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기다리다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한 귀퉁이에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해마다 봄, 여름이 되면 채송화, 사루비아(Salvia) 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고, 친구들과 봉숭아 꽃잎을 따 첫사랑을 꿈꾸며 손톱에 물들이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도시들이 점점 개발이 되고,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더 이상 마당이 있는 집은 보기가 힘들어지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편리해지긴 했지만, 삭막하게 느껴지는 도시에서 가끔씩 마당이 있는 집을 상상해 보곤 한다.
넓은 마당에서 아이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마음껏 뛰어놀고, 그 모습을 엄마 미소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 로망인 적도 있었다.
로망이 현실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삶은 따끔한 채찍을 주다가도, 어느 순간엔 선물을 선사하기도 한다.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캐나다로 오면서,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작은 마당이 생겼다.
넓지는 않지만, 초록 초록한 잔디가 살아 있는 뜨락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꿈에 그리던 로망이 현실이 되긴 했지만,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니기엔 아이가 어른처럼 커 버렸다.
아무리 작다 해도 나무 한그루 없는 텅 빈 마당은 허전하다.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이 오지는 않겠지만, 스피노자처럼 나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봄이 되면 대형 슈퍼마켓에서 저마다의 가든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여러 가지 묘목이나 모종들을 진열해 놓고 판매를 시작한다.
여기에 맞춰 시즌이 되면 자신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게 안은 늘 분주하다.
봄을 만끽하고픈 사람들은 앞마당 뒷마당 가릴 것 없이, 손 삽으로 땅을 파 갖가지 꽃모종들을 심는다.
그래도 얼굴은 보호하고 싶은 지, 밀짚모자처럼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곤 한다.
한철만 지나면 시들어 없어지는 데도 부지런히 해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집을 꾸민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른 채, 알록달록한 꽃모종들을 심고 있는 것이 봄의 일상인 그들과는 달리 게을러서 인지, 아니면 정서가 메말라서 인지,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가질 않는다.
오히려 잠깐의 화려함을 보기 위해서 저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건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 버릴 걸 왜?
"밥은 왜 먹니?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꺼져 버릴 걸"
하기 싫으니 괜한 이유를 댄다.
관심이 없으니 갈 일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가든 센터에 처음으로 가 본다.
둘러보다 보니 사과나무들이 제일 눈에 띈다.
우리 집 사과나무에 진짜 사과가 열린다면? 신기하고, 재미있을 것만 같다.
사과나무에 열리는 사과가 다 똑같지 뭐 했었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많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을에 따는 큼지막하고,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기대했지만, 이곳의 사과나무들은 종이 달라서 사과의 크기가 작다고 한다.
나무에 그림이 붙어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라 어떤 종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사과 그림이 있는 나무 두 개를 골라서 차에 싣고 집으로 온다.
남편이 열심히 삽질을 해서 땅을 깊게 파고 묘목을 마당에 심었다.
차에 싣고 올 때는 키가 커서 차창 밖으로 삐져나갈 정도라 난감하더니, 심어놓고 보니 나무가 너무 작아 초라해 보인다.
아무리 작은 마당이라고 해도, 사과나무 두 그루로는 턱없이 부족한가 보다.
아직은 모든 것이 어설퍼 보이는 마당이다.
그래도 저 나무가 자라 이파리가 많아지면, 마당을 꽉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발로 꾹꾹 밟아주면서 물을 준다.
"언제 자랄 거니? 사과는 언제? 괜히 성급한 질문도 해 본다.
이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과나무는 별 반응이 없다.
해마다 봄이 되면 사과나무에게로 가 말을 걸어본다.
엄마가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일 때, 아무 말 없이 주는 것보다는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말을 걸어주고, 목소리를 들려도 주면, 정서적으로 더욱더 안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듯이, 식물도 사람과 똑같이 말을 걸어 주면, 더 잘 자란다고 한다.
"잘 자라고 있는 거니? 벌들이 놀러 와 친구 하자고 해? 올해는 꽃을 피우려나?"
이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묵묵부답이고 나의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뒷집 사과나무는 해마다 꽃도 한가득 풍성하게 잘 피고, 사과도 주렁주렁 열리는데 우리 집은 해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정말 부럽다!
정말 신기한 것은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이 되면 영락없이 사과나무에 파아란 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올해는? 하고 잔뜩 기대를 해 보지만, 항상 혹시 나가 역시 나로 끝나 버린다.
매정한 나무는 감질나게 봄에 잎만 살짝 피우다가, 야속하게도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어 버린다.
"성격 정말 까칠한 거 맞지?"
몇 년째 꽃 피우는 방법을 몰라서 인지 아니면 알지만 "아직은" 하면서 밀당을 하는 것인지
조용하기만 한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엄마가 어릴 때 "물건을 모르면 값을 많이 주어야 한다"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역시 그래야 했나 보다.
그 집은 125불을 주었다 하고 우리는 25불에 샀으니
몇 배가 차이 나는 거야?
언감생심(焉敢生心) 욕심이 좀 과했나?
희망과 실망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기대조차 사라져 갈 무렵
여느 때처럼 나무에게 다가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불긋불긋한 뭔가가 보인다.
꽃망울이다!
유레카!!!
나무를 심은지 10년 만의 일이다.
드디어 우리 집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다.
꽃을 피웠으니 이제 열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순간인가?
십 년을 키웠더니 마침내 이쁜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그 긴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티고 서 있었을 테니,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처럼 저는 또 얼마나 초조했을까?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런 것인가 보다.
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꽃을 피우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느라 애를 써왔을 사과나무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초록 잎새 사이로 붉은색 어린 꽃망울이 살짝살짝 보인다.
이뽀 이뽀!
아직은 듬성듬성 몇 군데뿐이지만
그래도 이뤄냈으니 장하다
올해는 요만큼이지만, 이제는 스스로 꽃 피우는 법을 알아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이 피워낼 것이다.
그걸로 충분히 잘했다.
춥고 긴 겨울이 지루한 탓인지,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 되면 그냥 뭔가 좋은 느낌이 든다.
사과나무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이유도, 꽃처럼 뭔가 좋은 일이 활짝 피어날 것 같은 희망적인 느낌이 들어서 이다.
올해는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려온 사과나무에 내가 바라던 꽃도 피었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감개무량(感慨無量) 행복하다.
수줍은 소녀처럼 볼이 발그스름하던 꽃봉오리는 중매쟁이 꿀벌들의 열일 덕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마치 결혼식 올리듯 하얀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채 기지개 켜듯 만개(滿開)할 테고,
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어느새 아이를 잉태한 엄마의 배처럼, 볼록볼록 작은 사과 열매들이 지는 잎 사이로 얼굴을 비추게 될 것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화려했던 꽃이 다 지고 나면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이파리들 너머 그 빈자리를 성숙하고 우아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튼실하고 풍성한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리면서 또 채워 줄 것이다.
이제는 사과가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과를 수확하는 기분은 또 어떨까?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