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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Oct 05. 2023

시나몬 향기가 가득한 오후

잠깐의 여유가 좋다

오랜만에 맛있는 시나몬 롤을 굽고 있다.

오븐에서 솔솔 풍겨 오는 계피 향이 온 집안 가득 퍼지면서 나의 코를 간질간질 자극한다.

어릴 때 빵집 앞을 지나가면 나는 바로 그 익숙한 냄새.






캐나다에 오니 오븐이 저절로 생겼다.

한국에서는 비싸기도 하고 내가 베이킹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건이다. 

그때도 세상은 현대식으로 바뀐 지 오래였는데 분명한 이유덕에 우리 집 부엌에는 당연하다는 듯 2구 가스레인지만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오븐을 갖추고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꼭 가격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몇 발짝만 떼고 나가면 프랜차이즈별 제과점들이 맛있는 빵과 과자들을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시켜놓고 우리에게 선보인다.

게다가 자신들의 시그니처 제품들까지 더해 나 같은 빵순이들에게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마구 유혹을 해댄다.


그런데도  맛 보장은커녕 굳이 집에서 만드느라 얼굴에 밀가루로 연지곤지 찍듯 분칠을 하고는 이쁜 척하다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처럼 상대의 볼에 손가락으로 콕 찍어놓고는 도망가면서 "나 잡아 봐라~!" 할 것도 아니고 사용하느라 꺼내 놓아 널브러져 있는 여러 기구와 재료들로 부엌은 온통 너저분~ 바닥은 포탄이 빵빵 터져대는 전쟁터 마냥 허연칠로 난장판을? 

Oh! No ~!


이런 구차한 변명에 반기(反旗)를 들듯 욕심내 본 적 없던 내게 기회를 준다.

우리와는 다른 서양문화의 혜택인가? 

이사 다닐 때마다 무거운 냉장고니 세탁기를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노동을 하지 말라고 필요한 몇몇 가전제품들이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다. 


내가 오븐을 갖게 되다니...

나만 이뻐서 준 것도 아닌데 요런 작은 배려에 흥분하며 좋아한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료 찾아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도서관도 가보고 서점에도 가서 마스터들의 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 혹시라도 만들어 보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복사를 하거나 일일이 노트에 적어오는 수고를 하면서 레시피를 모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었나? 


마음은 이미 셰프(chef)지만 빵은 약간의 기술이 필요한 듯해서 아직이고 우선은 쉬운 과자부터 굽기로 한다.


의욕은 넘쳤으나 그만큼의 결과는 역시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하라는 대로 잘 따라 했는데도 덜 구워져 먹을 수 없기도 하고 어쩔 땐 또 너무 구워지기도 한다.

이름은 케이크라고 만들어 구웠는데 수플레도 아니면서 가운데가 푹 꺼져 이상한 나라의 베이커리에서 신제품이라고 만들어 낸 듯한 이 생소한 제품들 어쩔 거냐고요?


그래도 걱정할 건 없다.

경력이 쌓일수록 일처리 능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것처럼 뭐든 하다 보면 실력은 점점 나아진다.

레시피가 답이 아니라 거기에 훈련과 경험이 더해져야 정답이 된다.


과자도 바삭바삭 케이크는 보들보들 이젠 제법 흉내를 내어간다.

제과점이나 가야 먹을 수 있는 빵이나 쿠키들을 집에서 만들어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도 없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내고 있다.

지금 잘난 척하는 거?


직접 구운 과자는 선물하기에 그만이다.

비싼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돈 주고 산 값나가는 물건을 더 좋아할라나?


손으로 직접 만들고 예쁘게 포장해서 리본까지 달아주면 별것 아닌 것도 꽤 근사해 보인다.

받는 사람도 변신(變身)을 거듭한 이 작은 과자 상자에 깊은 성의가 느껴져서인지 다들 좋아한다.

전문가는 조금만 부족해도 욕을 먹고 비난을 받지만 나처럼 초보 아마추어는 기대가 없으니 못해도 옳고 웬만하면 다 용서가 된다. 

오히려 살짝만 괜찮으면 과도한 칭찬까지 받는다.

그 맛에 초심자로서 베이킹은 즐기기만 하는 걸로.


남편이 달달한 것을 좋아해서 도시락과 함께 넣어줄 간식거리를 만들어주다 보니 그리 된 것인지

그저 빵 냄새가 좋아서 아니면 내가 만든 걸 맛있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튼 동기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가끔씩 디저트를 만들곤 한다.


과자 만들기로 숙련공도 아닌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얻었으니 빵도 도전을 해본다.

과자와는 다르게 빵 굽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작업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를 올인할 수 있어야 해서 그날은 괜히 바쁘다.


1차, 2차 발효에 중간 휴지까지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기다려주는 인내 끝에 비로소 빵이라는 이름으로 맛있는 먹거리가 완성된다.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사실 빵 만들기는 시도를 잘하지 않는다.


오늘은 큰맘 먹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아이싱이 줄줄 흐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맛이 더해지는 시나몬 롤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반죽을 해 놓으니 몽글몽글 이스트가 발효되면서 폴폴 흘러나오는 시큼한 향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1차 발효가 끝나면 빵빵하게 부푼 도우를 밀대로 넓게 펴서 흑설탕 계핏가루를 섞어놓은 충전물을 발라주고 거기에 건포도와 영양을 생각해서 견과류를 솔솔 뿌려준 다음 돌돌돌 말아 준다.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팬에 가지런히 정열해 놓고 2차 발효를 한 후 오븐에 넣어 구워주기만 하면 된다.


톡 쏘는 듯 조금은 자극적인 시나몬 향이 집안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입안 가득 군침이 절로 돈다.

이제 몇 분만 더 있으면 우리가 아는 그 모양과 맛 그대로 시나몬 번이 완성품이 되어 "짜~안!" 하고 나타나겠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그 향기만으로도 취하는 듯 몽롱해진다






우리가 학교 다니는 시절엔 하면 안 되는 것들이 유난히 많았다.

방과 후에 또는 주말에 친구들과 갈 수 있는 장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그 시절 그나마 제과점? 아니 빵집이 우리에게 허락된 공식적 장소였다.


내부의 풍경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촌스럽고 좁았지만 교복 입고 들어가 없는 돈 갹출해서 단팥빵 몇 개 시켜 놓는다.

포크로 콕콕 찍어가며 식욕도 왕성하던 시기에 "의리 있네!" 그걸 또 사이좋게 쪼개가며 나눠 먹는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까르륵 넘어간다.

불문율(不文律)도 아닐진대 빵은 꼭 우유랑 먹어야 했나?

남은 돈에 맞춰 우유만 한 컵 시켜놓고 부족해 돌려마시다가 공짜로 주는 따뜻한 엽차만 계속 리필해서 먹던 그때의 어렴풋한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은은하게 스며 나오는 빵내음에 넋이 나가 잠시 소환된 옛 생각에 피식피식 싱거운 웃음을 짓는다.






오늘은 빵 굽는 날

오븐의 열기가 뿜뿜 밖으로 살짝씩 뿜어 나오니 온기가 돌면서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나뭇가지들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좋고 코 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빵냄새가 킁킁 적당한 하모니를 이루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오후 맛있는 시나몬롤이 나오길 기다리며 잠깐의 여유를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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