즐길 동안, 개걸스럽게 망고갈비를 맛있게 물어뜯는다. 망고갈비를 즐기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갈비고 족발이고, 하여간 뼈에 붙은 실한 보너스를 야물지게 먹지를 못하니 망고갈비는 언제나 내 몫인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남편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방에 있는 남편이 곧장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망고갈비를 뜯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어쩐지 부끄러울 것만 같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생각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으니 방에서 나온 남편이 나를 보며 말한다.
“애들 이렇게 발라주고 너는 뼈다귀 먹는 거야?”
그 말이 뭐라고,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민망하고, 서운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여기 살이 얼마나 많다고~” 했지만 내 손은 이미 망고갈비를 쓰레기통에 넣고 있었다. 남편에게 들킨 게 뭐라고,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를 사랑하고 챙기는 일은 참 따뜻하지만, 가끔은 그 따뜻함에 나를 녹여버리는 것 같다. 그런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주기로 했을 뿐이다. 나의 육아에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혼자 오롯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인 글쓰기였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었다. 그저 하루의 단상을 적는 것, 조금 울적했던 마음을 털어놓는 것,
오늘 들었던 말 한마디를 되새기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작은 기록들이 나를 살려주었다. 글을 쓰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의 모양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작고 어린 나를 다독여주는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썼던 모든 문장들이 결국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위한 쓴 문장들이 누군가에 마음에 닿고 누군가에게 도전과 위로를 불러일으킨다.
엄마가 건강해야, 가정이 평화롭고 아이들도 행복하다.
엄마의 기분 하나에 집안의 온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망고갈비를 씹던 그 순간의 나처럼, 조금은 초라해도, 조금은 지쳐 있어도, 글 앞에서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글쓰기는 나를 위한 가장 따뜻한 보듬음이다. 나를 잃지 않게 붙드는 줄이자, 지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망고 한 조각처럼 달콤한 위로, 오늘은 그걸 나에게 먼저 건네고 싶다.
엄마들이 쉽게 지치고 잦은 피로와 우울감을 지니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과 에너지를 쏟는데 정작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고 따스한 보살핌과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주는 넉넉한 사랑도 좋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남편의 다정한 말과 위로도 한계가 있었다. 온전히 나를 알아주고 나에게 집중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통해 내면이 단단해진다. 내면이 단단해지면 모든 일에서 일상이 건강하고 활력이 생긴다. 그건 내가 나에게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그건 바로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 소통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들여보며 내면을 다지는 엄마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