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간표

내게 맞는 대로 살면 된다

by 스몰토크

평일 낮에 하릴없이 혼자 다니는 것은 왠지 처량해 보일 듯싶다.

그럼에도 먹고살 일도 아닌데 혼자 청승 떨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꼴도 그다지 좋아 보일리는 없다.

그럴 바에는 정말 본의는 아니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는 게 속 편한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하루 종일 집에서 뭘 하냐고 묻겠지만, 누구의 강요도 없이 나 스스로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려면 내게 하루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벽에다 그려 붙여 놓았던 생활계획표가 생각이 난다.

종이에 컴퍼스를 이용해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시간별로 쪼개 선을 그은 다음 숙제, 점심, 자유시간등을 적어놓고, 이를 구별하기 위해 칸마다 색칠을 해 놓았었다.

정성스럽게 만들기는 했지만 숙제시간보다 자유시간에 더 진심이었고, 당연히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어린 마음이었으니 책임감과 죄책감 같은 건 없었을 테고, 그저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애써 지켜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매일 시간별로 나누어 나의 일을 스스로 정해놓는다.

먹고 사느라 바쁘게만 돌아가던 시간도 우리의 몸처럼 나이가 들면 둔해질 테니, 조금은 더디게 움직일 줄 알았건만, 다른 바쁨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잠시라도 멍 때리고 있다가 어영부영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짙은 어둠이 하품하듯 입을 크게 벌린 채 찬란하게 빛나던 해님을 한입에 집어삼켜버리면, 의미 없는 또 하루가 흔적 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 무의미한 시간들의 반복은 나를 조급하게 하고,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게 만든다.

거기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안경을 써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고, 몸을 숨긴 채 이제나 저제나 내가 풍덩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늪처럼 우울은 늘 주변을 맴돌며 상주한다.


자주 꿈틀거리며 엄습해 오는 불안이라는 이상한 감정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도망을 가거나, 맞서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부터 혼자 몸뚱이를 키우기 시작했는지 조차 모르니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야 하고, 맞서야 하는지도 알리가 없다.

하지만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걸작품인 우리 몸에, 예고 없이 닥치는 위기에 적극 대처하도록 옵션으로 추가해 놓은 자체 면역체계가 있듯이, 깊숙한 내면에서 잠만 자던 자기 방어기제 은근슬쩍 실눈이라도 떠 주는 때가 있다.


방학도, 휴가기간도 아닌, 매일매일이 또 다른 하루에 불과한 그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딱히 정해진 기한도 없고, 컴퍼스로 종이에 그려놓은 것도 아니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감처럼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야말로 착한(?) 나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의 하루의 시간표를 만들게 한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이면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이젠 그것이 일상이고 루틴이 되었다.


일상이란 말은 특별하거나 색다른 일이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들을 말하는 것이고, 루틴은 일상생활이나 특정한 활동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정해진 절차나 일련의 행동 패턴을 말한다.

그 말은 특별할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닌 지극히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이란 뜻이다.

사람마다 기준이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계획표를 짤 때, 기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과 금기사항을 넣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삼시세끼 굶기, 운동 절대 안 하기 등의 청개구리의 나라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

그런 차원으로 본다면 나쁜 계획은 없다.

대신에 시간이 없어하지 못했던 일을 틈틈이 해본다던가,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시간을 활용해서 배워본다던가, 전문가들이나 각 분야의 석학(碩學)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강의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전문 지식을 쌓아가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등의 주로 긍정적인 부분들의 자기 계발과도 관련이 있는 내용들로 알차게 채워 넣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악한 유혹이 따라다니면서 가끔씩 방해를 한다.

하루에 해야 할 몇 가지 일들 중에 한 개 정도는 빼먹어도 된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달콤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하루정도는 아무것도 안한채 그냥 보낸다고 해서 사실상 달라지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계획은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이든, 직장 상사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닦달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외로우니까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간마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계획들이 매사에 의욕이 없어 무기력하고, 나태해지려는 나를 채찍질해 주고, 그러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시간은커녕 자기반성을 통해 해이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주기도 하니까 그 맛을 알아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해 보고 싶었는데 미뤄 왔던 일들을 지금의 시점에서 하나씩 이루어 갈 때는 뿌듯함과 대견함도 느낀다.

내게 있어 하루의 시간표는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는 자기만족이고, 오늘도 강한 의지로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냈다는 자기 위안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실천이 나의 자존감과도 연결된다면 안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엔 꼭 좋은 것만 있는 것도, 또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좋고 나쁨은 바늘에 실 가듯이 항상 동행(同行)을 하니까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단점도 있을 것이다.

계획을 잘 세우고, 원하던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자기 만족도 있겠지만 때로는 이 과정에서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스스로의 감옥과도 같은 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

안 하면 왠지 숙제를 빼먹은 거 같은 불편함도 있고,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지켜져야만 그나마 하루가 편안해지는 이상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너도 나도 바쁘다는 이야기뿐이다.

아직 일하는 친구도 있고, 이미 아이가 결혼해 멀리 살고 있고, 사느라 바쁘다 보니 얼굴 보기도 힘든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자식들이 독립을 하지 않아 함께 살면서 가족들 치다꺼리하느라 바쁜 친구도 있다.

모두 자신만의 오롯한 시간에 대한 결핍으로 지친 듯 말을 한다.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선 긋듯 분명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대단하진 않아도 최소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것이고, 몸은 힘들어도 가족들이 함께 부대끼며 때로는 웃고, 울면서 미운 정, 고운 정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어찌 되었건 할 일이 있는 그들을 부러워할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고개 드는 불안과 외로움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한없이 늘어지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하루를 아무렇게 나가 아닌, 뭔가라도 하면서 홀로 고군분투해야만 견딜 수 있는 나 자신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런 면으로 볼 때 나만의 하루 잘 보내기는 어쩌면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내겐 소중히 지켜내야 할 임무 같은 것이라,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하루의 계획 실천이,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일종의 강박이고, 참 어렵게 산다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농담처럼 하고는 있지만 말에 가시를 심어 콕콕 찌르는 느낌이라 아프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하루를 채우다 보면 우울에 잠식되어 버릴까 두려워 살기 위해 터득한 나만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인 것을...

아무리 내가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밀며 목청껏 외친다 해도, 어차피 내가 아닌 그들은 절대 알 수가 없으니 별 뜻 없이 하는 말 일테다.

입장을 달리해서 자기 객관화를 해 보면, 나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긴 하다.


세상 모든 일이 내겐 대단해도, 다른 이는 하찮을 수도 있고, 나는 좋은 것이 다른 이에게는 나쁠 수도 있다.

그러니 같은 조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생각과 상황, 그리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는 거니까, 다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대로 살아가면 될 듯싶다.

좋은 것도 좋은 것이고 나쁜 것도 누군가에겐 좋을 수도 있으니 그마저도 좋은 것이다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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