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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Jun 22. 2023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딛다

미지의 세계로의 새로운 출발

북극의  찬 바람이 매서운 이른 봄  어느 날  

눈물로 가득 찬 가족의 배웅을 뒤로하고 똘똘 뭉친 세명의 가족 동아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하늘 길을 열고 날아와 캐나다라는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저 살겠다 부모 가슴에 대못 박고 떠나는 딸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품에 안고 소리 없이 흐느끼기만 하던 엄마의 처연한 슬픔

나이 든 고지식한 꼰대가 남자의 가오가 무너질까 그것 조차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붉어진 눈시울

이보다 더 큰 불효가 또 있을까? 

이제는 고국이 될 그곳에 두고 온 기억들 까지

아닌 척 애써 숨겼던 눈물은 하늘 위에서 소낙비 퍼붓듯 쏟아낸다.


어스름한 저녁 도착한 공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얼굴들만이 우리를 반긴다.

캐나다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으니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는 건가? 

방문자와는 별도의 다른 방에 가둬놓고 알아듣기도 힘든 말로 심문하듯 질문이 쏟아진다.

겨우 대답하며 진행되던 한참 동안의 지루한 수속 절차를 모두 마치고 나니 내 몸에 있는 에너지의 배터리가 다 소진된 느낌이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니 내면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멀미가 올라오는 듯하다.


어떻게 가방을 찾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짐을 챙기고 나는 진이 빠져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넓은 땅덩어리를 뽐내는 캐나다에 지인도 아니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미리 우리가 머물 곳을 예약해 두었던 홈 스테이 주인 부부이다.

그들 또한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믿을 사람은 그들뿐이니

그 집에 머무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짐과 함께 지쳐버린 몸을 차에 구겨 싣고 

이것저것 묻는 주인 부부의 환영인사에 영혼 없는 대답을 한다.


우리의 현실만큼이나 차 안이 답답해서였을까?

차창 밖의 세상이 궁금하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오랜 시간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꾸며 놓은 세상은 어떨지? 

이제는 우리도 일원이 되어 합류해서 살아가야 하는 그곳의 풍경은 어떨까? 바라보지만 아직은 비밀이라며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지 어느새 저물어 컴컴해져 버린 바깥 세계는 간간히 불빛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도착한 여기는 어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집의 형태만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한국에서 보던 집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집이다.

아파트가 아니고 단독 주택(single home)이었는데 듣기도 생소한 이름의 워카웃(walk out basement)으로 되어 있다.

워카웃이 뭔가요?

주인아저씨의 설명으로 알게 된 것인데 안채와는 독립적으로 자체 출입구가 있는 지하실을 말한다고 한다.

앞에서 보면 2층이고 뒤에서 보면 지하실이 하나의 층으로 되어 있어 3층으로 보이는 특이한 형태로 

별도의 공간처럼 문이 따로 있어 주인집을 통하지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홈스테이 하기 좋은 집 구조인 것 같다.

 

대충 방에 짐을 내려놓고 나니 늦은 시간이라 우리가 준비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경험으로 터득한 노하우를 발휘하는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차려진 캐나다에서의 첫 끼

염치없이 이 늦은 시간에 밥을 얻어먹다니 민폐가 따로 없다.

그래도 먹어야지.

시차 적응도 안되고 밥맛이 있을 리가 없다.

성의를 생각해서 맛있는 척 먹어야 하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먹는 둥 마는 둥 

머리는 멍하고 몸만 늘어진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의 방으로 다시 돌아와서 소파에 기대앉아 널브러져 있는 짐 보따리를 보고 있자니

꽃피는 봄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뒷마당에는 산더미처럼 눈이 쌓여있고 아직은 차디 찬 칼바람이 뼛속까지 뚫고 들어와 가지나 심란한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곳에서 얼마 동안 머물게 될지는 모르지만 당장 쓸 물건들만이라도 간단하게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 부친 짐들이 도착하기 전에 대충 필요한 것들만 챙겼는데도 멋없는 것은 둘째치고 고정도 잘 안 되어 지맘대로 움직여 대는 이민가방으로 한 가득인 짐을 조금씩 풀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나의 선택은 과연 옳았나?

이 길로 찾아온 것이 맞기는 한 걸까?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고 정해진 것도 하나 없는 이곳에서 당분간은 머물러야 할 것을 생각하니 이 밤이 너무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인들 아니겠냐만은

경제적인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무엇하나 즉흥적으로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일은 없다.


유학 비용을 대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 홀로 타국에 보내놓고 "너 스스로 버텨내라" 할 자신도 없고

가족이라고 해 봐야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뿐인데 기러기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라 아직은 어린 탓에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던 아이는 정작 자신의 교육을 위해서 이 상황을 원한 적 없지만 내가 남편을 설득해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살면서 아이의 유학까지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득이 되는 쪽으로 결정한 이민이고 오로지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맹모가 자식의 교육 환경을 위해 삼천지교를 택한 좋은 의도를 받아들여 캐나다까지 온 것은 박수를 쳐 줄 만큼 좋았으나 남편이 가자고 해서 온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완고한 의지와 추진력으로 가족을 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티를 낼 수도 없는 내게는 그만큼 이곳에서 해내야 할 엄청난 양의 숙제가 가볍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 나가야 하나?

사생대회도 아닌데 캐나다의 광활한 대지만큼이나 넓디넓은 하얀색 도화지가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내게 주어졌다.

어디서부터 그려나가야 할까?

살짝 스케치부터 먼저 하고 하나씩 색칠해 가면서 채워 나가야 하는 삶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밤

복잡한 마음이 절로 묵언 수행을 하게 한다.


이 밤 지나고 나면 어느 곳으로 발을 떼어야 할까?

혼란으로 교란당해 편안할 리 없는 잠자리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새로운 시작이 주는 설렘은 없고 두려움만 앞선다.


당장은 살 집도 구해야 하고 아이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이것저것 등록하고 신청해야 할 것들도 있으니까 할 일이 많다.


내 앞에 펼쳐질 보이지 않는 미래가 막연해서 여전히 불안하긴 하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우선 해야 하는 일부터 차곡차곡해 나가다 보면 지금의 불편함이 언젠가 평온한 익숙함으로 바뀔 때까지 의리 있는 시간이 잘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고민은 조금만 하기로 한다.

배짱 넘치게 망설이지 않고 뒤도 안 보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분명한 나의 용기 있는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캐나다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무식해서 용감하기만 했던 하룻강아지들이 겁 없이 아슬아슬한 모험을 자처하며 이제 막 서툰 걸음마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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