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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Jul 13. 2023

우리 집 헤어 드레서는 바로 나!

가족의 머리는 내가 책임진다

나의 머리는 내가 자른다.


이상하지 않은가?

미용사도 아니고 그쪽으로 관련해서 어떠한 경험도 없는 사람이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자르다니

게다가 우리 가족모두 미용실은 가지 않는다.

우리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그들은 어떻게 먹고살라고?




아이가 어릴 때 YWCA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 중에 미용 수업을 3개월 과정으로 배운 적이 있다.

석 달 이래야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10번 정도 참여했나?

시간상으로 많은 시간은 아니다.


평소에도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 하긴 하는데 미용실에서 일할 것도 아니면서 굳이 머리 만지는 일을?

그때만 해도 캐나다에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왜? 인지를 모르겠다.


첫 강의 시간에 미용선생님은 필요한 도구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 다음 단체로 구입할 것을 제안한다.

무료라고 해서 왔는데 역시 공짜는 없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책과 노트가 필요한데 하물며 기술을 배우는데 재료와 도구들이 없이 이론으로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알려 주는 대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가위를 손에 쥐는 법부터 시작해서 마네킹에 붙어 있는 긴 머리를 짧은 머리가 될 때까지의 자르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깨 길이의 머리, 다음에는 단발, 그다음에는 커트, 마지막에는 남자 머리, 이런 식으로

마네킹에 붙어 있는 머리가 다 없어지면 더 이상 머리 자르는 연습을 할 수 없으므로 조금만 자르는 긴 머리부터 시작해서 많이 잘라야 하는 짧은 머리로 나름의 룰을 정한 듯하다.

바리깡(hair clipper) 사용법을 마무리로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있어 보고 따라 하는 것은 잘하는 편이라 어렵지 않게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네킹 말고 진짜 사람으로서 대망의 나의 첫 모델(model)은 아들이다.

한 번도 미장원에 데려가 보지 않은 아이를 앉혀 놓고 미용사 흉내를 내면서 스프레이를 슉슉 뿌린 다음 가위로 조금씩 자르기 시작한다.


사실 마네킹(mannequin)은 조금 잘못 잘라도 "에이!  잘못 잘랐네"하면 그만이라 부담이 별로 없다.

하지만 소중한 내 아이는 다르다

혹시라도 가위가 머리 대신 살을 자르지는 않을까?

잘 생긴 아이를 삼돌이로 만들지는 않을까?

엄청 긴장되어 손도 살짝 떨린다.


가운을 입혔는데도 자른 머리카락이 목뒤로 넘어갔는지 따갑다고 아이가 찡찡 대기 시작한다.

"조금만 참아 울아들, 예쁘게 해 줄게" 달래 놓고 또다시 싹둑싹둑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붙들고 요리조리 씨름하는 동안 지루했는지 잠이 들어 버린 아이는 꾸벅꾸벅

고개를 떨군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편으로는 "무슨 죄야?" 안쓰럽기도 하다. 


대충 가위로 긴 머리를 다듬으니 인물이 훤하게 드러나면서 말쑥하고 무난해 보인다.

"그래! 이거지"

잘 자른 것 같아 뿌듯해하면서 자신감 뿜뿜(up) 교만해진다.

이번에는 바리깡 사용 타임.

가위 사용 할 때보다는 긴장감이 조금 더해진다.

살짝 터치만 잘못해도 머리에 이상한 자국이 생길 테니까.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난 다음  버튼을 딸칵 올리니 "위이잉"~ 하면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머리에 기구를 가져다 대자마자 "어머머머! 어떡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군데 듬성듬성 사선으로 된 흰 무늬가 보인다.


어릴 때 머리에 하얀색 구멍이 군데군데 보기 싫게 나 있는 남자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아이 머리가 그렇게 보인다.

초보 엄마의 서툰 솜씨가 만들어 낸 대형 참사(慘事)로 머리통이 이쁜 아이 머리에 몹쓸 낙서(落書)를 하고야 말았다.

더 이상 손을 댔다가는 설명이 없으면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추상화(抽象畵)가 그려질 판이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역시 만만치가 않아"


머리에 엄마가 어떤 예술작품(藝術作品)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 채 

죄도 없이 꼼짝 못 하고 벌서듯 앉아 있다가 해방된 것이 마냥 행복해 헤벌쭉 웃고 있는 아이를 어쩌면 좋아. 


저런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반성이란 걸 모른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멋을 낸다는 개념화(槪念化) 능력 자체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난도질 쳐서 망쳐 놓았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 따져가며 이런저런 불평은 늘어놓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確信)이 있었으니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이가 첫 번째 모델이 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토록 교활(狡猾)하고 계산적이라니 나는 나쁜 엄마임에 틀림없다.

"미안해 울아들! 엄마가 좀 더 연습해서 다음에는 어여쁘고 멋들어지게 잘라 줄게"

"근데 있잖아 아들! 지금도 뒷머리는 좀 이상해도 앞에서 보면 너무 훌륭한걸" 

여전히 잘난 척을 한다.


다행히 아이는 사춘기가 되어 외모에 관심도 많고 한창 멋 부릴 나이가 되었는데도

엄마가 자른 머리가 맘에 들 리 있을까만은 미장원에 가는 대신 기꺼이 자신의 머리를 내어 주었고 잘 자르던 못 자르던 "머리는 또 자라면 되는데요 뭐" 

고맙게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여 주면서 날 위로한다.

"이그!" 그냥 하는 말일 텐데 그걸 또 믿는다.

그 후로도 계속 아이의 머리는 내가 직접 자른다.




다음 모델은 당연히 남편이다.

꽤 까다로운 손님이다.

원래부터 아재니까 남편은 미장원보다는 이발소가 더 맞는 듯하다.

그곳에서 가위로 자르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이발기로 깨끗하게 잘라 놓은 머리를 어색해한다.


한국에 살면 결코 자신의 머리를 내게 맡길 일은 없을 텐데 여기서는 머리를 자르려면 예약도 해야 하고 또 시간에 맞춰 직접 가야 하는 일련의 일들이 귀찮아서 인지 어쩔 수 없이 내어 준다.

어른 아저씨라서 일하러 가면 사람들도 만나고 할 테니까 아이의 머리를 자를 때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형평성에 어긋나는데...


아이의 반응과는 달리 남편은 내가 잘라 준 머리를 한 번도 만족해하는 적이 없다.

군인처럼 잘라 놓았다고 투정

"그 나이면 엄청 어려 보이게 만들어 준거 아닌가?"

가위만 가지고 샥샥 치지 못하냐며 핀잔

"그럴 거면 이발소로 가라고요"


머리는 왜 이렇게 자주 자라는지

머리를 잘라 주는 일은 내게도 귀찮은 일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머리를 자르고 난 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 뭉치들이 흩날리면서 집안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 통에 다 치워도 옷이며 슬리퍼 여기저기에 콕콕 박혀 숨어 있기 일쑤라 따끔따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런 애로 사항도 마다하고 노동의 수고까지 더해 잘라 주건만 감사는 못할 망정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돈도 안 주고 공짜로 부려 먹으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대가도 없이 이래도 저래도 불만인데 뒷머리를 스케치북 삼아 멋진 그림을 그려가며 예술혼을 불태워 땜빵 머리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괜히 혼자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외쳐 본다.




마지막으로 가장 특별한 모델이자 고객은 바로 ""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있다.


캐나다에 처음 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영어가 서툴기도 하지만 

"숱을 살짝만 쳐 주세요" "요렇게 솎아 주세요" "요 부분을 최대한 살려서 해 주세요"

이런 말들은 "불그스름하다, 삭신이 쑤신다"와 같이 영어보다는 우리만의 감성으로 말을 해야 그들이 알아듣고 소통하기가 쉽다. 

우리는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을 가는 걸로.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미용사들의 손 기술과 머리 만지는 실력이 훨씬 더 좋다.


한인 신문을 뒤져서 한 곳을 예약하고 찾아간 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동네 미용실 같은 분위기였다.

한국의 최첨단 미용실들에 비하면 시설도 많이 부족하고 여러 명의 미용사들이 파트 별로 있어서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또래의 아줌마가 혼자서 자르고 감기고 말고 다하는 곳이다.


커트 시간이 시작되면서 괴로움은 나의 몫이 된다.

머리를 자르는 것인지 수다를 떠는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캐나다 입성(入城) 기며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다른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위쥔 손을 공포스럽게 내 얼굴에 왔다 갔다 하면서 수다에 심취해 머리 자르는 일을 멈추기를 여러 번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해 댄다.


뭐가 우선인지도 모르는지 일은 뒷전이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 놓고 당당하게 20년 전이었던 그 당시 30불(약 26,000원)에 팁까지 요구한다.

"What?  Are you crazy?" 


머리도 맘에 들 리가 없다.

그 뒤로도 두세 번 더 갔는데 시종일관(始終一貫) 똑같다.

성향(性向)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던 것은 갈 때마다 머리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 이상 방문할 맘이 없어져서 다른 곳을 알아보다 그냥 내가 자르기로 한다.

내가 자른다고 해서 만족이야 하겠냐만 어차피 맘에 안 드는데  돈까지 지불하면서 불만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파마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기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무작정 자르기만 하면 된다.

단발은 숙련(熟練)된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커트는 층만 내면 되니까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사실 커트 머리가 제일 어려운 것 아닌가???


앞에 있는 머리를 자르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역시 뒷머리가 문제다.

욕실에서 한 손으로 거울을 뒤에 대고 자를 만큼의 길이를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잡고 잰 다음 거울울 내려놓고 손감각으로  자른다.

다시 거울로 길이가 적당한지 살펴보고 만족하면 그만이고 아니면 다시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잘라낸다.

기계로 밑에 있는 잔머리들을 제거하고 나면 자라기 전까지 한동안은 깔끔해 봐 줄만 하다.

놀라운 것은 아무도 머리를 내가 잘랐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 같은 것은 모른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봐주던 상관 하지도 않는다.

늘 하던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련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나만의 스타일의 머리를 고수하며 

여전히 나의 머리를 그리고 가족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 집 전용 헤어 드레서(hair dresser)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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