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머물다 떠난 자리는 쓸쓸하다

by 스몰토크

모두가 머물다 떠난 자리는 쓸쓸하다.


기나긴 겨울 겨울잠을 자듯 집안에만 있다가 따듯한 햇살에 이끌려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본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도 그놈의 게으름 때문에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나갈 준비만 하려고 해도 추한 맨얼굴 감추려 연지 곤지 찍듯 얼굴에 뭔가를 발라주어야 하고, 부쉬맨처럼 헐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 주섬주섬 차려입고 하다 보면 어느새 늦은 오후다.

게다가 당떨어지면 안되니 든든하게 속이라도 채울라치면 이번에는 저녁이 다 되어간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싫어 아예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자발적 집순이가 되어 하루를 보내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듯싶다.


두꺼운 오리털에 부츠까지 신고 나왔지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따뜻하진 않다.

5월이면 초여름이라 살짝 더워도 당연할 것을 봄에 어울리는 가벼운 옷은 붙박이장 밖으로 나와보지도 못하고 갇힌 채 여전히 두꺼운 오리털과 부츠가 내 몸과 발을 감싼다.

해가 갈수록 짧아지는 듯한 봄의 시간이 추위에 밀려 그 시간마저 점점 놓쳐가는 것 같다.

눈치 보듯 추웠다, 따뜻했다, 오락가락, 자꾸 헷갈리게 한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간다.

겨우내 바싹 말라있던 나뭇가지 사이로 어느새 새 생명을 품은 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더불어 초록초록 잔디들이 안부 인사를 전해온다.

오기는 할까? 의심했던 봄이 추위와는 상관도 없이 이미 당도해 있었나 보다.

심술궂은 변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연의 굳은 절개(節槪)가 존경스러워진다.


뭉그적거리다 느지막이 나온 덕에 해마저 집으로 돌아가려나보다.

뉘엿뉘엿 석양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눈을 찡그리게 하고, 서서히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노을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장관을 이룬다.

해님이 지고 나면 교대근무하기 위해 나타난 달님 때문에 금방 어두워질 것이다.

계속 달릴 수는 없고 어쩌다 큰 맘먹고 나왔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긴 뭔가 아쉽다.

잠시라도 콧바람 좀 쏘이고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시다 가야겠다 싶어 들른 곳은 혼자 나올 때마다 한 번씩 들르는 주립공원(Provincial Park)이다.


사람들이 떠난 공원 안은 썰렁하다.

드문 드문 배치되어 있는 화덕에선 다 타버린 장작이 여전히 마지막 숨을 쉬듯 연기가 피어오르고,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할 요량으로 경쟁이라도 하듯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원 안을 가득 채웠을 사람들은 고단한 몸 이끌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시끌벅적했던 한낮의 풍경대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후의 삭막함이 느껴지는 공원 안에는 커다란 나무들만 큰 키를 자랑하며 수호신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둠이 낮게 깔리는 공원에는 나처럼 뒤늦은 휴식을 취하고자 들른 사람들이 간간히 모습을 비추고 주인이 던져주는 쟁반접시를 좋아라 쫓아다니는 강아지들의 지칠 줄 모르는 걸음이 바쁘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한기가 느껴진다.

한 여름에도 불이 있는 곳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했으니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는 엄마 곁으로 아이들이 달려온다.

쌀쌀한 날씨 탓에 아이들이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손을 내밀고, 행여 추울까 아이들 손 잡고 호호 불어주며 모자까지 단단히 씌워주는 엄마의 모습이 그나마 정겨워 보인다.


아이들 빈 속까지 채워주려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 엄마의 손길이 바빠 보이고, 겨우 소시지 몇 개 구워 핫도그나 만들어 먹을 거면서 마치 거하게 양념불고기, 갈비 파티라도 벌일 것처럼 차에 잔뜩 싣고 온 장작더미 풀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연신 집어넣는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가려, 옛날 소독차 따라가던 아이들처럼 그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하며 내 시야를 약 올린다.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데리고 온 강아지들과 아이들이 넓은 공원을 맘껏 뛰어다니는 모습은 슬로모션을 연상케 까지 한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까르르까르르 끊임없는 웃음소리가 공원전체에 메아리쳐 울려온다.


저들마저 이곳을 떠나고 나면 휑하니 홀로 남을 공원

자식들이 와서 모처럼만에 사람 사는 집처럼 부산하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모두 떠나고 나면 다시 부모님 두 분만 남아 전 보다 더한 적막감이 맴도는 것처럼...

누군가 머물다 떠난 자리는 왠지 쓸쓸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공원 안을 완전히 잠식해 버리기 전에 나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테다.

차에 시동을 켜니 애꿎은 바람이 윙윙거리며 마음을 스산하게 만든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이 모두 떠난 객석을 바라보면 공허해지는 것처럼

모두가 머물다 떠난 자리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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