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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Apr 19. 2024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 우리 엄마



2018년부터 몸이 좀 약해졌었다. 평소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우연히, 가족과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경업을 하는 엄마는 정원조경도 가끔 하곤 했는데, 그중에 아주 유명한 점술가가 있었다. 그분이 내 명(命)이 짧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못 들은 척한다.





엄마는 지방으로 조경공사를 하러 가면 꼭 내가 좋아하는 사과 몇 상자를 사서 트럭에 가득 싣고 오곤 했다. 한 번은 홍옥을 9 상자나 사 왔다. 몇 달 만에 그걸 혼자 다 먹을 만큼 사과를 좋아한다.


아파서 누워있을 때면 엄마는 사과라도 먹으라고 슬며시 놓고 나가곤 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먹고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게 며칠 전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 명이 짧을까 봐 노심초사하던 엄마는 오히려 2020년 갑자기 암말기 판정받고 다음 해에 먼저 하늘나라에 가 버리셨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렇게 아무도 모른다.  





나는 한 살 아래 남동생과 단 둘 남매이다. 항상 바쁜 엄마의 빈자리를 내가 대신 채워주고 싶어 어릴 때부터 동생의 엄마 역할을 했다.


엄마가 5월 말에 돌아가시기 전, 1월에 한 차례 고비가 있었다. 그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다. 엄마가 평생 일군 모든 땅과 나무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전 재산을 아들에게 준다는 유서를 쓰라고 엄마에게 강요했다.


그런데, 그런 유서는 법적 효력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내가 상속포기각서에 인감도장만 찍으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는데, 몰라서 엄마를 그렇게 괴롭혔었다.


엄마는 눈 감기 전까지도 내게 아무것도 주지 못함을 가슴 아파하셨다.  너무 마음 아프셨는지, 하늘나라에 가신 후, 돈보다 귀한 것들을 신기하게도 계속 보내주신다.





첫 번째는, 돌아가시고 맞은 2022년 3월 3일, 엄마의 첫 생신(음력 2월 1일) 때이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공예의 2일 발급한 초대작가증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우리 엄마는 공예가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나를 항상 지켜보셨었다. 엄마가 선물해 주신 초대작가가 되어 작년 여름 초대작가 특별전에 ‘장밋빛 인생’이라는 작품으로 벅찬 가슴을 누르며 참가했다.



두 번째는, 돌아가신 후 맞은 2022년 4월 14일(뉴욕시간) 엄마가 낳아 주신 나의 생일 때이다.

뉴욕 맨해튼에 몇 달 가 있을 때인데, 인터넷 신문의 뉴욕주재 기자가 되어 한국시간 15일에 기사가 올라갔다. 엄마는 문학가가 되라는 희망을 담아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문학가는 아니지만, 엄마 바람대로 글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는 엄마 요양체험기(노인장기요양보험) 기사도 4편 썼다.





세 번째는, 작년(2023년) 크리스마스 때이다.

합격하기 쉽지 않다는 ‘브런치작가’라는 선물을 보내 주셨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끝난 26일 아침이 되자마자 합격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작가’라는 타이틀로 엄마를 간병한 요양체험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네 번째는, 올해 4월 14일 내 생일 때이다.

글도 잘 못 쓰는 브런치 작가인 내게 엄마는 800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구독자를 모아 주셨다. 800명의 구독자는 엄마 이야기를 쓰는 내내 따뜻한 마음으로 용기를 주었다.



엄마가 하늘에서 보내 준 소중한 선물들을 나는 평생 아낄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브런치의 따뜻한 이제은 작가님이 남겨 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엄마에게 바치며, 엄마 이야기를 끝맺으려 한다. 우리 엄마 역시 가톨릭 신자이고 세례명은 안나이다.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 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곤 합니다.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해인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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