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외로움
엄마는 유난히 혼자를 싫어한다.
요즘은 오히려 대세가 될 정도로 많이들 하고 있는 혼밥도 엄마 사전에는 아예 없다.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는 나가서 먹고 싶으면 혼자라도 갔다 오라고 해도 절대 안 가는 엄마가 이해 안 된다고 말한다.
혼자가 싫어서 같이 가자는 것인데 그냥 모르는 척 함께 가주면 될 것을...
그거 하나 못 들어주고 엄마에게 한이 되게 한다.
누구라도 함께 가고 싶은데 자기 맘처럼 따라줄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엄마는 언제나 딜을 한다.
"내가 밥 살 테니 우리 만나"
엄마가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꼭 하는 말이다.
심지어 자식들에게마저 부자도 아니면서 자신이 늘 물주가 되길 자처한다.
밥이야 내가 한번 사면 상대방이 한번 사고, 모든 관계가 오고 가고, 주고받는 것이 암묵적인 룰인데 엄마는 다르다.
어릴 때는 왜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궁금했지만 나도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엄마의 이상(?) 반응이 조금은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밥 한 끼지만 본인이 뭔가를 해 주면 상대도 그에 합당한 대가로 자신과의 시간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마음 저 편에 똬리 틀고 앉아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아서 왠지 더 짠해진다.
엄마는 6남매 중에 다섯째로 남동생 하나 빼면 막내가 된다.
그 세대에 여자는 자라면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거나 동생을 보살피는 존재, 남자 형제들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당연한 희생 말고는 집에서의 효용가치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눈에 비친 남동생은 사랑과 이쁨을 충분히 받고, 부모님의 끝없는 지지로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어 부럽고, 자신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동생을 위해 무조건 접고 양보해야 하는 그 위치가 서러웠나 보다.
자신을 막내라고 말한다.
그 속도 모르고 철없는 우리가 "엄마 막내 아니야" 하면 "여자 중에서는 막내야" 멋쩍은 웃음을 웃어 보인다.
엄마 이전 세대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당연시되었을 것을 어릴 적 엄마 마음엔 그저 막내라서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는다 싶었나 보다.
억지 막내라도 되기로 정한 듯 늘 막내라고 우긴다.
사람이 불안함을 표출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상황으로 불안해질 때 과민해져 신경질을 부리거나,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가면을 쓴 사람처럼 내면의 불안을 숨기고 지극히 안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도 있다.
외로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잘해주기는커녕 도리어 괴롭히는 남자 어린아이처럼,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고자 엉뚱한 사고를 치거나, 일부러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해 편 가르기를 한다든가, 아니면 연약해 보이는 누군가를 콕 집어 왕따를 시킴으로써 그 힘과 권력에 굴복한 사람들만이라도 곁에 남도록 만들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움의 깊이가 클수록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말에도 극도의 신경을 쓴다.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면서 뜻하지 않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채 상처를 받기도 한다.
엄마가 혼자 밥 먹는 것도, 혼자인 것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값을 지불해야만 친구든, 지인이든 함께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오류(誤謬) 자체가 엄마의 외로움을 표출하는 방법이 아닐까도 싶다.
아무리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고 해도 본인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니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그리고 친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극도의 외로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그 외로움에 대한 결핍은 나이가 들고 그만큼 세상이치를 알게 된다 해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듯하다.
도리어 뚱뚱하게 더 살을 찌워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쇠하기 시작한 엄마의 기억회로가 몇 해 전부터 자꾸 오작동을 한다.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오늘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야?"
금방 말해주었는데도 잊고 다시 묻는 반복되는 질문에 가족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나무란다.
기억했다 잊었다를 자꾸 반복하는 엄마에게 "엄마 일부러 기억 안 나는 척하는 거지?" 하면 씩 웃기도 하고
"엄마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야?" 하고 물으면 "너희들 키울 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90 노인이지만 여성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주기적으로 파마를 하러 단골 미용실을 찾아가는 엄마가 차라리 다른 건 다 기억하고 엄마의 평생을 괴롭혀온 외로움이라는 몹쓸 기억만은 잊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만 그대로인 채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그 힘마저 빠져버린 엄마는 이제 본의 아닌 자발적 고립에 들어간 듯하다.
어떤 식의 값을 지불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던 밥도 이제는 마다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방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근육이 빠져버린 다리가 불편하다.
편하진 않지만 아직은 걸을 수 있음에도 일어나 걸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은 그래도 뜨개질을 할 수 있어 앉아서 수세미도 짜고, 목도리도 짜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한번 거기에 빠지면 밤을 새우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하는 통에 건강을 해칠까 아버지나 동생들의 걱정이 태산이지만 할 수 있는 게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 지도 모른다.
한동안 유일한 낙으로 삼고 참여하기도 했던 동네 놀이터에서의 할머니들 뜨개 수다 모임도 더 이상 엄마의 외로움을 치유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유난히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엄마가 가끔씩 반복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그들이 눈치라도 채면 가엾이 바라볼 시선과 수군거림이 두려워서 인지 더 이상은 모임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더 지독한 고독의 동굴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 듯하다.
일하느라 주말밖에 못 찾아가는 자식들만이 엄마를 침대밖으로 나오게 하는 묘약이다.
잠시일 수밖에 없는 자식들 떠난 자리 또다시 감도는 외로움을 못 본 체하고 싶은 걸까?
하루의 대부분을 밥 먹기도 마다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잠만 자는 엄마가 얕은 잠에서 깨고 나면 눈앞에서 어른 거리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 기억 속에 좋은 추억들만 맴돌 뿐 외로움만은 남아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