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는 삶
만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가까이 있지만 손을 아무리 뻗어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나 끊임없이 쫒아는 가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파랑새처럼 그 실체가 허상인 존재...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100칸 자리 집의 1칸 만을 가진 자의 눈으로 보면 99칸 가진 자는 그들이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는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99칸을 가진 자는 그만큼을 가졌으니 만족하고 더 이상은 바라지 않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들도 나머지 한 칸을 가지고 있는 자를 눈여겨볼 것이다. 그 마저도 취하고 싶어서...
서로 다른 마음 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둘 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예전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일요일 딱 하루만 쉬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그때는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도 쉴 수 있는 하루가 너무나 소중했다.
토요일도 오전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출근하면 오후 4-5시는 돼야 일을 마치게 되고 그것마저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눈치 보느라 제시간에 사무실을 떠나는 경우는 드물다.
어차피 반만 쓰던 하루를 다 쓰던 결국엔 반토막만 허락되던 토요일도 내 시간은 아닌 게 된다.
툴툴거리는 했어도 그때는 당연한 듯 모든 걸 받아들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일주일에 5일만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쉰다.
선물처럼 하루가 공으로 생긴 셈이다.
처음엔 그 작은 변화가 꽤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시간 중에 하루가 더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여유도 생긴다.
주말이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동안 미루었던 여행도 자주 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2일이 휴일인 삶으로 익숙해진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만 쉬던 때를 차츰 잊어간다.
이젠 이틀도 부족하다.
4일만 일하고 3일을 쉬고 싶어 한다.
일하는 시간이 하루 줄고 대신에 쉬는 날이 하루 더 생겼는데도 만족은커녕 쉬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커다란 목소리로 불평을 한다.
만족에는 한계점이 없는 듯하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고 6일 내내 쉬라고 한들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하는 날은 없고 쉬는 날만 있게 되는 그런 세상은 지금보다 살만할까? 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늘 만족(滿足: Satisfection)을 얻기 위해 그것을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 흡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상태나 그 느낌.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정신없이 추격전을 벌이다 겨우 손에 닿았을 때 마음가짐에 따라 어떤 이는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일단 잡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에 지금껏 그걸 쫒느라 드린 공이 허무하다 오히려 자신을 탓할 수도 있다.
약간 빗나간 시선으로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모두 다 가진 것을 나만 못 가진 것처럼 느껴져 살짝 억울하기도 하고 남들은 다 행복해만 보이는데 나만 아닌 것 같아 공평하지 못한 세상을 욕하기도 한다.
비교하면서 바라보다 보면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저마다 나만이 갖고 있는 좋은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 보고 싶은 것만 보니 하찮을지라도 남들의 것은 잘 보이고 귀할지라도 나의 것은 보이지 않아서 일테다.
남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은 오롯이 나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인데도 맛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면서 좀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을 먹고 싶어 내 몫으로 접시에 예쁘게 담긴 떡에는 관심도 없다.
차근차근 가꾸어 오던 자신만의 소중한 삶을 비하하고 여기저기서 계속 밀려오는 외부의 조건들로 인해 스스로를 시험하면서 자꾸 나락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었을 때조차 잠시의 기쁨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만족을 위해 뭔가 해야 하는 끝없는 숙제를 안은채 늘 불안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계속 갈구하다 보니 이미 갖고 있는 것들에서는 시들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니 한도 끝도 없는 불만만 늘어간다.
먹을 것이 없어 삼시 세 끼를 해결해야 했던 생존의 시간에서 이제는 미식가라도 된 듯 맛있는 것을 따라 어디든 찾아다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큼 삶의 질이 나아졌음에도 여전히 행복해하지 않는 이유다.
만족하는 삶이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이 조금은 누추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화려한 별장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남루하다고 해도 생각하기에 따라 명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올해 나의 새해 다짐은 건강 그리고 만족하는 삶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