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Korean Festival

by 스몰토크

캐나다 시민의 날(Civic Day)을 포함해서 3일 연휴가 시작되었다.

연휴라고 해 봤자 아이들이 있어 야외로 소풍을 나갈 것도 아니고, 그저 또 다른 하루일 뿐 특별할 것은 없다.

먹고살겠다고 슈퍼나 가서 기웃거리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다 보면 마땅히 살 것도 없어 그냥 돌아오곤 한다.


매일 먹는 밥처럼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한 듯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연휴라서가 아니라 그냥 더운 여름이 지루해서 밖으로 한번 나가본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조용하고, 느긋하게 돌아가는 듯한데 역시 바깥세상은 다르다.

시끄럽고 분주하다.


막상 나오긴 했지만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괜히 나왔나 싶긴 하다.

사람들 구경하면서 군중 속에 한 무리가 되어 바쁜 척 걸어본다.

어차피 특별히 계획에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이유가 뭐든 핑계김에 외식이나 할 요량으로 식당을 찾아본다.

오늘은 감자탕이다.


우리가 찾은 곳은 감자탕으로 유명한 집이라 웨이팅이 길어 줄을 서야만 한다.

일단 리스팅에 이름을 적어놓고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우리를 찾는 전화가 오고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다.

이곳은 한국식당이 분명하거늘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말고 한국인은 없다.


더구나 우리 바로 옆자리엔 젊은 백인 남성 둘이 앉아있다.

자주 오는지 익숙한 듯 앞치마를 하고는 한 명은 국자로 감자탕을 휘휘 젓고, 다른 이는 보글보글 거리는 전골냄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빨리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인 슈퍼에 가면 동남아인들이 감자탕을 위해 돼지 목뼈를 사고, 어디서 들었는지 들깻가루까지 찾는 걸 본 적이 있다.

한국인도 들깻가루에 대해선 호불호가 있는데, 백인이 감자탕을?

의심하면서 자꾸 곁눈질을 하게 된다.


드디어 먹을 준비가 완료되었나 보다.

전골 안에 들어있는 당면을 앞접시에 담아 들고는 후루룩 후루룩~

마치 한국식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던 한국인의 모습인 것처럼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장정인 두 사람이 먹는 것에만 충실하려는 듯 말도 없이 맛있게 잘도 먹는다.


다 먹고 일어난 자리를 보니 반찬그릇은 물론이고 냄비에 국물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와!~ 어떻게 감자탕을 저렇게 깨끗하게 먹을 수가 있지?

사실은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도 감자탕을 선호하지는 않는데 그들은 백인이면서도 한국인의 식성을 지닌 듯싶다.

하긴 그 옛날에도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인데 먹어보질 못했으니 김치, 참기름등이 냄새가 난다는 막말들을 했을 것이다.

일단 먹어 보면 저들처럼 한국 음식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아무튼 신기할 뿐이다.


식당을 나와 조금 걷다 보니 동네가 시끌벅쩍하다.

가까이 가보니 해마다 열리는 한인의 날 행사 중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 산지 20년이 넘도록 신문이나 인터넷 같은 곳에 아무리 광고를 해도 행사에 일부러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중국인의 날 사자탈을 쓰고 그 몸뚱이 안에서 사람이 발을 들었다 났다 사자춤을 추듯, 한인의 날에는 사물(四物) 놀이가 빠지지 않는다.

꽹과리, 징, 장구, 북 4가지 악기를 가지고 상쇠를 중심으로 신나게 연주를 하다 보면 그 흥에 매료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할 것이다.

사진을 통해서 보는 늘 똑같은 공연과 행사가 식상하다고 느껴졌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 참여, 그런 쪽으로는 아예 관심이 없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올해는 왠지 한번 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 인파를 뚫어본다.

사람들의 행렬에 외국인들이 보인다.

한인의 날 행사에 이렇게나 많은 외국인이 참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행사장엔 역시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대목(大木)인 듯 음식점마다 줄이 장난이 아니다.

서양인들의 소울 푸드(Soul Food) 중에 하나인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 파는 곳은 오히려 파리 날리고 있고, 막창이나 김치전, 떡볶이처럼 한국인이라야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파는 곳에 유난히 줄이 길다.

감자탕집에서도 보았지만 언제부터 한국 음식(K-Food)이 외국인들에게 이렇게나 인기가 많아진 걸까?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군중 속을 헤치고 겨우 노천극장에 닿았지만 자리가 없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만큼 서 있는 자와 앉은 자들이 섞인 채 모두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운 좋게 우리 앞자리에 있던 가족이 떠나면서 자리가 생겨 얼른 앉아본다.

위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다 보니 잠깐 대학 축제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 유명 가수들이 춤대신 마이크를 두 손에 꼭 쥐고는 쩌렁쩌렁~ 학교 전체가 울리도록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우리는 숨소리도 방해가 될까 모두 숨죽인 채 앉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만 있었다.

무척이나 정적(靜的)인 느낌이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완전히 동적(動的)이다.

기계음 같은 소리들이 현란한 화면 변화에 맞춰 들려온다.

앉아 있는 사람들도 몸을 들썩들썩.

무대 밑에는 같이 즐기려는 사람들이 뭔가를 기대하며 무대를 에둘러 감싸고 서 있다.


드디어 남녀 사회자가 나와 소개를 하니 댄스 크루(Crew) 들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수상자들이라는 거 보니 아마도 댄스 콘테스트가 미리 있었나 보다.

마치 걸그룹이나 혼성그룹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낯선 얼굴들이고 노래는 전혀 하지 않고 춤만 열심히 춘다.

아마도 요즘엔 노래 대신 춤이 대세인가 보다.

더 이상한 것은 춤사위에 몰입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댄서들 중에 한국인은 보이지 않는다.

배경음악은 처음 들어보지만 모두 한국의 보컬 그룹들이 부르는 노래가 분명한데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 콘테스트에 한국인이 없다.


조금 있으려니 스텝들에 의해 디제잉 박스가 진열되고 곧이어 머리가 긴 남자 디제이가 등장한다.

우리 때의 디제이들처럼 도끼 빗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장발이 아니라 여자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남자 사람이다.

디제이 부스(DJ Booth) 안에서 느끼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듯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마이크를 쥐고 관중들을 향해 "Put your hands up, Raise your hand" 선동하듯 소리를 질러대고 가끔씩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무대를 빙~ 둘러 서있던 젊은이들이 이 분위기에 취해 손을 높이 올리고 노래도 같이 부르면서 열광한다.

저들이 왜 자리에 앉지 않고 거기에 서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치 TV에서만 보던 젊은이들의 클럽분위기 딱 그 광경이다.


젊은이들의 축제에 나이 든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과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신세계에 와 있는 듯한 이상한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채로 서서히 분위기에 젖어든다.


우리 앞에 앉아있는 외국아이들이 비록 돼지 멱따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한국말의 노래 가사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따라 부르고, 무대 밑에 있는 이들은 한국 가수그룹들의 안무를 각 노래마다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모든 게 다 경이(驚異) 롭기만 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존재조차도 의심될 정도로 영향력이 없는 나라였다.

현대 자동차가 버젓이 다니는데도 한국차 인지 몰랐다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외국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나 노래를, 음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인 보다도 더 한국인처럼...

처음 우리가 캐나다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변해 버린 사람들의 반응이 감탄(感歎)스럽기까지 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Rome wasn't built in a day)라는 속담이 있다.

이 세상에 동화 속 마법처럼 하루아침에 짠~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이 이렇게 되기까지 한류, BTS, K-POP, 기생충, 오징어게임등으로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가면서 기다려 온 결과물일 것이다.

이제 한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 엄청난 Korea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K-pop은 나도 변화시킨다.

평소에 7080의 조용한 발라드 음악만 좋아하던 내가 그날 노천극장에서 들은 G-dragon의 삐딱하게(Crooked)의 리듬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일할 때나 걸을 때도 노래 가사를 몰라 마치 외계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흥얼거리는 낯선 내 모습과 마주한다.

전자음이 주문을 걸듯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상 야릇한 마력을 지녔나 보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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