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요즘 다이어리를 써??

응 나!

by 쓰는핑거


큰 아이 생일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큰 아이는 남자아이치고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곧잘 잘 쓰고 표현한다. 글쓰기소감대회마다 상장을 다 휩쓸어온다. 나보다 더 글을 잘 쓰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 생일에 어울리는 것이 다가오는 20266년을 기록하는 다이어라고 생각했다. 분명 아이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다이어리. 다행히도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진짜 멋지다며 당장 써보지 못하고 202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아쉬워하는 아이를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 순간 찬물을 끼얹는 극현실주의자 우리 남편..




“요즘 누가 다이어리에 글을 써? 핸드폰으로 다 쓰지 너 패드 있잖아. 거기에 기록해도 돼.~~”




뭐. 물론 그래도 되지.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고 쓸 일이 없는 남편은 굳이 다이어리를 꺼내고 뒤적이고 펴며 글을 쓸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스마트폰에 플랜이나 스케줄을 기록하면 끝인 사람이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다이어리만이 주는 감성이 반드시 있고, 훗날 꺼내볼 수 있는 추억과 감동이 있기 마련인 것을...






다이어리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다이어리를 펼치는 순간, 나는 잠시 멈추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흘러만 가던 시간이 종이 위에 조용히 앉는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감정과 생각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글로 적어보면 복잡하던 마음이 단순해지고, 어지럽던 하루가 명확한 한 줄로 정리되기도 한다. 엉망이 된 집안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느끼는 쾌감~ 분홍색 물때가 가득 낀 화장실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내고 나서 청소한 사람만 느낄 수 있다는 그 쾌감~ 그 쾌감이 머리속에서 일어난다. 어느 공간이나 정리가 필요한 것 처럼 무엇보다 정리한 필요한 곳은 내 생각이다. 엉크러진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나면 뒤숭숭한 감정들이 사라진다. 쓸데없는 걱정이 줄어든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알게 되니 나는 단단해질 수 밖에 없다



다이어리는 언제나 내 마음의 자리부터 정리해준다.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다. 말하자니 부담스럽고, 그냥 넘기자니 마음에 남아 밤늦게까지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 그럴 때 다이어리는 참을성이 강한 친구처럼 묵묵히 모든 이야기를 들어준다.

판단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흔들리고, 어떤 일에 힘을 얻는 사람인지 조금씩 보인다. 기록은 나를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 두 사람이 내일의 나를 조용히 이끌어간다.




목표를 세우면 막연해 보이던 것들도 글로 적는 순간 방향이 생긴다.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 그 모든 것이 종이 위에서 ‘실행 가능한 계획’이 된다. 계획을 적다 보면 마음이 단단해지고,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이어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엔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은 하루를 의미로 채워준다. 그저 지나가는 날 같아도 한 줄을 남기면 살아낸 하루가 된다. 오늘의 사소한 순간들이 내 삶의 흔적이 되는 것이다.







작은 감사도 기록하면 오래 남고, 오래 남으면 마음을 밝히는 힘이 된다. 다이어리를 쓰며 쌓이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조금씩 쌓이는 페이지처럼 나의 내면도 차곡차곡 단단해진다. 오늘 한 줄을 쓰는 일은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작은 응원과 같다.



다이어리를 쓴다는 것.

그것은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오늘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시간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의 마음을 한 줄로 기록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그 한 줄이,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구멍난 바지에서 배우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