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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Mar 17. 2022

일어나지도 않을 일 염려하지 않기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불안에 휩싸이는 지 모른다.

특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하기 시작하면 그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인생의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끊임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이 만들어져가는 듯 하다. 그 길이 잘못된 길일 수도 있고 계속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잘못된 길,바른 길 이런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순간의 선택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어떤 일이 펼쳐질 지 알 수 없는 길이기에 인생에서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순간은늘  두렵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순간의 선택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게 되진 않을까. 순간의 선택이 너무 멀리 돌아가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에 휩싸이고 대개 그 모든 것은 보통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써 이런 고민과 염려를 하지 않아야 마땅하지만 나는 너무 미개하고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무너지고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이런 것에서 자유해지고 있다. 보통 믿음이라 하면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라는 찬양의 고백처럼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녀들의 문제도 , 남편과의 문제도,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다. 내가 잘못 선택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더라도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돌아서 가는 모든 발걸음까지 헛된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그 시간을 통해 연단시키시며 결국은 우리를 선하고 바른 길로, 계획하신 길로 이끌어주리라 믿는 믿음!  이런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때가 많으니 나는 여전히 미약하고 연약한 것이다.






몇달 전의 일이였다.

계속 이직의 기회를 노리고 준비하고 있던 남편이 진지하게 미국에 있는 회사에 이직을 할 수도 있겠다고 툭 던지듯  말했다. 미국이라니! 미국에서 살게 될 생각과 앞으로 일어나게 될 변화들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고 있노라니 문득 설레이기도 했고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조금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설레임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남편이 찬물을 뒤집어 씌웠다. 아무 발판도 없고 연고도 없이 맨 땅에 헤딩 하듯이 미국에 가서 적응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게 되더라도 혼자 가서 기반을 닦고 자리를 잡고 있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새삼 야속했다.




  '남편과 떨어져서 살게 된다고? 나 혼자 남편 없이 아들 셋을 키우고 있어야 한다고? 남편 혼자 미국에서 어떻게 생활하나? 그게 가능한가?' 이것 저것 생각해보며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남편이 또 말했다.





"가게 되더라도 우진이는 데리고 갈게"



큰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아들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실적이고 지독히 이성적인 남편이 자신과 큰 아들만 먼저 미국에 가서 기반을 닦고 자리를 닦고 적응하고 있겠다고 말했다. 나와 어린 두 동생들은 2~3년 후에 미국으로 들어오는 걸로 생각하고 있으라고 했다. 이 모든 일이 확실히 정해진 일은 아니였다. 그저 남편의 계획이였지만 모든 것이 정해진 듯, 이미 독하게 마음을 먹은 듯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 앞에서 난 너무 두려웠고 막막했고서운했다. 남편없이 아이들하고만 지내는 것도 두렵고, 남편 혼자 미국에 보내는 것도 두려운데, 남편이 갑자기 큰 아들을 데리고 가겠다니, 큰 아들과 떨어져 지내게 될 그 그리운 시간들, 아빠와 큰 형아를 찾으며 그리워하게 될 동생들을 어떻게 달래고 위로하며 지내나...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게 그리운 애절함에 눈물이 막 났다. 남편에겐 절대 안된다고, 갈거면 다 같이 가고 안되면 당신도 갈 수 없다고 쐐기를 박으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남편의 성공과 자녀의 새로운 앞길을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아픔의 시간들일까... 라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하자 선택의 두려움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였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긴 한데 하나님 나 혼자는 못해요. 다 같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절대 떨어져서 지내는 일 없도록 해주세요. 떨어져서 지내는 건 정말 아니잖아요. 남편 없이 어떻게 살아요. 큰 아이 없이 어떻게 살아요. 큰 형아 없이 , 아빠 없이 동생들이 그 긴 시간 어떻게 버텨요. 찾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줘야 해요. 저는 못해요 . 우리 다같이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내가 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기도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감정에 치우쳐 보지 못했던 이성적인 판단으로 눈을 뜨고 보니 좋은 기회 앞에서 내가 편한 길을 가고자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다시 기도했다. 난 정말 어떤 선택이 바른 선택인지 알 수 없기에 다시 기도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정 가운데, 남편의 선택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구했다.



' 남편이 혼자 미국을 가게 되던, 큰 아이만 데리고 가게 되던, 우리 모두 가게 되던지 이제 상관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세요. 남편의 선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세요. 우리 가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끄심에 순종하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남편을 설득하는 것도, 내가 고집을 부리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답을 찾을 수 없는 길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는데 어떻게 인도하시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되든지 하나도 상관이 없어지는 놀라운 마음의 평안을 경험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 가족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우리 가족에겐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헤프닝처럼 끝났다. 좀 허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도 않을 일 가지고 그렇게 힘들어했나 허무해졌다. 한편으로 좋은 기회였던 것 같은데 아쉽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환경속에서 적응하고 성장해나갈 시간이 두려우면서도 설레였던 짧은 감정의 여운이 짙게 남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저 감사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족 모두 미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 남아서 계속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떤 아쉬움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서 감사하고 다행이였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육아휴직을 쓰면서 좀 쉬고 싶다는 것이다. 그 전부터 직장문제로 힘들어했고 그래서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계획했던 남편이 미국 일도 잘 되지 않고 이직도 쉽지 않자 마지막 비장의 카드인 육아휴직카드를 내민 것이다. 바쁜 남편이 아이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지 못하고 일에 찌들어 있는 순간에도 "삼성 안 다녀도 돼. 다른 일 해도 돼. 여보 좋아하는 일 하고 편하게 여유롭게 살자" 라고 말했던 나인데, 갑자기 육아휴직을 쓰고 쉬고 싶다는 남편의 발언이 폭탄처럼 느껴졌다.  삼성에서 몸담아 열심히 일했고 치열하게 일했던 남편임을 알기에, 언젠가 남편이 쉬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여보. 그만두고 여보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라고 멋지게 말해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그런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을 어르고 달랬다.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으로 반으로 줄어 들어오는 월급에는 세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남편이 쉬고 있는 모습을 스트레스 주지 않고 내가 어떻게 잘 이겨내고 격려해 줄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서의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면 또 다시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텐데 남편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웠다. 남편은 다른 사람보다 진급도 빨랐다. 고가점수도 해마다 잘 받았다.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다. 그런 남편이 뭔가에 확 주눅이 들어 전보다 말수가 적어지고 자신없어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이 위기를 한번 더 잘 이겨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반대의견을 표현했고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고 다시 마음을 다 잡도록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남편은 여전히 육아휴직을 쓰고 조금 쉬고싶어 했다. 육아휴직을 내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게 대리운전기사, 수산시장에서의 잡일, 식당 아르바이트 등의  단순노동이였다. 개인장사를 해보고 싶어했던 남편이였기에 이해도 되었다. 무작정 장사라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 수는 없으니 바닥부터 천천히 배워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다시 기도했다.

불안이 엄습했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졌지만 그 모든 시간 나의 뜻과 바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지금처럼 열심히 일했으면 했다. 위기를 잘 이겨내고 도약의 발걸음의 밑판이 되는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딛길 원했다. 하지만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나의 바램은 이러하지만 나의 바램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 모든일이 해결 되길 기도했다. 이 문제 또한 남편의 삶의 문제였고 남편의 삶 가운데 남편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였기에 내가 개입할 수 없었다. 나의 뜻을 어필해보아도 먹히지 않았다. 설득해보아도, 달래보아도 남편은 마음을 먹은 듯 완강했고 계속 생각해놓은 날짜가 되면 육아휴직을 낼 거라고 나에게 선포했다.



처음엔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뜻이 남편의 삶 가운데, 우리 가정 가운데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자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고 회사를 쉬게 되어도, 다시 복직하게 되어도, 그 길로 영원히 퇴사하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더라도 그 어떤 길이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괜찮아졌다. 놀라운 능력과 권세 있으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자녀의 모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자 왠지 남편의 육아휴직 타령은 조금 잦아들은 듯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마음을 잡아주는 마음좋은 상사가 있었고 새로운 부서에 발령이 나게 되는 여러가지 변화들이 생겼다. 감사하고 다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육아휴직의 카드를 생각하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마음이 틀리면 사표를 던지듯 육아휴직 카드를 낼 기세였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은 사라졌다. 난 여전히 계속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었고 그 어떤 길이라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길이라면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에 확진이 되었다. 작은 아이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집 공기를 바꾸었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대기업이여서 그런지 더 조심하고 신경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은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회사에서 2주간 재택근무를 요망했다. 그렇게 2주간 재택근무가 시작된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육아휴직을 쓰고 쉬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너무 좋다며 어린아이보다도 더 천진난만하게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은, 아이들과 내가 코로나에 확진 되었다는 왠지 속상하게 느껴졌던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느라 미처 기억하지 못했다. 육아휴직을 쓰고 쉬고 싶어했던 남편의 모습을...




남편은 재택근무로 집에서 계속 전화통화를 하며 줌 미팅을 하며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한 방에 혼자 있을 수 있었고 ;남편만은 지켜주자' 라는 마음이 들어 '격리한다' 생각하고 남편의 밥도 따로 챙겨주었다. 집에 있는 남편의 식사시간에 맞춰 삼시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고단한 일이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내가  증상이 경미해서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였다. 2주간의 재택근무가 끝나갈 무렵, 남편도 나름 조심했지만 한 집안의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없었는지 뒤늦게 확진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은 총 3주를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서 쉬게 되었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체 안될 무렵, 어느 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아.. 이제 집에 있는 것도 힘들고 지겹다.

빨리 다시 회사 나가고 싶다. 나 이제 육아휴직 안 써도 되겠다. 육아휴직 쓴 것 같은 기분이야.

이제 쉬는 것도 지겹다. 빨리 회사 나갈란다."




그 소리를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고 쉬고 싶었던 그 마음과 그 필요를 이 시간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하심을 그제서야 눈치챘기 때문이다.



와!

하나님 정말 탁월하십니다.

어떻게 이 시간을 남편이 필요하고 원하는 시간을 쓰셨습니까...





육아휴직을 쓰고 쉬고 싶었던 남편의 그 로망의 시간을 채워주셨다. 실컷 쉬게 하셨다. 실컷 쉬고 나니 다시 회사에 나가고 싶어지게 하셨다. 뭐든지 본인이 직접 깨달아야 가능한 법이다. 남편은 본의 아니게 온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격리되었던 3주의 시간으로 직접, 온 몸으로 깨달았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집에서 여유있게 쉬며 머리를 정리하고 재정비하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시간이, 일할 수 있는 그 시간이 가장 값진 것임을 몸소 깨달았다.


 사실, 남편이 육아휴직은 쓰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였다. 회사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힘을 내서 회사에 열정과 열심을 뿜어내고 싶었던 자극이 필요했던 남편에게 그런 시간을 허락하시고 깨닫게  사용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정말 탁월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을 통해 남편은 회사의 소중함을 알았고 다시 용기와 힘을 내서 도전하려는 본능과 열정을 느꼈을 것이다. 또 놀랍게도 남편은 그 시간에 파트장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인사발령발표가 있는 그 때,  재택근무로 인해서 회사에서 자리를 비우고 있는 상황속에서 남편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받을 사람을 받는 것인가 보다. 남편은 열심히 일한 댓가를 보상받았고 기분좋은 쾌거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보다도 놀라운 축복이 어디있겠는가.

난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이렇게 무한한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한이 없다. 그 사랑을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고 주권이다.




늘 믿지 않는 남편에게 자신있게 말한다.

"내가 여보! 다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 섬기고 기도하고 하나님 일 하니까 그렇게 여보 도와주시고 잘 되게 해주시는거야!"

남편도 처음엔 눈을 흘겼지만 이제는 부정하지 않는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이번 승진으로 인해서 전보다 부쩍 더 많이 축하를 받는 모습에 이유를 물었더니 남들은 2~3년이 걸려 노력해야 될까 말까한 승진이였다고 한다. 초고속 승진이였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너무 기뻐서  호들갑을 떨어대며 또 다시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했더니 남편이 "네가 그럴까봐 얘기 안했어" 라고 하는데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어떤 문제 앞에서, 또 어떤 선택의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가보지 않은 길을 염려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구하면 후회가 없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리길 구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내 뜻보다, 내 계획보다 , 내 생각보다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나의 모든 삶 가운데, 남편의 모든 삶 가운데, 내 아이들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라.

잠언 3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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