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왜 파리를 좋아했을까?
세느강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물일까? 낭만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는 듯하다.
파리의 에펠탑을 동경하고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싶어 한다.
학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단발이나 길게 땋아 내린 머리만 허용되던 여고시절
첫 수업에 들어온 불어 선생님의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그 특별난 다름이 꽤나 신선했다.
대부분의 여자 사람들이 찰랑찰랑 바람에 휘날리는 긴 생머리를 자랑하며 유행을 따라갈 때
남자머리 보다도 짧은 그녀의 특이하고 대담한 숏커트는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아래위 같은 듯 다른 색으로 적당히 깔맞춤 해서 즐겨 입던 이국적 의상들이 당시의 프랑스식 헤어와 패션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그 선생님만이 뿜어내는 남다른 스타일이 그땐 그렇게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입에서는 불어가 술술(?) 나오고 넘사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그때부터였나 보다.
부러움이 관심으로 바뀌면서 프랑스라는 나라를 찾기 시작했고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불어공부만 열심히 했다.
어쩌면 그녀도 어린 시절 우리처럼 프랑스라는 나라를 동경해 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담고 있기엔 너무나 큰 꿈이지만 현실화하기는 어려웠던 그때에도 시대를 앞서가는 용감한 선구자로서 그곳으로 가 공부를 마치고 온 해외유학파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여러 면에서 자유가 생기니 꿈이든 동경이든 좀 더 구체화가 가능해진다.
누군가 한 사람이 뭔가를 하면 군중심리가 발동해서인지 어느새 유행병처럼 모두 전염이 되어 그 파급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리 잡는다.
혀가 꼬이는 듯한 불어나 화려한 패션 또는 요리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더불어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프랑스에 가고 싶어 한다.
타임(TIME) 지를 보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허리춤에 또는 뒷주머니에 차고 미팅에 나간다든지 어떻게든 눈에 보이게 들고 다니는 이들이 있듯이 어떻게 구했는지 엘르(ELLE)지 같은 프랑스 잡지를 들고 다니면서 그 속에 나오는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친구도 있고... 그런 쪽으로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샹송에 심취한다.
남들은 그 시절 유행하는 팝송을 주로 듣는데 괜히 튀고 싶어서일까?
나나무스쿠리(Nana mouskouri)라는 가수가 부르는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이나 살바토르 아다모(Salvatore Adamo)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 같은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노트에 가사 적어가며 열심히 따라 부르곤 한다.
주말이면 프랑스영화를 공짜로 보기 위해 친구들과 경복궁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내용 자체도 난해하지만 불어가 서툴러 알아듣기도 힘든 영화가 끝나면 그 안에 모여 앉아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방금 감상하고 나온 영화이야기보다는 그냥 수다 떠는 걸 좋아했고 함께하는 분위기를 즐겼다.
프랑스의 일본식 발음이 불란서라는 사실도 모른 채 유난히 패션에 민감한 친구 중 한 명이 어느 날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자 "불란서 여배우 같다"면서 모두 장난을 쳤는데
알고 보니 멋이 아닌 쌍꺼풀 수술한 걸 감추느라 쓰고 왔다는 그녀의 자발적인 고백에 성형이 흔한 시절도 아닌지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이슈가 되었고 역시 과학의 힘... 실제로 훨씬 더 이뻐진 그녀는 이를 모르는 남학생들로부터 대시를 받기도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돈도 없고 배짱도 없는 보통의 우리들은 그저 막연하게 낭만을 꿈꾸며 에펠탑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다보고 오 샹젤리제(Aux Champs-Élysées)라는 노래를 들으며 도로 옆으로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는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면서 양팔 가득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다니고 혹시 몽마르뜨 언덕에 앉아 거리의 예술가들 틈에 끼여 한 폭의 그림이라도 그려본다면 멋진 걸작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소박한(?) 상상만 하는 걸로...
저녁이 되면 운치 있는 센 강에 한적하게 떠 나니는 유람선을 타고 창가에 앉아 드라마 찍듯 분위기도 잡아보고 지루하면 밖으로 나와 파리의 야경을 품에 안은 채로 보르도 산 레드와인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한 잔... 캬!~
그러면 감성 풍부한 시(詩)도 하나쯤은 탄생해 줄 것 같은데...
이런 사소한 꿈조차 펼쳐보지 못하고 지극히 평범한 여자 어른이 되었다.
지금이야 어디든 가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우리가 젊었던 40-50년 전에는 해외에 나가는 것도 유학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이라 집을 떠나 여자 혼자 멀리 가는 것이 두려워 꿈으로만 간직한 채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대학 입학 전에 드디어 내 젊은 시절의 로망을 실현하는 꿈의 여행을 가족과 함께 떠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갈 것 같지 않은 프랑스 남부 쪽으로 먼저 간다음 위로 올라오면서 깐느나 니스 그리고 이태리, 독일, 스위스등 주변을 돌고 파리를 여행의 종착지로 정하고 떠난다.
첫 방문지로 마르세이유를 선택했다.
여행사의 도움 없이 무작정 우리끼리만 떠난 여행이라 인터넷에서 본 것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비뇽다리(Pont d'Avignon)며 이프성(Château d'If)으로 나름 그 지역의 명소를 찾아다녀본다.
유럽의 유명한 곳은 중세시대의 성곽 같은 돌건물이 대부분이고 크고 화려한 대성당이 특히 많다.
이끼 끼듯 까맣게 변해버린 돌(石) 때가 얼마나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연식을 말해 주는 듯하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de Paris)은 거대한 힘을 과시하듯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작품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듯 호화롭고 아름답다.
마침 미사시간인가?
나직이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가 가슴속을 후비는 것처럼 뭔가 찡해오고 그곳에서 뿜어 나오는 성스러움 때문인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숙연해진다.
무릎을 꿇고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정성스럽게 올리고 있는 신자들에게 우리는 방해꾼이지만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것에 이미 익숙해서인지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과의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미사가 끝나자 조금 전 엄숙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수선해진다.
본능에 가까울 만큼 기막히게 사진존을 찾아내는 사람들로 성당 안이 살짝 시끄럽고 모두 같은 장소에서 너도 나도 열심히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에 우리도 질세라 동참하고 나니 조금은 지친 몸으로 일단 밖으로 나온다.
갑자기 뱃속에서 도는 허기를 채워야 하는데 유럽여행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먹거리였다.
로컬 푸드를 즐기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인데 입이 짧은 내게는 먹을 만한 것이라는 게 존재하질 않는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뭐라도 있겠지~" 했는데 그럴 줄은 몰랐다.
아마 파리 시내였으면 한국 음식점도 좀 있고 했을 텐데... 생각도 할 수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것을 좀 챙겨 왔을 것을... 유럽여행은 처음이라...
며칠째 밥을 먹지 못한 나는 기력이 쇠해지고 안 하던 멀미까지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진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고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으니 남편과 아들은 무슨 죄야! 내가 먹을만한 음식점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루틴이 되어 버린다.
저 멀리에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는 곳이 보인다.
음식이 맛있으니 사람이 많은 거겠지? 하고는 간판을 보니 붉은색 나무판에 휘갈겨 쓴 듯한 검은색 한자가 중국음식점임을 직감하게 한다.
중국 음식이니까 그래도 우리 입맛에 맞지 않을까?
어리석게도 우리가 먹던 짜장면(?)과 짬뽕(?)을 기대하고 들어간 그곳엔 들어서자 마자부터 거부감 느껴지는 진한 향신료 향이 코 끝을 자극한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린다.
원래 중국집에 들어갈 때 나오는 양파 볶는 냄새는 식욕을 부를 정도로 좋은 건데... 이곳은 확실히 다르다.
걸어 다니느라 지쳐 물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서버를 불러 달라고 하니 공짜가 아니란다.
벌써부터 어이가 없다.
손님이 오면 메뉴판과 함께 물부터 가져다주는 것이 기본 아닌가?
수도만 틀면 나오는 그 흔한 물인심이 왜 이런 거야? 여기 혹시 대동강? 그럼 주인은 봉이 김선달?
물값을 낸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는데 가격은 왜 이리 비싼지...
식당 주인이 갑(?)이라 돈안내면 안 준다니까 목마른 우리는 을로 빠르게 역할 전환이 되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기로 하고 나온 물로 갈증을 해소한 다음 대충 메뉴판에서 보고 각자 하나씩 주문한다.
시킨 음식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제일 먼저 남편의 몫으로 나온 음식의 비주얼은 뻘건 국물이 흡사 짬뽕과도 비슷하니 맛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메슥거리는 속을 얼큰한 국물로 다스리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저걸 시킬걸 그랬나? 후회가 된다.
한 스푼 떠먹은 남편은 아무 반응이 없다.
보통 우리가 국물맛이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카~ 또는 허~ 등의 그 어떤 감탄사가 전혀 나오질 않는다.
"어때?"
"향이 우리와 친숙하지 않아... 별로... 당신은 못 먹을 것 같다. 국물도 색깔과 달리 하나도 안 매워"
"분명히 spicy라고 적혀 있어서 시킨 건데... 전혀 아니야..."
웬만하면 불평하지 않고 잘 먹는 사람인데 오죽 아니면 저럴까 싶어 걱정이 된다.
그 사이 내 음식이 나오고 한 수저 뜨고 나서 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우리가 처음 이곳을 들어올 때 나던 불쾌했던 그 냄새가 음식에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속이 이상해진다.
옆자리를 보니 주변사람들은 다 맛있게들 먹고 있는데 우리만 뭐 씹은 얼굴로... 가격은 왜 이리 또 비싼지...
그래도 안 먹으면 아까운지 아들과 남편은 내 것까지 나눠 가며 의무감으로 최선을 다해 먹는다.
"이런 걸 음식이라고 파세요?"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지만 성인군자도 아니면서 욕대신 팁까지 주고 나온다.
거리를 조금 걷다 보니 거리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볼 때는 나도 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아 보였는데 실제로는 시끌벅적할 뿐 시장통이 따로 없고 저런 걸 돈 주고 사 먹나 싶을 정도의 맛없어 보이는 음식들이 접시에 성의 없게 담겨있다.
저들이 K-FOOD를 맛보고 나면 아마도 놀라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지금의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나랑은 맞지 않아 불편한 가운데 프랑스 남부여행을 마치고 렌트한 차를 타고 파리로 넘어온다.
오는 길목에 중간중간 스위스등 근처 다른 나라에 들러 명소들을 돌아다니고 그나마 이태리에서는 스파게티나 피자를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본고장이라 그런지 맛도 좋았고 젤라또 아이스크림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에 제일이었다.
파리에서는 에펠탑 근처에 숙소를 잡아 방에서도 밤이면 탑 주변의 화려한 불빛이 넘실대는 절경을 볼 수 있다.
호텔에서 나오면 낭만 가득할 것 같았던 센 강이 흐르고 그 주변을 따라 걷다 보면 여기저기 뿌려놓은 소변과 개들이 내질러 놓은 똥에서 흘러나오는 불쾌한 냄새들이 킁킁 코를 때려 온다.
책이나 사진등 수없이 보와 왔던 에펠탑은 파리에서 손으로 꼽으라면 제일 먼저 이름이 나올 만한 곳이라서 그런가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따가운 햇살아래 눈을 찡그리며 무작정 기다리니 2시간이 훨씬 넘는다.
멀리서 볼 때는 색깔이 계속 바뀌는 조명들로 봐줄 만했건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녹슨 철로 뜨개질 하듯 얽어놓은 모양으로 볼품이 없다.
역시 좋은 것은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도 만원이라 숨도 못 쉬고 여기저기 나는 땀냄새는 짜증을 부추긴다.
훌륭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유럽풍의 건물들은 사진과 달리 때가 꼬질꼬질 비둘기들이 싸놓은 똥들로 지저분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들도 알긴 아는가 보다.
프랑스에서 샤넬 넘버 5 같은 유명한 향수가 발달한 이유도 도시 전반에 걸쳐 오폐수로 인한 악취가 심각해서 돈 많은 귀족들이 먼저 자신의 몸에 뿌려 냄새를 없애려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오물냄새와 향수냄새가 더 요상 야릇하고 오묘한 냄새로 바뀌지 않을까 만은...
향수로 냄새를 없앤다니... 이상한 발상이다.
거기다 화장실은 더 과간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갔을 때만 해도 거리를 다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보이질 않는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가 봐도 자물쇠로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어쩌면 음식을 사 먹지 않아도 볼일이 급할 땐 사정이라도 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화장실 아닌가?
사람들로 만원인 실내에서 아무리 찾아도 해태눈인가 toillet이라고 적혀있는 곳은 없고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봐도 빌딩만 보일 뿐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겨우 찾은 화장실이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니 입구에 사람이 지켜 앉아 수금하듯 돈을 내란다.
화장실 사용료를? 여기는 또 다른 대동강? 김선달이 물로 재미를 보더니 화장실까지 사업확장을 하신 건가?
이 나라 도대체 뭐지?
물인심도 없더니 인간의 가장 기본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화장실 인심까지 야박하다.
좋은 추억을 남겨야 하는데 심정 상하는 것투성이다.
길들은 꼬불꼬불 미로 같고 좁아서 곡예하듯 운전해야 하고...
그러고 보니 큰 차들이 별로 없고 작은 차들이 많긴 하더라...
유럽은 분명 좋은 점보다는 거슬리는 부분이 더 부각되어 느껴지는 곳인 듯하다.
그나마 개선문 위에서 바라보는 샹젤리제 밤거리는 괜찮다.
연중무휴 파리를 찾는 패션니스타들을 위해 크리스마스처럼 길거리 나무에 전등을 켜 환하게 비춘 거리는 꽤 근사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 거리를 걸어보니 플라타너스 나무든 벚꽃나무든 뭐가 다를 것이며 명품매장이 즐비해 있는 뉴욕의 5번가와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남산타워 위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보는 것이나 에펠탑 위에서 파리시내를 보는 것이 다르지 않고 한강 위에 떠있는 유람선을 타는 것이나 센 강에서 타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돈 주고 고생 고생하면서 깨닫는다.
그 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파리를 좋아했을까?
소녀들의 풋풋했지만 풍부할 수밖에 없는 사춘기 감성 때문에?
순수했던 그때의 감정들이 모두 빛바랜 채로 메말라 버린 지금 말고 가슴에 로망 가득했던 그 시절에 와 봤어야 했나 싶어 진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성이 다 다르니 같은 소녀시절을 보낸 어떤 이는 그럼에도 파리는 낭만이 가득하고 여전히 사랑스럽다고 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해 보고 나니 나의 낭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꿈에 그리면서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를 방문하고서 로망은 개뿔... 그동안의 사진 속 그림들은 모두 사기였어... 센 강의 낭만은 모두 속임수...
그렇게 생각하니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꿈 구워 왔던 순수한 감성들마저 아무것도 아닌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같아 괜히 허탈해진다.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느라 지치고 힘들었으니 꿈과 현실에서의 크나큰 간극과 괴리감으로 감정이 잠시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린 때문이라고 여기고 싶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만회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 놓기로 한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정해놓은 시간 없이 여유를 두고 이곳에서 한 달, 다른 곳에서 또 한 달, 머물면서 그곳과 동화되어 차근차근 둘러보다 보면 예전의 내가 동경하던 그림이나 찐 감성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