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회상
청명하고 맑은 하늘에 예고도 없이 어둠이 쫘악 깔리기 시작한다.
빛이 차단되는 짧은 순간
연극을 보다 보면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해서 전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무대 전환의 효과를 위한 시간이 있다.
그것은 암전이라 부르고 서서히 불 꺼짐이라고 해석한다.
이때 스텝(staff) 들은 불이 켜지기 전에 무대 장치와 장비들을 바꾸느라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일 것이고
연인들은 선물처럼 주어진 키스 타임(kiss time)을 절대 놓칠 리가 없다.
어떤 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옅은 공포에 심호흡을 하고
또 누군가는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도 있는 잠깐의 간극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도 하나의 커다란 연극 무대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조연 배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모두 각각의 시나리오(scenario)가 된다.
지금 바깥 풍경이 보여주는 무대는 시퀀스(sequence) 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배경 중에서
비 오기 전에서 비가 개인 오후의 샷(shot)으로 넘어가는 장면 변화를 위한 암전의 순간이다.
주변이 어둑 컴컴 해 지더니 후드득후드득 빗줄기가 사선을 그리면서 창문을 두드린다.
게으름 피우며 늘어져 있던 마당의 나무들도 샤워하 듯 간지러워 흐느적거리면서 이파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낸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던 뭉게구름은 수증기를 잔뜩 머금고 만삭이 되어가다가
마침내 산고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시꺼먼 먹구름이 된 채
우르르 쾅쾅 소리까지 질러대며 몸을 풀듯 온 힘을 다해 굵은 장대비를 쏟아낸다.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표현해 내려는 지 멀리서 번뜩이는 불빛 번개의 날카로운 지그재그 형상과 가까이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손가락 마디 만한 크기의 우박까지 합세해 찢어질 듯 지붕을 내리치는 소리가 두 귀를 자극하며 공포감을 더한다.
가끔씩 골프공이나 테니스 공만큼 커다란 우박이 지상을 방문하면 어떤 심술들을 부려대는지 잘 알고 있기에 모두가 무사하고 잠잠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려 본다.
창밖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깜짝 쑈를 벌이고 있는 동안 책과 함께 평온하던 집안에서는
조금 전 틀어놓았던 7080 음악들이 나의 기분을 아는지 분위기에 맞춰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그 옛날 좋아했던 내 나이 또래의 가수들이 소리 높여 부르고 있는 노래가 과거의 심연 속으로 이끌어
그 시절 감성에 젖어들게 한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냥 좋았던 시절
이렇게 소낙비가 오던 날에는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다 맞고 강의실을 찾아 뛰어다니며 초라해진 생쥐의 모습이어도 괜찮았다.
싱그러운 젊음이 좋았고 함께 해 줄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학생회관에 둘러앉아 자판기 커피에 과자 하나 풀어놓고 비가 그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았다.
학교 밖으로 나가 지금은 그 이름을 보기도 드문 경양식집이라는 곳에 둘러앉아 2인 1 커피를 시켜놓고
디제이(DJ)가 있는 박스 안에 신청곡을 넣어 분위기 있는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다음 수업시간이 시작된 것도 잊은 채 함께 시간들을 보낸다.
담배도 피울 줄 모르면서 레스토랑 로고가 찍힌 성냥갑 모으기가 취미라 모아 놓았던 성냥갑들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도대체 왜 모은 거야?
비가 오면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어두워서 옆사람 얼굴도 희미하게 보이던 작은 목로주점의 고즈넉한 예스러움이 아련하다.
멋스러운 벽지 대신 사방팔방의 벽이 까만색 글씨로 인쇄된 종이신문으로 무심한 듯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도배가 되어 있고
전깃불대신 밝혀 놓은 하얀색 초는 테이블 위로 흘러내려 형체가 없어진 채 여기저기 촛농의 흔적만 남긴다.
파전에 막걸리나 동동주 하나 시켜 놓고 표주박으로 만든 잔으로 항아리에 든 술을 휘휘 저으면서 세상의 모든 고민은 지들만 지고 있는 듯 인생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를 말하면서 들이키고
돈이 없어도 배포 크게 학생증을 신용 카드인 양 맡겨 놓고 외상까지 하면서 마셔댄다.
주점의 주인들은 학생증이 뭐라고 그걸 담보로 흔쾌히 인심 좋은 술과 안주를 내주고
부모님이 뼈 빠지게 일해서 매달 부쳐주는 생활비를 믿었던 걸까?
하숙비에 매 끼니 밥값 대기도 버거울 만큼 넉넉지 않은 돈이었을 텐데
뒷일은 생각도 않고 외상을 그어대던 그 장본인들은 과연 돈을 갚기는 한 것인지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당연한 것처럼 흘러가던 시간들
군대를 가는 친구라도 있으면 눈물 흘리는 그 친구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둘러앉아 부어라 마셔라
이미 다녀온 친구들이 복학생이 되어서 돌아오면 환영한다고 또 퍼붓고
애인과 헤어졌다고, 시험이 끝났다고,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사연도 참 많다.
어떻게든 이유를 대고 마셔대는 술 술 술
옆에 앉아 몇 안 되는 안주발만 세운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의 소소한 추억거리 또한 소환해 본다.
여학생이면서 유난히 남학생들과 주로 어울려 다니는 여자 사람 친구들이 있다.
나이 든 남자 선배들을 오빠 대신 형이라 부르고
우리들처럼 다방에 앉아 수다 떠는 대신 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지내는 것이 더 익숙해 보이는 조금 특별했던 친구들
가끔씩 괴이한 행동을 하는 이상한 남학생들도 있다.
도인처럼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개량 한복에 하얀 고무신 신고 학교를 자기 집인 양 휘젓고 다니는 아이
술 마시고 취해 젖은 잔디밭에 누워 소리 질러 대며 천지가 떠나가라 노래 부르는 돌아이들까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 시절 만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분명 청춘이었고 지나온 젊은 시절의 기억의 실타래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아쉽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마음속에 깊게 뿌리 박혀 있어
이렇듯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떠올라 레트로(retro) 감정에 젖어들게 한다.
다들 뭐 하고 있을지
그들의 지금은 나와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진다.
그때는 뭐가 그리 심각했고 뭐가 그리 아팠는지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그토록 공감이 가는 이유를
알 것도 같고
정말로 피 끓는 청춘이었기 때문에 그리도 아팠던 것일까?
연습해 본 적이 없으니
처음으로 사는 삶인 것은 너나 나나 마찬 가지인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찌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무거운 또 다른 걱정거리들을 등에 지고 늪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왜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다고 했었는지
모든 일에는 삼세판이라는 좋은 규칙이 있어서 다시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주어져야 정상인 건데
태어나면서부터 당당하게 편도권(one- way ticket)만 받아 온 삶의 여정에는 백(back)은 없고 고(go)만 존재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영화에서 보면 시간 여행도 자주 하던데…
다시 돌아가서 잘못된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뀐다?
어차피 까칠한 인생이 습성상 칼같이 냉정할 수밖에 없다면 다시 한번의 선택지를 주는 호의 따위를 베풀 리도 없고 우리야 상처 받든 말든 단 한 번의 찬스만 주고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면 그만이니까
망설이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대충 살지도 말고, 될 수 있으면 갈 때 후회하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열심히 잘 살아내야만 할 것 같다.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쌓아온 경험과 연륜이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날도 있겠지.
내 삶의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갑자기 내린 소낙비는 찰나는 강력해도 역시 뒷심은 없다.
그 화끈함이 좋다.
잠시 생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던 사이 무섭게 쏟아붓던 소낙비도 그쳤다.
이제 암전의 순간은 지나고 비가 개인 오후로 장면이 바뀌어 버렸다.
한차례 시원하게 퍼붓던 빗줄기가 잦아들면서 숨어있던 해님은 눈치 보며 부끄러운 듯이 고개 내밀고
세차게 내리 친 비를 몸으로 맞아 낸 후유증인지 아니면 아직도 그 위력에 눌려 주눅 들어서인지 축 처져 있던 나무들이 바람에 탈춤 추듯 흔들 거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은 더욱더 파래지고 묵은 먼지가 씻겨져 내려가 듯 온천지가 깨끗해진 한낮의 정경이다.
해는 나와 다시 세상을 비추려는데 천둥이란 심술꾸러기 녀석이 잠깐 누려 본 자신의 존재 위엄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운 냥
아직은 살아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아까 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면서 마른하늘에서 발악을 해 댄다.
천지를 흠뻑 적셔내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소낙비님 덕분에 학창 시절 감성에 살짝 젖어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