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작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았다.
50이 60으로 바뀌는 순간 나이 내 괴롭힘으로 가혹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듯 삶이 나락으로 치닫고,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절망으로 숨이 가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불안과 우울이 나를 가두고,
벼랑 끝에 한 발로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은 절체절명의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무력감이
날마다 탑(塔)을 쌓기만 하던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한줄기 빛처럼 만나게 된 것이 브런치 스토리이다.
그곳에 나와 같은,
또 나와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유영하듯 이야기 속을 헤매다 보면 신기하게도 우울이 잠시 주춤거린다.
철없던 시절 주고받던 연애편지처럼,
오래 간직하고픈 사연들이 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나무 서랍 대신
브런치가 내어 준 글 저장 공간,
작가의 서랍 안에
나의 시끄러운 감정들을 슬그머니 담아본다.
종이와 대화를 나누듯 끄적거리던 습관처럼,
아무런 색도 없이 대충 스케치만 해 놓은 글들을
혹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
무거운 자물쇠를 매달아 서랍 안에 꼭꼭 숨겨놓는다.
나만 볼 수 있다는 안도로
브런치 속 비밀의 방에 몰래 들어가 생각나면 쓰고, 다시 들어가 또 썼다.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는 순간엔 주변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몰두해 있는 나를 보곤 한다.
하나를 가지면 열을 갖고 싶은가 보다.
무작정 쓰기만 해도 좋았는데 나도 다른 이들처럼 글이 쓰고 싶어진다.
적어도 브런치 안에서는 나도 작가이고 싶다.
책을 좋아하지만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작가들은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글들을 자유자재로 써낼 수 있을까
부러워만 했던 내게 어느 날
브런치가 당신은 작가다라고 속삭이듯 말해준다.
이제껏 하찮다고만 생각해 감추기만 급급했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먹먹하고 울컥했다.
어두운 서랍 속에만 갇혀있던 빛바랜 글들이
마침내 출소를 하듯 하나씩 줄을 선다.
그때부터 무심코 지나치던 풀 한 포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보여주는
장면을 바라보는
이상한 버릇도 생겼다.
늘 주위를 맴돌던 불안과 우울은
글이 되어 나를 위로한다.
보잘것없는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힘도 생긴다.
게으름 피우면
글 쓰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
브런치가 애정 어린 채찍질도 해준다.
스스로의 마감시간을 만들어
발행하느라 마음속 불안과 우울이
설 자리를 잃고
나는 브런치와 함께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브런치 작가 아니?"
"그게 뭔데"
말해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내 주변에 브런치를 아는 사람이 없다.
작가라면서 이름값을 해 낼 수 있는 책 하나도 없는 나는
그 호칭의 무게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나는 작가다라는 말을 그 누구에게 조차 하지 못했다.
책을 출간하던가, 공모전에 참가하던가
그 어떤 경험도 없는 나는
브런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분명 작가이긴 하지만 불완전하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차곡차곡 채워 두었던 나만의 서툴고 때 묻은 글들을
서랍 밖으로 꺼내,
울퉁불퉁한 원석을 갈고닦아 반짝이는 보석을 만들듯이
정성껏 다듬고 책으로 만들어 자식 같은 아이들
세상밖으로 소풍도 보내고 싶고,
주부교실 같은 곳에 가서
나이 때문에,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쓰니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용기도 주고 싶다.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완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입으로 회자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진정한 작가로 성장해 가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가다가 흔들리거나
막막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잠시 멈췄다가 브런치가 이끄는 길을 다시 따라 걷다보면
언젠가는 닿을락 말락 하던 꿈의 조각들에
내 손끝이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