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한 번뿐인 삶이라 이미 지나온 것들은 좋든 싫든 기억 속에 남은 채로 우리가 좀 더 성숙해지도록 작은 힘이라도 실어 주겠지만 아직 와본 적이 없는 것들은 그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보일까 싶어 까치발을 한껏 높이 세워보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고, 형체가 없어 알 수도 없는 존재가 과연 짜잔~ 하고 그 존재를 드러낼지 아니면 영원히 숨어 있을지 조차 알 수가 없는 폭풍전야의 고요가 두려움과 긴장감을 조성하며 삶의 한몫으로 언제나 주위를 맴돌며 따라다닌다.
그래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늘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도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차라리 빵~하고 터지고 나면 그 순간은 놀라고 당황스럽긴 하겠지만 터질 것이 터져버렸으니 협박이라도 하듯 조여오던 공포는 모두 사라진다.
그러면 더 이상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 처럼 터지고 난 후의 세상이 오히려 더 평온할 수가 있는데도 우리는 분, 초를 다투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양팔에 감싸 안고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나의 세상이 무너져 버릴까 조심스럽게 꼭 쥐고는 내려놓을 생각을 못하고 떨고만 있다.
이렇듯 터질까 봐 걱정하는 경우와는 달리 이미 오래전에 터졌어야 하는데 불량품인 듯 터지지는커녕 쉼 없이 타들어가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때가 되면 터져야 하는데 뜸만 들이고 있으면 이 또한 마음 언저리가 항상 불편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 지난하게 길어지다 보면 조마조마 무섭고 두려워하던 마음을 점점 잊게 되고 그 익숙함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안전 염려증에서 안전 불감증(安全不感症)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극심한 긴장감과 함께 뾰족하게 안테나를 곤두 세우던 모든 촉각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감을 잃어 간다.
무뎌져 버린 감각은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아프지도 않다.
절대 터지지 않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건 아니지만 통증이 없으니 자체 면역이라도 생긴 줄 알고 조심하는 대신 무엇이든 간과하게 된다.
언젠가는 좀 더 멋있게 빵~~ 하고 터뜨릴 퍼포먼스를 위해 말을 아끼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위험천만을 이미 감각이 둔해진 우리가 알 턱이 없다.
한차례 폭발한 이후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난 후의 고단함으로 잠시 쉬고 있는 휴화산(休火山, dormant volcano)이라 할지라도 쉬면서 비축해 놓은 힘으로 언제 또다시 솟아오를지 알 수는 없지만 극한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바로 그 아래에서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만들며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비록 예상보다 꽤 오래 아무 일 없이 머물러 준다 해도 살아만 있다면 판사가 사형 선고를 내린 적 없으니 영원히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가 사는 동안에는 절대로 아닐 거라 믿고 싶어지는 안일(安逸)한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는 수천, 수만 번의 다짐을 해 오고는 있지만 함께하자고 따라붙는 일련(一連)의 이유들을 과감히 쳐낼 용기가 없어서, 주어진 상황이 악마처럼 속삭이며 자꾸 말려서...
이렇게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계속 미루기만 했다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용암도 밖으로 배출해서 시원하게 속을 다 비워야만 다시 용암이 차 오를 때까지 긴 시간 동안 터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마음속 폭탄은 터뜨려 비워야만 굽이 굽이 굴곡진 삶이라도 버티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살다가 갑작스러운 이런저런 일들과 부딪히고 대항해 싸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웬만한 통증쯤은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마음속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였을 거라 생각했다.
더욱이 이제는 나이도 들만큼 들었으니 닳고 닳아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무뎌진 손가락처럼 참을성 또한 많아져서 더 잘 견디지 않을까 자만도 했다.
모두 오만이다.
길 가다가 예고 없이 등뒤에서 던진 돌에 맞으면 여전히 생채기가 나고,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해진다.
무심한 세월은 상처가 아무는데 더 오랜 시간을 달라 떼를 쓰고, 그러다 보면 가끔은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가 덧나 곪아 터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아프다.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게 될지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무거운 돌덩이가 내 몸을, 마음을 사정없이 짓누를 때는 더욱더 절실하게 궁금해진다.
우리를 자꾸 시험하려는 듯 펑펑 터뜨리는 삶의 폭탄에 맞지 않으려면 요리조리 지그재그를 그어가며 탄알을 피해 움직여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곳곳에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피해 다닌다고 표적(表迹)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넋 놓고 가만히 있다가 포탄에 맞아 장열 하게 쓰러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지붕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막막하긴 하겠지만 잠시 숨 고를 공간이라도 찾아서 그곳으로 방향을 틀어 봐야 할 것도 같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빌런(villain)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자신이 맡은 악역을 소화해 내느라 몹쓸 심술로 쥐락펴락 군림하려 들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끔은 바다가 오물을 잔뜩 뒤집어쓴 쓰나미를 불러 위협해 오기도 하지만
발을 살살 간질이는 잔잔한 파도로 바뀌어 온순해지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더러운 끝을 보여주
다가도 어느새 깨끗한 또 다른 시작의 얼굴을 내밀어 주기도 한다
.
또 시간을 재촉하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불이 붙은 채 계속 타들어 가고 있는 폭탄처럼 우리를 늘 불안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기쁨의 팡파르를 빵빠라 빠앙~ 울려주며 감동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나마 나름의 법칙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공평하게 분배해 주니 우리는 치사하더라도 폭탄 품은 삶의 변덕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구렁텅이의 절망적인 삶이 아니라 순조롭고 평탄하기만 한 그야말로 꿈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안온(安穩)한 삶을 원할 것이다.
과연 그런 삶이 있기나 한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그런 삶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축복일 것이다.
살다가 어느 날 마음속 폭탄이 초를 다투며 타들어 가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 위협을 가해 온다면 어떻게든 원인부터 찾아내 터지기 바로 직전에 후~ 불어 과감히 꺼버리거나 스스로 터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직접 빵! 터뜨려 버리는 대담한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바깥세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우중충한 심술 한가득 품은 바람을 입으로 훅훅 소리 내며 불어대는데, 구름 위 하늘 위는 미풍만 있는지 종이비행기 보다 더 조그만 비행기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지 약 올리듯 내 머리 위를 유유히 지나간다.
변덕스러운 우리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