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기다리다
우리 집에는 작은 뒷마당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한국의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는 마당이 있는 집에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고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 로망이었던 적이 있었다.
크기와는 상관없이 초록 초록한 잔디가 있는 뜨락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아무리 그래도 나무 한그루 없는 텅 빈 마당은 너무 허전하다.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 할 것 같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지는 않겠지만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봄이 되면 대형 슈퍼마켓에서 저마다의 가든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여러 가지 묘목이나 모종들을 진열해 놓고 판매를 시작한다.
여기에 맞춰 시즌이 되면 자신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게 안은 늘 분주하다.
봄을 만끽하고픈 사람들은 앞마당 뒷마당 가릴 것 없이 손 삽으로 땅을 파고 갖가지 꽃모종들을 심느라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뙤약볕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곤 한다.
한철만 지나면 시들어 없어지는 데도 부지런히 해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집을 꾸민다.
쪼그리고 앉아 알록달록 꽃들을 묻고 있는 것이 봄의 일상인 그들과는 달리 게을러서 인가? 아니면 정서가 메말라서 인가? 그런 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잠깐의 화려함을 보기 위해서 저렇게 까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 버릴 걸 왜?
하기 싫으니 괜한 이유를 댄다.
"밥은 왜 먹니?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꺼져 버릴 걸"
관심이 없으니 갈 일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그곳에 처음으로 가 사과나무 묘목을 골라본다.
사과나무에 열리는 사과가 다 똑같지 뭐 했었는데 생각보다 종류도 많다.
한국에서 가을에 따는 큼지막하고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기대했는데 이곳의 사과나무들은 종이 달라서 인지 사과의 크기가 모두 작다.
어떤 종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과나무 두 개를 골라서 차에 싣고 집으로 왔다.
남편이 열심히 삽질을 하고 땅을 깊게 파서 묘목을 마당에 심었는데 차에 싣고 올 때는 키가 커서 차창 밖으로 삐져나갈 정도라 난감하더니 심고 나니 너무 작아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모든 것이 아직은 부족하고 어설퍼 보이는 마당이지만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발로 꾹꾹 밟아주면서 물을 준다.
"언제 자랄 거니? 사과는 언제? 괜히 성급한 질문을 해 본다.
해마다 봄이 되면 사과나무에게로 가 말을 걸어본다.
엄마가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일 때 아무 말 없이 주는 것보다는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말을 걸어주고 들려주면 정서적으로 더욱더 안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듯이 식물도 사람과 똑같이 말을 걸어 주면 더 잘 자란다고 한다.
"잘 자라고 있는 거니? 벌들이 놀러 와 친구 하자고 해? 올해는 꽃을 피우려나?"
이런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묵묵부답이고 나의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뒷집 사과나무는 해마다 꽃도 한가득 풍성하게 잘 피고 사과도 주렁주렁 열리는데 우리 집은 해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정말 부럽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이 되면 영락없이 사과나무에 파아란 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올해는? 하고 잔뜩 기대를 해 보지만 나의 바람은 항상 혹시 나가 역시 나로 끝나 버린다.
매정한 나무는 감질나게 봄에 잎만 살짝 피우다가 야속하게도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어 버린다.
"성격 정말 까칠한 거 맞지?"
몇 년째 꽃 피우는 방법을 몰라서 인지 아니면 알지만 "아직은" 하면서 밀당을 하는 것인지
조용하기만 한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엄마가 어릴 때 "물건을 모르면 값을 많이 주어야 한다"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역시 그래야 했나 보다.
그 집은 125불을 주었다 하고 우리는 25불에 샀으니
몇 배가 차이 나는 거야?
언감생심(焉敢生心) 욕심이 좀 과했나?
희망과 실망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기대조차 사라져 갈 무렵
여느 때처럼 나무에게 다가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불긋불긋한 뭔가가 보인다.
꽃망울이다!
유레카!!!
나무를 심은지 10년 만이다.
드디어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다.
얼마나 기다려 오던 순간인가?
십 년을 키웠더니 마침내 이쁜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그 오랜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티고 서서 저는 또 얼마나 초조했을까?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런 것인가?
묵묵히 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느라 변함없이 애를 써온 사과나무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초록 잎새 사이로 붉은색 어린 꽃망울이 살짝살짝 보인다.
이뽀 이뽀!
수줍은 소녀처럼 볼이 발그스름하던 꽃봉오리는 만개(滿開)하면서 하얀색을 뽐내더니 점점 성숙하고 우아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어렵게 꽃을 피웠으니 곧 그 결실인 사과도 열리겠지?
아직은 듬성듬성 몇 군데뿐이지만
그래도 이뤄냈으니 장하다
올해는 요만큼이지만 이제는 스스로 꽃 피우는 법을 알아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이 피워낼 것이다.
그걸로 충분히 잘했다.
추운 겨울이 지루한 탓인지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 되면 그냥 뭔가 좋은 느낌이 든다.
사과나무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이유도 꽃처럼 뭔가 좋은 일이 활짝 피어날 것 같은 희망적인 느낌이 들어서 인데
올해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과나무에 내가 바라던 꽃도 피었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감개무량(感慨無量) 행복하다.
꽃이 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서 채워 주겠지?
이제는 사과가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과를 수확하는 기분은 또 어떨까?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