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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녕 May 27. 2024

1장. 고등학생의 설움 #맘모스빵

내 인생에 처음 느낀 가장 달콤한 순간은 맘모스빵을 맛본 순간이다.



#맘모스빵

특정 빵집 이야기를 들어가기 앞서

나의 빵순이 일대기의 시작점에는 맘모스빵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맘모스빵을 안먹어본 한국 사람이 있다면 꽤나 실망이다.




이 글은 빵집 추천이 아닌 빵집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쓰기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에 담긴 당신의 이야기도 한번쯤 떠올려봤으면 한다.




1) 시작하기에 앞서.


20살의 나는 '코로나 학번' , 20학번으로 부산에서 갓 서울 상경한 아주 희망 넘치고 꿈 넘치던 학생이였다.

그렇게 서울의 꿈을 가득 품고 올라왔을 때 할 수 있는 건 자취방에서 온라인 줌으로 수업듣기.

그때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려 했다.


학창시절 내내 정말 맡은 바를 열심히 수행하고 ,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정해진 공부를 열심히 하며 칭찬받는 걸 좋아했고,

자율성보다는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에 익숙했고,

플란다스의 개 마냥 칭찬과 당근 앞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나였다.


꽤나 엄격하고 선생님이였던 부모님 아래에서 늘 공부와 규칙이 미덕인 삶을 살아왔기에

스스로도 규칙이 있는 삶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어쩌면 그때가 더 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더이상 학생이 아니였고 난생 첫 독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마주한 서울, 그러나 마스크 속 서울

낯선 모든 것을 더더욱 낯설게 만들었고 마음을 둘 공간이라곤 전혀 없었다.

아는 사람 단 한 명 없었고 꿈에 그리던 대학교 수업도 집에서 들었다. 입학식도 취소된 설움을 아는가..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사람을 마주하지 않은 기간은 이때가 유일할 것이다.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아무 일이 없는 하루의 시간은 너무 길고 지루했다. 코로나로 인한 혼란스러운 교수님들의 대학 수업들은 정말 무의미했다. 이때 들었던 수업 진짜 한글자도 기억안난다. 

상황에서 내가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다행히도 빵순이 였다.






2) 빵순이 고등학생


빵순이?

편했다고 하는 고등학생 시절, 당연히 입시는 힘들었고

그 시기에 나를 달래준 건 빵 이였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 안하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도

열심히 공부한 나를 위한 당근도 열심히 쥐어주었다. 나에게 최상급 당근이 빵!





음식에 큰 관심없는 중학생 시절을 지나 극심한 입시 스트레스는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 넘어온다.

하루 중 나에게 유일한 점심과 저녁 1시간씩 총 2시간에 최고의 만족감을 올려줄 보상거리가 필요했다.

어쩌다 보게된 여수언니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인생에서 처음 본 맘모스빵.. 내가 아는 맘모스빵은 슈퍼에 딸기잼이랑 크림 발린 빵이였는데..


유튜브로 본 맘모스빵의 비주얼은 경악스러웠다. 엄청난 양의 꾸덕한 크림과 초콜렛이 빵 사이에 박혀있다.

그러나 몸이 지쳐 당을 필요로 할 때 그 비주얼을 보면 사람이 돌아버린다.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은 뚜레쥬르 맘모스빵이기에 당장 독서실을 박차고 나와 뚜레쥬르에서 혼자 우유에 맘모스빵을 콕 찍어먹었다. 눈물나게 맛있었다. 






그 뒤로 나의 저녁시간은 빵집으로 향했다. 부산대 앞에 살았기에 그 근처 빵집은 내가 다 섭렵했다.

맛있는 빵을 먹고 행복해지니 이걸 당장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인스타 비공계 계정을 파서 '얘들아 뚜레쥬르 맘모스빵에 우유 찍어서 먹으면 극락이다. 소보루가 바삭녹진하게 씹히다가 입에서 녹으면서 안에 밤과 크림이 섞일 때부터 기절이야..' 


그 뒤로 고삼 시절 나의 빵 기록들을 보면 아주 웃긴다.

매일 힘들다고 찡찡거림 + 빵 개맛있다 욕설 + 너무 많이 먹어서 돼지같다 후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기에 그 힘든 고삼을 버텨낸 건

빵에게 화풀이도 하고 빵으로 치유도 받고 빵으로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가장 많이 먹은 빵은

뚜레쥬르 맘모스빵과 트레이더스 빵들.

빵이 비싼게 이해가 안되던 시절이였기에 

(지금도 이해안되는 사람들 많겠지만 지금의 난 빵이 비싼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더스 빵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얇은 겹겹이 페스츄리스틱.

매번 아빠차에서 이동하면서 10개씩 와구와구 먹었다.. 어느 순간은 한통 다 먹은 날도 있었다.

빵에 모든 분풀이를 하다보니 자제력을 빵에서는 잃더라고 




매주 주말에는 트레이더스 치즈케이크 한판 먹는게 내 힐링이였다.

평일에 매일 주말에 치즈케이크 먹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버텨냈다. 억눌렀던 모든 욕망이 케이크를 먹는 순간 터진다. 주체가 안된다. 배불러도 먹어야 돼. 이 시간이 지나면 또 공부하러 가야되거든. 지금 아니면 못먹거든. 


그때는 주체 못하는 내가 이해가 안됐다. 평소에 공부는 잘 억누르고 버티고 버티면서 왜 음식 앞에서 좌절하는가? 지금은 이해된다. 뭐 하나라도 욕망을 미친듯이 풀어야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그 덕에 공부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빵앞에 주체 못하는 나로 인해 빵이 밉기도 했지만 지금은 참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그 덕에 내가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경험을 해보고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 삶에 있어 빵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빵앞에서는 주체 못하는 사람이다. 허허 빵을 쫌 줄여야하는데..






고등학생때 이야기는 늘 공부 -> 빵 -> 후회 -> 공부 의 연속이라

이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20살 때부터 진정한 빵순이의 길을 걷게 되니

이후의 이야기를 기대 많이 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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