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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녕 May 28. 2024

2장. 수능이 끝난 수험생의 무료함 #쟝블랑제리

할짓거리 없는 나, 주어진 빵은 더욱 열심히 먹는다.





#쟝블랑제리

서울대생들의 행복이라 불리는

관악구 빵맛집, 장블랑제리.

엄청나게 큰 맘모스빵을 사먹기 위해 빵 나오는 시간을 맞춰서 웨이팅을 한다.

맘모스빵 하나당 1kg 은 넘는다. 

처음으로 시켜본 빵택배집이 이곳이였으며, 이 빵 때문에 서울 올라가는 날이 행복했다.



현재는 웨이팅까지는 안하지만

한동안 맘모스빵 열풍이 불며 

빵시장이 시작될 때쯤이였던 19-20년도,

빵순이로써 이곳을 안먹어보며 수치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이 빵에 담긴 나의 추억이 너무나도 많아서 할 이야기가 많아 벌써 설렌다.

내가 이 빵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그 당시, 내 인스타그램 리뷰로 대신한다. 

이 엄청난 단면을 보라.. 

소보루 두께부터 팥앙금, 완두앙금 그리고 사이의 버터크림 + 밤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다.



이 글은 빵집 추천이 아닌 빵집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쓰기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에 담긴 당신의 이야기도 한번쯤 떠올려봤으면 한다.






1) 목적이 빠진 목표



고등학교의 기억은 오로지 공부뿐이다. 그리고 빵

물론 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까지는 아니였다. 2학년때 나의 인생을 바꿔준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나의 목표를 정하게 되었고 그 목표는 다른 추상적인 것이 아닌 오로지 하나 , '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 였다. 

부산 사람 눈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다 멋있어 보였고 그곳을 가면 나의 모든 삶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나는 눈 앞에 보이는 목표가 있으면 달린다. 미친듯이,

꽤나 열심히 준비한 덕에 내신 1점 후반대로 경희대학교 의상학과의 교과전형 예비번호 10번, 마지막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렇게 끝난 수능. 해방감과 동시에 찾아온 무료함.

아직도 궁금하다. 수능 끝난 수험생들 뭐하고 살았어? 

난 진짜 너무 할게 없어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기억나는 건 매일 먹고 걸어다녔던 것 같다.



지금 와서 깨닫는 것이지만,

입시의 문제점은 정말 하나의 대상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목표라 함에 있어 목적이 먼저 우선시 되어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 목표를 세웠는가?


그 무엇이 빠지고 목표만 세웠더니 목표를 이루고 나니 잠시의 성취감 이후 끝없이 무료해지고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것 마저 두렵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너무 힘들었거든.

목적이 ' 스스로의 성장과 배움 ' 이였다면 목표를 이루는 과정과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는 과정들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2) 무료함 속의 행복감


근데 어쩌면 이 당시에 이걸 몰랐기 때문에 그 무료한 시간에

나의 집착 수준의 즐거움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빵이였다.

할 게 없는데 그렇다고 뭔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때 본 여수언니 정혜영님 영상.

지금 나를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은 모두가 아는 그 언니 ..

한창 여수언니 영상 보면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처음먹어보고,

푸라닭 고추마요도 먹어보고, 

늘 급식만 먹고 살아온 나였기에 이런 음식들 따라 먹는게 참 재밌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쟝블랑제리 맘모스빵을 우유에 막 찍어먹으면 음~ 음~ 맛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이거 안먹어볼 수가 없잖아.. 근데 서울에 있는 곳이다.

근데 택배가 된다고 한다. 없는 돈 싹싹 긁어서 무료배송 맞춰 5만원치를 시켰다.

그 당시 내 최고의 과소비였다. 

다행히도 쟝블랑제리는 가성비가 아주 좋은 빵집이라

5만원치 빵은 엄청난 양이였다. 냉동고 한 면이 빵으로 가득 찼을 때의 행복감은..

대학교 붙은 거 이상의 행복이였을지도..




처음 먹어본 장블랑제리의 빵은... 말도 안된다. 

내 인생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였다. 그전에는 뚜레쥬르 맘모스빵도 맛있었는데.. (인제는 안먹는다)

거기다 차갑게 냉동고에 넣었다가 우유에 찍어서 먹으면 진짜 행복하다.

그 뒤로 서울 올라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관악까지 달려가서 택배박스 접어서 꽉 채워서 사왔다.

진짜 진짜 그 당시 내 최고의 행복한 순간들이였다.




3)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하게 먹으면 됐지 싶겠지만 행복이란 참 금방 적응하는 것 같다.

행복의 감정에 익숙해지면 스스로가 불안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이 빵 살이 아주 잘 찌는 빵이다. 주니어 맘모스빵이 하나에 칼로리가 2000이 가볍게 넘는다?

뭐든 열심히 하고 싶은 나는 빵도 열심히 먹고 싶고, 그렇다고 살도 찌고 싶진 않았다.

무료한 하루에 심심할 때 가장 큰 행복을 줬던 만큼 그 행복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끝없이 빵을 먹다보면 내가 배가 부른지 만지도 모르고 계속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할 게 없는 하루는 참 시간이 안간다. 근데 빵을 먹으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

장장 3-4시간을 이 빵 , 저 빵, 과자 등등 끝없이 욱여 넣는 데 주체가 안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먹느라 시간이 흘러버리면 또 스스로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 소중한 시간에 뭐라도 하면 될 텐데 왜 그냥 먹고, 배부르고 살 찌는 기분이 싫고.


자책 덕인지 운동도 참 열심히 했다. 

사람들은 운동을 되게 힘들어 하던데, 난 힘들어서 운동을 했다.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덜 자책하고 싶어서.


늘 합리화가 필요했다. 내가 먹었다면 , 먹은 만큼 운동하고 열심히 살아야만 스스로가 용납이 된다.

공부할 때 먹는 빵은 보상이라 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비싼 빵들만 사먹으면서 행복해한다고? 당시 나는 너무 스스로가 못나보였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빵은 맨날 먹고 싶었다. 그렇게 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렇게 나의 인스타그램은 빵스타그램이 되었다.




이 당시 빵을 정말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많이 자책하던 시간이 많았기에

어떻게 극복해나갔고 빵을 온전히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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