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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Nov 09. 2023

햇빛이 환하게 웃는 날에

엄마는 모두 강하다

햇빛이 환하게 웃는 날에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높고 깨끗한 파란 하늘이 더욱더 그렇다.

오늘은 하늘 파티에 구름친구들을 초대했나? 발 디딜 틈 없이 만석이다.


잔 바람에 리듬을 타고 살짝 씩 흔들어 주는 나뭇가지 춤사위에 화답하듯 까치 가족 4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살포시 마당에 앉는다.

모두 바닥에 머리를 맞대고 가족회의를 하는 건지 뭔가를 찾는 건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한동안 옆집의 커다란 전나무 안에 나뭇가지들을 열심히 입에 물고 나르던 두 까치 부부의 열일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안에서 무얼 하는 거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바람막이용 집을 짓는 건가? 생각했는데 앞으로 나올 새끼들을 위해 둥지를 트는 거였구나.

출산을 앞둔 엄마가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서 방을 꾸미고 아이가 입게 될 옷이며 젖병 또는 기저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듯 그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어린 새끼들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였다.


알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다른 누군가에게 잡아 먹히지 않도록 부모로서의 본능적 역할을 해내느라 최대한 안 보이게 나무속 깊숙이 알들을 숨겨 놓았었는지 나무밖에서는 그저 평온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앞으로 나올 어린 새끼들을 위해 그런 물밑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또 언제 아기들이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왔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부모새의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어린 새들 앞으로 살아가게 될 험한 바깥세상 엄마 아빠새의 보호하에 천천히 구경하면서 몸소 적응하라고 날 좋은 오늘 가족 모두 나들이 나왔나 보다.

아직은 서툰 아이들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어미 아비새 덕에 아기들은 편안히 소풍을 즐긴다.


부부새가 번갈아 가며 무언가를 자꾸 물어온다.

애써 찾아 나서 입에 물고 온 먹이를 아기들에게 내밀면 조그마한 부리로 당연하다는 듯 받아먹고 때로 어미새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머리를 들이민 채 입속에 있는 뭔가를 쪼아 먹기도 한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며...

이 평화로운 풍광을 보고 있으니 아들에게 젖병 물리던 때가 생각나 입가에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은 동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우리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들은 말 못 하는 짐승이고 먹고 싸고 짝짓기를 통한 종족 번식이 그들 삶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저들만의 대화가 다 있고 그들 나름의 간단하면서도 소중한 가족에 대한 법칙이 분명 있는 듯하다.







가끔 영국 BBC TV에서 하는 Planet Earth(wildlife and nature documentaries)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연기가 아닌 실제 동물들의 을 보여주면서 잔잔한 내레이션(Narration)을 통해 순간마다의 펼쳐지는 장면들을 실감 나게 묘사해 주는 다큐멘터리쇼인데 주로 먹이사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늘과 땅, 바다 밑까지 총망라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자주 보는 편이다.


그 프로를 보다 보면 우리가 잘 모르는 이 세상의 생태계(生態系, ecosystem)에는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당연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피조물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자신들의 종족이 멸종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도록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고수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TV 쑈들은 내레이터(narrator)가 화면 속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을 다 해 준다.

그것만 들어도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가끔은 보이는 대로 내 맘대로 재 해석을 하면서 보기도 한다.


아침이면 나무 위에 앉아 지저귀다가 누군가가 리더가 되기로 정하고 그가 이끄는 대로 "시옷"자를 그리며 무리를 지어 날아가버리곤 하는 새들의 모습도 그게 다 일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글 숲 속 수컷 여러 마리가 한 마리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서로 잘 보이기 위해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목청껏 부르면서 자기가 벌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넓고 아름답게 날개를 펴고 춤을 추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롭다.


암컷이 그중 한 마리를 택해 짝짓기를 허락해 주어야 하는데 맘에 드는 수컷이 없었는지 고르지 않고 새침하니 혼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역시 새들의 세계에서도 암컷은 한 번쯤 튕겨보는 것이 매력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암컷에게 보기 좋게 까인 수컷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선택되도록 갖은 재롱을 다 피웠는데도 먹히지 않은 뻘쭘함인지 아님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 애꿎은 자신의 다리만 쪼아댄다.


그런 그들도 각자도생(各自圖生) 보다는 여럿이 힘을 모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 작전을 세워 한 마리의 수컷에게 몰아주기도 한다.

친구 새 여러 마리가 원을 만들어 서서 한 마리의 수컷을 위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퍼포먼스를 벌여주면 그날의 주인공은 인간세상에서 처럼 친구들의 쇼가 끝날 때까지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무릎 꿇고 그녀에게 반지를 내밀며 청혼을 하듯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그 이벤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암컷이 Yes를 하면서 대망의 짝짓기 성공 신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다음차례인 또 다른 수컷친구의 짝짓기를 위해 똑같은 방법으로 저들만의 노하우는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하늘 이야기 못지않게 땅 위 이야기들도 재미나다.

땅 위에서는 사자 가족들, 남극에는 펭귄가족들 그리고 북극에는 곰들이 생존을 위해 저보다 약한 동물들을 희생시키면서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제일 꼭대기에 있을 것 같은 수사자는 하루 20시간 정도를 잠을 자거나 쉰다고 한다.

그래서 사냥은 어미사자가 주로 한다.

암사자가 새끼도 낳고 사냥도 도맡아 하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까지?

그럼 힘센 수사자는 면도도 안 하고 멋진 털수염만 장착한 채 폼 잡고 앉아서 무위도식?  정당하고 떳떳한 삼식이?

한량이 따로 없으니 어미사자가 가엾어지는 듯하네.


이와 같은 프로들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겠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어떤 장면들은 보고 있노라면 사람과 똑같이 느껴져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언젠가 제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듯한 Nat Geo Wild (National Geographic Wild)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Wildbeest라는 동물을 본 적이 있다.

Wildbeest는 머리에 날카롭고 구부러진 뿔이 있고 뾰족한 턱수염이 있는 영양의 일종이라는 데 내 눈에는 소처럼 보이는 듯도 하다.


어미 Wildbeest가 어린 새끼를 빼앗긴 슬픈 모정에 관한 이야기로 개인적으로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장면이다.

힘이 센 동물들 주변으로는 언제나 하이에나가 있다.

스스로 먹잇감을 잡기도 하겠지만 남이 애써 잡아놓은 것들을 훔쳐 먹기도 하는 얌생이족

혼자보다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아무리 힘이 세다고는 하나 그들도 사냥을 할 때는 다 자라 덩치가 큰 어른이 아닌 언제나 갓 태어나 잘 걷지도 뛰지도 못하고 힘이 없어 자꾸 쓰러지기만 하는 약한 새끼들이나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동 떨어져 홀로 있는 동물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어린 Wildbeest 가 엄마와 함께 뒷다리를 벌리고는 몸을 낮춘 후 고개를 떨군 채 물을 마시고 있다.

어슬렁어슬렁 하이에나 무리가 다가오는데도 눈치를 못 챈 그 둘은 곧바로 자신들에게 일어날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여전히 평화롭게 물을 마시고 있다.

도망가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은 듣지를 못한다.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매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 마리가 살금살금 다가가 역시나 새끼를 잽싸게 낚아 채 간다.


주변에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있던 무리가 함께 몰려들더니 갈기갈기 입으로 물어뜯어 지들끼리는 의리가 있는지 각자 한 덩이씩 입에 나누어 물고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망연자실한 어미는 방금 전 빼앗겨 먹이로 스러져 간 어린 새끼가 밟혀 그 원통함에 원수를 갚고자 함인지 아니면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인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하이에나들과 대적하며 서있다.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으로 이미 삶에 미련이 없는 듯 죽기를 각오하고 하이에나에게 덤빈다.

그녀의 분노를 아는지 하이에나들도 처음에는 움찔해 물러서는 것 같더니 목숨 내놓고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무모함에 당할 제간이 없는지 모두가 함께 공격을 시작한다.

영화에 나오는 1: 17로 싸워서 이기는 기적 같은 일은 없다.

불쌍한 어미의 엉덩이가 처참하게 찢겨나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뿔로 박기도하고 뒷발로 차기도 하면서 싸우더니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던 그녀는 결국 무리의 힘에 굴복하고 무너져 새끼와 같은 길을 간다. 

죽을 걸 알면서도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진 그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 최후가 더욱이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사지에서 모두 자기 아이들 지켜 내느라 고군 분투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엄마는 강하다.






햇빛이 따스하게 유리창으로 스며들어 노곤해지는 한낮

어디선가 우리 뒷마당으로 날아든 까치 가족을 보고 있노라니 먹이를 물어다 주고받아먹고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함께 하고 있는 정겨운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본능이든 무엇이든 인간 못지않게 가족을 챙기는 그들의 자연적 섭리(攝理)가 오묘(奧妙)할 뿐이다.


추운 남극에서 펭귄들이 추위에 떨며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딱 붙이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바깥쪽에 서서 눈보라를 막고 서있던 무리와 안쪽에 있던 무리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교대로 자리를 바꾸어 위치를 재 정열하는 걸 보면 정말 그들의 지혜가 보이는 듯 해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어미들이 바깥에서 추위를 견디고 서 있는 동안 캥거루 마냥 배에 주머니가 있는지 아기 새끼들을 그 안에서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다.

자신들처럼 춥지 말라고...

가끔씩 고개를 쏘옥 내밀다 추운지 다시 들어가는 아기펭귄들이 귀엽다.


햇살이 밝으니 마음이 느긋해지고 갑자기 날아든 까치 가족을 바라보다가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동물의 왕국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있어도 익숙해서 소홀해지기 쉬워지는 게 가족들인데

인간 못지않은 그들만의 소중한 가족 사랑과 아기새끼들 지키느라 목숨까지도 내던지는 모성의 위대함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오후다.


역시 사람도 동물도 엄마는 모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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