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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오늘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다

안네를 꼭 안아주다

by 쓰는핑거





일찌감치 저녁을 준비해놓으면 살림퇴근시간도 빨라진다. 냉장고에 있던 고기들을 종류별로 볶아내었다. 고기는 갖은 야채와 파와 마늘, 양파 듬뿍 넣으면 언제나 훌륭한 밥 반찬이 되어준다. 밑반찬도 많이 먹는 아들들 아니여서 잘 만들어낸 고기반찬 하나만 있어도 뚝딱 밥 한그릇 비워내는 아들들에게도 참 고맙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과일까지 살뜰하게 깍아 대접해드리고 설거지도 마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우리 아들 뭐하나 싶어 둘째아이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종이나 접고 있으려나 싶었던 내 예상을 깨고 아들은 책상 위에 앉아 연필을 손에 쥐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아들은 《안네의 일기》를 필사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일기 복사본 속에는 15살 소녀의 글쓰기를 향한 사랑과 비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기쁨을 주고 싶어.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말이야. 내가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내게 글쓰기라는 재능을 주신 것에 감사해



어쩜 나의 고백과 이리 비슷하지...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 또한 작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나에게 ‘글쓰기’라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맡겨주신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불리고 싶어 열심히 쓰고 노력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내 글에 누군가가 반응해주고 공감해주고 도전을 받거나 위로를 얻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른다. 글을 통해서 꽤나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전에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sns를 통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생각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 글은 날개를 타고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글이 잘못된 곳에 정착하게 되면 나는 비난을 받거나 책망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들의 가슴에 잘 날아가 수신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안네는 글쓰기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했다. 소녀의 순수한 발상과 작은 깨침이지만 그녀가 내린 짧은 결론은 완벽하기만 하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고

내 안의 모든 이야기들을 표현할 수 있어.

슬픔이 사라지고 기분도 좋아져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멈췄다.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던 1944년이었다. 총성과 공습이 일상이던 전쟁 속,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숨어 지내던 한 소녀가 있었다. 안네 프랑크. 그녀는 암스테르담의 좁은 다락방에서 두려움 대신 글을 선택했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안네는 매일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다. 불안, 희망, 분노, 감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까지. 그녀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펜을 들어 자신의 마음을 써 내려갔다. 전쟁은 안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녀의 글은 세상을 바꾸었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의 잔혹함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일깨운 책이 되었다. 그녀가 꿈꿨던 “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진짜 현실이 된 것이다.







아들이 조용히 글자를 옮겨 적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글의 힘’을 생각했다. 글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오늘 내가 살아 있었다’는 기록이면 충분하다. 내가 느낀 작은 기쁨, 불안, 혹은 깨달음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글쓰기는 결국, 내 안의 목소리를 잃지 않게 하는 일이다. 세상이 요란하게 돌아가도 내 마음의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쓴다. 안네가 그랬듯이, 우리도 글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빠르게 흘러가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 글쓰기는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게 해준다.




‘오늘의 나’를 이해하고, ‘내일의 나’를 세워가는 일. 그게 글이 가진 가장 따뜻한 힘이다. 글은 시간의 벽을 넘는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연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저 한 문장만 써보자. “오늘 나는 이렇게 느꼈다.” 그 한 줄이 내일의 나를 일으키는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고, 당신 자신을 지키는 글. 그 한 문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멋진 세계. 그 안에 있어서 참 감사하고 기쁘다.


이 순간. 안네가 참 궁금하고 보고싶고 그립다. 아니, 이 미 그녀의 글을 통해 안네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다음에 안네를 만나게 되면 말 없이 꼭 안아줘야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주었고 오늘 나에게도 오늘을 여전히 써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어. 고마워 안네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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