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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바지에서 배우는 교훈?

미스테리한 구멍

by 쓰는핑거


아들들 내복은… 다 그런가 봐


무릎이 닳고,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어느 날 보면 구멍이 송송—그런데도 그걸 제일 좋아하는 건, 꼭 우리 아들들이야. 새로 사준 내복은 “간지러워!” “이건 딱 붙어서 싫어!”라며 한 번 입고는 옷장 구석으로 사라지는데, 구멍 난 내복은 그토록 애착이 많으니 그야말로 ‘애착 내복인거지.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낡고 볼품없는 이 옷이 아이에겐 세상 가장 편한 옷인 것은 확실해. 아이들이 좋아하고 편하니까 자주 입는 옷에는 영락없이 무릎에 큰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작년에 일본 선교여행을 다녀온 우리 아들. 생일날 선교지에 있어서 짠한 마음, 그리운 마음이 더했는데 선생님들이 서프라이즈로 생일파티를 해주셨지 뭐야. 생각지 못한 이벤트에 가슴이 뭉클해지려는 순간, 영상 속에 비친 아이의 무릎에 커다란 구멍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저 청바지, 구멍이 저렇게 컸었나?근데 그 안에 내복도 구멍났는데.. 구멍에 구멍이...“


순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어. 분명 구멍난 것도 알고 있었거든.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편해하는 바지야. 몇번이나 버리자고 했는데 아이가 괜찮다며 가지고 있었던 청바지와 내복. 두 개가 세트로 붙어서 구멍과 구멍들이 만나니... 왜 이렇게 부끄럽고 민망하던지...

‘에이, 엄마 눈에만 들어오는걸거야. 아무도 모르겠지. 신경도 안 쓰겠지. ’했는데 며칠 후 지인이 나를 보자마자 사진 속 구멍난 바지 이야기를 꺼내는거야. ‘아무도 모를거야’ 라는 나만의 기대는 와장창 무너져버렸고 커다란 구멍이 난 아이의 바지는 엄마만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닌 민망한 사실로 결론이 나버렸어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어

“구멍 난 바지는 이제 다 버린다.”

그날 저녁, 쓰레기봉투 하나가 꽉 찼네

그런데 며칠 뒤, 아들이 울상이 되어 말하네

“엄마, 내 좋은 바지들 다 어디 갔어?”

좋은 바지…?

그 ‘좋은 바지’가 바로 무릎이 뻥 뚫린 그 바지...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하준파파님의 영상을 봤어. 장남의 찢어진 내복바지를 꼬매주는 장면이었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바지니 꼬매서 그냥 입힌다는 하준파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부끄러워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더.

‘아, 다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이 이런 작은 구멍 하나에도

사랑과 웃음을 느끼며 살아가는구나 싶어지는게 그 순간, 내 마음의 구멍도 살짝 메워진 기분이었달까...



아이들은 왜 그 낡은 옷에 집착할까?


아마도 ‘편안함’ 때문이겠지?. 몸에 익숙하고, 마음이 편하니까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구멍 난 옷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들. 정작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잃어버렸을까. “새것이 좋아.” “깨끗해야 해.” 늘 비교하고, 바꾸고, 더 나은 걸 찾는 삶 속에서 편안함보다 체면을 먼저 생각하게 된 나를 보게 돼. 하지만 아이들은 그 단순함 속에서 행복을 누리니 진짜 부자인거지. 조금 낡아도, 조금 구멍 나도, 내가 편해하고 좋아하면 그만인거지.


세상 무엇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기쁨으로 입을 줄 아는 아이들이 진짜 멋쟁인거야. 그 영상을 보고 난 후에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어. 다시 구멍 난 무릎을 봐도, 예전처럼 부끄럽지 않아졌어. 그건 내 마음의 문제였음을. 그건 아이가 마음껏 뛰놀았다는 증거, 그리고 편안함 속에 자란다는 표식인걸 알았으니까.


이제는 찢어진 내복을 보면 이렇게 생각해


‘그래, 오늘도 잘 놀았구나. 여기저기 누비고 신나게 탐험했겠구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단순함은 사치처럼 여겨지지만, 아이들의 그 솔직한 애착은

우리에게 중요한 걸 상기시켜주었어


삶을 조금 덜 단정하게,

조금 더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며 살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말이야



구멍 난 내복 하나에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 아이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어. 고맙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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