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8 - 돈보다 중요한 것

Very important thing

by 강 사무장

통장에 돈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했다. 이런 든든함은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곧 자유를 의미했다. 그렇다. 돈은 자유를 준다. 사람들은 서로를 구속하려 하지만 돈은 자유를 준다. 그래서 돈 위에 사람 있는 것이 아닌, 사람 위에 돈이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이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씁쓸한 현실이지만 돈이 너무 달콤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자유를 주는 돈을 벌기 위해 청년은 다시 일터로 향했다. 주로 40대 이상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 이곳에는 청년보다 어린 20대 친구들도 종종 보였는데, 그들 역시 예전 청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이 친구들도 훗날 알게 되겠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주는 돈의 압박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걸.'


하지만 청년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린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 시절과 현 상황을 비교하며 본인의 생각대로 단정 짓고 있을 때, 청년보다 나이가 많은 한 남자도 자신보다 젊은 청년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20대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30대 청년에게 40대 남자가 물었다.


"31살입니다. 왜 그러시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청년은 당황하며 경계하듯 말했다.


"내가 딱 자네 나이에 이곳에 들어왔어. 딱 3년 동안 일해서 목돈 5000만 원을 모은 뒤에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하려 했지.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익숙하고 편안해지니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렇게 훌쩍 16년이 지나버리더라고. 벌써 47살이지 뭐야 허허허."


청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인생사를 억지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그의 말에 청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그게 너무 후회스러워. 그 나이엔 더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더 많은 도전을 해볼 수 있었는데. 더 많은 곳을 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나이가 드니 그 시절에만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야. 지금은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으니 뭔가를 시도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아."


사실, 청년은 같은 일터에 있는 20대 친구들의 나이를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한데 아저씨의 말을 들어 보니, 자기 자신도 새파랗게 젊은 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47살이 보기에 31살은 얼마나 아름다운 청춘이겠는가.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왜 그 시절에 아저씨가 원했던 걸 시도하지 않으셨죠? 그때는 후회할 줄 몰랐나요?"


"솔직히 말하면 용기가 없었어. 그때는 돈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원하는 것,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돈을 잃으면 인생이 끝날 거라 착각했지.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래.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돈은 잃으면 다시 벌면 돼. 그런데 그때 그 시절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땐 생각지도 못했어. 돈이 전부가 아니라, 시간이 전부였던 거야."


순간 청년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를 느꼈다. 이 느낌은 분명하게 20대 시절 청년에게 '살맛'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어느새부턴가 돈이라는 달빛에 가려져, 마치 그림자처럼 짙은 어둠 속에 파묻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어둠은 드러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청년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대로 시간만 흘러버렸다. 실질적으로 복권 당첨금을 다 잃긴 했지만, 어쨌든 자력으로 다시 천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기도 했다. 그렇게 청년은 잊고 있었던 '살아 있는 느낌'을 조금씩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애초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그 '느낌'을.


청년의 복잡 미묘한 표정을 읽었는지 40대 남자는 진심 어린 어조로 묵직한 말을 내뱉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한 직장에 16년씩이나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해. 참 대단하다고, 잘 버텨왔다고 다들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근데 그러면 뭐하나. 우리가 주변인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잖나? 내가 후회하면 남들의 칭찬도 의미 없는 거야. 내 인생은 내 것이지 남들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야."


"그렇군요…."


평범해 보이는 아저씨의 언중유골에 청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엔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아닌 이상, 한 직장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생각해. 요즘은 시대가 변했거든. 자네는 꼭 자네의 일을 찾아봐. 돈이 안 된다고 금방 포기하거나, 나중에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그럼 수고해."


할 말을 마치고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돈 그리고 시간. 세상은 돈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돈에 관한 '신호'만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돈과는 달리, 한번 곁에서 떠나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은 그 무시무시한 '신호'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이길 만큼 중요한 건 아니었어. 이제는 더 이상 인생에 후회를 남기면 안 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보자.'


돈 관리에 더해, 청년은 드디어 시간을 관리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