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거미씨

한겨울에 한여름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 2

by 퍼퓸

2022년 10월 14일 오전 11시 2분

내가 ‘그 거미씨’의 작품을 본 시간이다. 아니 이 시간은 사진을 찍은 시간이니 실제로 거미줄을 본 시간은 11시가 되기 직전이었으리라. 상가에 갈 일이 있어 바쁘게 걷던 중 바로 옆 아파트 화단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여 다가갔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말로만 전해 듣고 책이나 영상 등 매체로만 접했던 거미줄을 보았다.


거미줄 한 올 한 올이 섬세하고 촘촘해서 누군가 거미줄을 재현하기 위해 나무 사이에 인공적으로 걸쳐 놓은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거미줄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거미줄이 생기기 전 여름부터 주변에는 늘 커다란 거미줄이 쳐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규칙적인 모양의 거미줄도 아니고 벌레나 곤충들이 거미줄에 흉물스럽게 걸려 있는 모양이라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애써 외면하면서 걷곤 했다. 늘 그 좁은 길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를 연상케 하는 거미줄만 접하다 이날 눈부시게 찬란한 거미줄을 보게 된 것이다.


“자, 보라구. 이게 진정한 거미줄이라는 거야.”


어디선가 거미의 자부심 가득 찬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내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거미줄을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것 같았다. 하루하루 약육강식 세계에서 치열하게 먹고살기 위해 만든 생존과 직결된 거미줄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와는 별개로 하나의 예술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미줄로 보였다. 너무 아름다운 그림은 진짜 같고 너무 아름다운 자연에는 그림 같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마치 길을 걷다 우연히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서면서 자연이라는 특별한 미술관에 나 홀로 초대되어 거미줄의 이데아를 감상하는 듯했다. 거미줄의 실제 기능과는 무관한 또 다른 순수 예술의 현장이었다. 그러니 거미라 부르지 않고 호칭에 ‘~씨’를 붙여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거미씨”

실제로 거미줄의 주인인 ‘그 거미씨’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거미줄을 치는 거미는 거미줄을 친 후 숨어서 먹이가 걸리길 기다린다고 하니 쉽게 보이는 곳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미씨, 수고가 많으십니다.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했나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주변 이웃 거미들과는 아는 사인가요?’

‘완성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거미줄 한 올 한 올이 햇빛에 반짝일 때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마음속으로 거미씨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 거미줄의 주인은 마치 그리스의 신화 속 아라크네의 모습이나 만화 영화 속 파스텔톤 거미로 나타나 내게 뭔가 사연을 들려줄 것 같았다. 좀 더 오래 서서 거미줄을 관찰하고 싶었다. 사진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싶었지만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서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거란 생각에 부끄러워 소심하게 한 장만 겨우 찍었다.


이 거미줄을 보고서야 거미가 등장하는 모든 예술 작품이 바로 이해되기라도 한 듯 눈과 정신이 환해졌다. 오랜 역사 속 예술의 현장에 거미가 등장한 이유를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지금보다도 더 일상적으로 거미를 볼 수 있었던 시대에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거미줄이 많았을 것이고 내가 “그 거미씨”라고 부르듯 누군가에게도 넘치는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그 거미줄을 만든 ‘그 거미씨’ 생각에 거미의 생태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거미의 천적 중 하나가 ‘인간’도 포함된다는 사실에 적잖게 당황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언제든 모든 동물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나의 종족이 거미 종족에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 길을 며칠이 지난 후에야 다시 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거미줄이 사라지고 그 뒤로 긴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의 지저분한 거미줄은 그대로였다. 애초에 거미줄이 아파트 작은 샛길 바로 옆에 쳐 있었고 그 뒤로는 현수막을 치기에 좋은 위치라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파괴’되었다.

야속했다.

사진을 좀 더 찍어 두지 못했던 것과 그 거미줄의 주인을 찾아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 (종이접기 만든 거미) 사마귀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공부방 남학생이 나를 위해 종이로 만들어 준 거미다.

하지만 거미의 생태를 조사하면서 막상 거미의 실체를 사진으로 접하니 그 모습이 편안한 마음으로 뚫어지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


아, 맞다, 이게 거미의 모습이었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현타가 왔다. 그 아름다운 거미줄의 주인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거미줄을 친 거미라면 뭔가 특별한 모습일 거라 착각했던 거다. 내가 본 거미줄의 ‘그 거미씨’ 만은 다를 거라고.


그 뒤로 아파트 화단 사이를 걸을 때면 나도 모르게 나무들 사이를 두리번거렸다. 어딘가 다른 곳에 ‘그 거미씨’가 다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님 ‘그 거미씨’와 비슷한 다른 거미씨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지나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론 ‘그 거미씨’의 안부가 궁금했다. 이제는 혹시라도 거미줄을 못 보고 걷다가 애써 만든 거미줄을 걷어치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 좀 더 주변을 살피면서 걷게 되었다.


겨울이다. 일부 거미는 땅속에서 동면하지만 대부분 거미는 죽기 전 거미줄로 알집을 만들어 겨울을 나게 하여 봄에 새끼 거미들이 알에서 깨어난단고 한다. 그러니 겨울에는 거미도 거미집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그 거미씨’나 혹은 그의 후손들의 작품을 보려면 여름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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